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에 나타난 황소개구리
몇 년 전 유행한 우스갯 말로 중2가 있어 북한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중2 시절은 사춘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신 최자연 선생님이셨는데 가냘픈 체구셨지만 자신의 주관은 확실하셨다. 아이들이 몰래 숨겨온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를 뺏으시고 절대 되돌려 주시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서랍 속엔 마치 엄청난 금은보화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종례를 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종례시간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기분 상태를 파악하며 기다리는 종례시간이 달갑지 않았다. 지은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라서 나도 좋아하는 척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니었다. 그때는 상치라는 개념이 존재해서 국어 선생님이 한문을 가르치셨는데, 국어는 그냥저냥 들을만했지만 한문은 전혀 아니었다. 한문도 수업준비를 해오신다면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내 한문 실력은 바닥을 쳤다. 핑계도 가지가지다.
주정혜라는 학생이 1학년 말쯤에 큰 도시에서 전학을 왔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 사이지만, 그녀에게 친구라는 단어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주정혜는 마치 청정한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 마냥 순수한 시골여자아이들에게 도시의 이성 생활을 알려줬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날라리(?) 무리는 그녀와 어느새 끈끈한 사이가 되었고, 마치 원래 대신 사람인 것 마냥 행동했다. 터질 것 같은 짧은 교복 치마와 깻잎 머리들이 어느새 자신들의 개체수를 늘려갔다.
1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날. 반장을 뽑는 날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내 친구 지은이와 정혜가 같은 수의 득표를 했다. 공정하려면 재투표를 했어야 했지만, 최자연 선생님은 자신의 굳은 성정대로,
“반장은 지은이가 해!”
모든 상황을 정리하셨다. 사실상은 정리된 것이 아니라 혼란을 만드셨다. 내 친구가 반장이 된 것에는 축하를 했지만, 선생님의 그러한 처사는 납득할 수 없었다. 국사책에 나오는 온화한 척을 하는 폭군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 후로 우리 반은 반장파와 반 반장파의 대결로 몸살을 앓았다. 마치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 같았다고나 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말이다. 반대파 무리는 반장인 지은이가 하는 것마다 제동을 거는 일이 일수였고, 그 이후 하루도 편안히 지나간 날이 없었다.
중간고사를 보고 해당 과목 선생님이 답지를 주시면 지은이가 나가서 아이들이 채점하기 편하게 답을 불러줬다.
“1번에 2, 2번에 3. 3번에 4.”
“야! 3번이라는 거야 4번이라는 거야”
“3... 3...”
“아휴 진짜 발음 왜 저래? 알아듣지를 못하겠잖아!”
마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지은이가 반장을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학교폭력이다. 상대적으로 반장파의 아이들은 온순하고 싸움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다수였기에... 늘 반 반장파의 눈치를 살폈다.
일촉즉발의 상황도 많이 연출되었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싸움을 끊었는데, 복도에서 그 무리들이 지은이에게 화내는 상황을 보고 진지하게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싸운 얘기가 할머니나 아빠귀에 들어가면 나는 뼈도 못 추릴 텐데... 그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모범생 이미지로 사라진다... 싸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나는 참지 못했다.
“(큰 소리로) 야!! 너희들 그만해.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김뿌듯 넌 뭔데 참견이야?”
“나? 지은이랑 친하니까. 그리고 지은이가 반장이 된 게 싫으면 담임한테 말해. 얘한테 왜 그러는데?”
“재수 없는 년. 지일 아닌데 참견하고 지랄이야. 이년아 너 우리 오빠한테 혼나볼래?”
할머니한테 듣는 욕보다 몇 배는 더 기분이 나빴다.
“욕은 하지 마. 오빠를 그런데 밖에 사용 못 해? 너만 성질 더러운 거 아냐. 나도 한 성질 하거든? 참고 있을 때 그만해.”
“그만 안 하면 네가 어쩔 건데? 미친년이?”
“그럼 한번 제대로 싸워보던가. 치사하게 여러 명이 한 명 괴롭히지 말고. ”
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 저 멀리서 우리 반 교실로 오시는 선생님 덕분에 이 상황은 일단락 됐다. 참 다행이었다. 내가 속으로 얼마나 떨었던지...
하지만 세상에서는 떨려도 맞서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겁이 난걸 절대로 들키지 말아야 했다. 연기는 성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정혜의 남자친구가 나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쩌지?’
하지만 나도 든든한 백이 있었다. 항상 우리 집 근처에서 과속 단속을 하시던 순경 아저씨가 생각났다. 아저씨는 나랑 종종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내가 궁금해하면, 큰 총 같은 기계로 과속을 하는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해 보도록 해주셨다. 큰길 옆에 외딴집으로 산다는 건 늘 나쁘지만은 않다.
‘오빠 불러봐 주정혜. 나는 대신 파출소에 근무하는 순경 아저씨랑 친하거든? 바로 아저씨한테 이를 거야’
전쟁 같았던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중2 에피소드는 계속 될겁니다. 쭉- 재밌게 읽으셨다면, 하단의 하트라이킷 부탁드려요! 하트 하나가 글쓰는이에겐 큰 힘이 된답니다. ㅎㅎ 무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