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소녀
6년간의 국민·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나는 청명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청명여중은 청명여고와 함께 있는 여자 사립중고등학교다. 우리 학교는 여주, 이천에서 센 언니들이 다니는 곳으로 유명했다. 언니들이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육교를 지나 학교로 오는 모습만 봐도 오금이 저려왔다.
서로가 낯선 여자아이들이 1학년 교실에 모여 서로를 바라보는 그 어색함이란... 혈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고요함이 더 무서운 법이다. 서로를 알고 싶지만, 경계가 앞서서 쉽사리 말을 걸기가 어려운…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공기.
헤어스타일은 무조건 단발, 길이는 귀 밑 3cm. 교복치마는 반드시 무릎을 보이지 않게 할 것.
어마어마 한 양의 규칙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인간이 이 규칙을 다 지킬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흰 블라우스에 초록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그 길이 낯설지만 참 좋았다.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내 발걸음에 힘이 붙어 속도가 더 났지만, 거리가 초등학교보다는 멀어 등교하는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학교는 매우 가파른 언덕에 있는데,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 그 위에 선도부 언니와 학생주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학생주임 선생님은 내가 배우지 못한 '교련'이라는 과목을 담당하신다고 했다.
머리카락 길이는 적당한지, 치마가 짧지 않은지, 명찰과 타이는 제대로 했는지... 옷매무새를 몇 번이나 만지고야 그 언덕을 오를 용기가 생겼다.
누군가는 자신이 검열되는 대상이 된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빴겠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학교 앞에서 나를 맞아주는 여러 명이 있는 걸로.
‘뿌듯이, 오늘도 학교 잘 왔어!‘
몇 가지 규칙들만 잘 지키면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기분 나빠해 봤자 선도부 언니랑 선생님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뭐. 나 좋게 생각하는 건 돈이 안 들어.’
쉽게 질려하는 나에게 중학교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이 자신의 특징을 살려 수업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목마다 공책이 필요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수업을 듣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인간 리트리버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5월의 어느 날, 등수가 매겨지는 인생 첫 시험을 본다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설명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지 시험 전날 공부하고 그러면 반칙이야.’
아마도 공부하기 싫은 핑계를 거창하게 댄 것 같다. 자기 합리화는 훌륭한 방어기제이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편안하게 시험을 치렀다. 이때만 해도 학급에 시험성적과 등수가 붙었다. 내가 누구 위에 있고 누구 밑에 있는지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가혹하다. 나는 나의 등수가 정확히 기억난다. 12등. 충격적인 숫자였다. 그리고 지은이와 친구들은 시험 전날 끊임없이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선생님께 배웠는데, 왜 쟤는 알고 나는 모르지? 참 열받네!’
아빠가 물려준 소중한 승부욕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중1 때 담임선생님은 수학선생님 이셨다.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사랑하셔서 본 딴 이름이라고 하셨다.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면, 자신의 딸의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 있는 걸까?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우리가 먹고살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나는 본 적이 없는 대통령이라 궁금했다.
이때, 선생님의 헤어스타일의 큰 변화가 생긴다. 바로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오신 것이다. 파마는 고불거리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파마계의 혁명이었다. 생머리처럼 찰랑찰랑하게 해 주는 파마라니!
하지만 왠지 나는 그 모습이 웃겼다. 머리가 너무나도 직선으로 펴져 있어서, 마치 선생님이 움직이면 그 뒤에 머리카락들이 따라오는 모습이었다. 청소할 때 사용하는 대걸레가 거꾸로 서 있는 느낌이랄까? 대걸레가 서서 수학 수업을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시는 청소하는 틈을 타, 아이들 앞에서 대걸레를 들고 선생님 흉내를 냈다.
“ -얘들아~~ 앙, 청소 열심히 해야지잉!!- 어때? 머리가 직선으로 펴져 있는 게 꼭 담임 같지?”
내가 흉내 낸 것을 보고 아이들은 깔깔대며 뒤집어졌다. 하지만 잠시 후, 선생님이 교실 앞 문에서 내가 했던 행동을 보시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대걸레를 들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수돗가에 대걸레를 고이 모셔두고 학교 밖으로 도망쳤다. 할머니랑 싸우면 도망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지라 달리기도 자전거만큼 자신 있는 분야였다. 책가방은 내일 학교 오면 만날 수 있으니까 미련을 버리고 집에 갔다.
후환이 두려웠다. 오늘 하루는 도망쳤지만, 매일매일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이 오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전 날의 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시지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선생님, 죄송했습니다. 늦게라도 사과드립니다.
* 여름의 절정입니다. 이 에피소드 어떠셨나요? 저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아이들이 저에게 별명을 붙이거나 놀리는 것엔 관대한 편입니다.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별명도 없는 것이니까요. 무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늘 그렇듯,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얏호! 여름방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