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냄새도 싫다
할머니와 내가 사는 집은 거실하나 방 세 개의 구조다. 오래된 시골집이라 난방은 연탄을 땠는데, 중학생이 되자 할머니가 나에게 연탄 가는 일을 시켰다.
실외 연탄광에서 연탄을 날라 실내로 옮기고 시간에 맞춰서 갈아야 한다. 연탄보일러에 1/5 정도 불길이 남아있는 연탄을 맨 마지막에 넣고 구멍을 맞춰 2개의 연탄을 쌓아야 한다. 내 기억으로 3탄을 때면 하루에 두 번 정도 연탄을 갈아주면 됐는데, 살면서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특히 그 매캐한 연기는 내 코를 사정없이 공격해서, 숨을 몇 번이나 참고 연탄을 갈았다.
인생만 타이밍이 아니라 연탄이야말로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타이밍에 갈지 않으면 그날 밤은 추운 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다시 연탄에 불이 붙어 방이 데워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휴 계집애, 밍기적 거리더니 연탄불 또 꺼트렸지?”
“아~ 할머니가 좀 해. 냄새 나서 못하겠어! 티비에 보니까 연탄가스 마시면 죽을 수도 있데”
“그럼 나는? 나보고 저세상 가라고?”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잘 봐라 잉. 연탄불 어떻게 살리는지? 연탄광에 가서 번개탄 가지고 와.”
“응 여기 있어.”
“신문지에다가 불을 붙여갖고, 이 번개탄에 댄 다음에 연탄 밑에 넣고 위에는 연탄을 쌓으면 불이 붙어부러.”
“잘하네~ 할머니가 해. ”
“옴마, 늙은 할마시를 꼭 부려먹어야겠냐? 잉? 키워놨드만 공이 하나도 없네.”
“알았어 내가 할게. 다음엔 안 꺼트릴게”
중학생 때 할머니를 졸라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할머니 방으로부터 독립하자, 연탄이 두 배가 들었다. 내 방 연탄은 나보고 갈라고 했지만 일부러 안 갈고 연탄불이 꺼졌다는 핑계로 할머니 방에서 자기도 했다.
살이 하나도 없는 할머니의 몸이었지만, 할머니를 껴안고 자는 방의 온도는 꺼진 연탄불과 상관없이 따뜻했다. 창문도 없는 그 방이 왜 내 기억엔 그렇게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을까? 온통 내가 받아온 상장과 내 사진들로 가득했던 그 방…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늦게 할머니 방으로부터 독립할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연탄을 때는 방과는 달리 거실은 냉골 그 자체였다. 거짓말 안 하고 아이스링크장의 온도랑 비슷했다. 겨울엔 수도가 자주 얼어 식사를 준비하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도 많았다. 우리 집 수도꼭지는 자신의 형태를 가지고 온전히 유지되지 못했다. 수도가 얼면 온갖 도구를 이용해서 녹여야 했는데, 언 수도도 녹지만 수도꼭지도 함께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들에게 저승사자의 집으로 소문날 것 같은 느낌? 하필 많고 많은 집 중에 우리 집에 와서 참 고생이 많다 싶었다.
이러한 환경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을까? 아니다. 오래된 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푸세식! 우리 집 화장실은 푸세식이었다. 화장실이 급해도 가기가 싫어서 이모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에게 화장실은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가끔 산으로 올라가 나만의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샤워할 공간도 없다. 연탄보일러 옆 창고 같은 곳에 지하수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씻었다. 따뜻한 물을 쓰려면 할머니가 손수 큰 들통에 물을 데워줬다. 하지만 난방이 하나도 되지 않는 곳이다 보니 물은 금방 식었고 사춘기 소녀의 짜증은 하늘을 찔렀다.
“물 몇 바가지 쓰면 없어. 이걸로 어떻게 씻어?”
“아이고 그럼 우짜라고 성질을 부려대. 집이 그런 걸. 일단 그만큼으로 씻어. 또 금방 가지고 올 테니까. 좀 참아 이년아.”
“아 됐어!! 나 그냥 찬물로 씻을 거야!!!!”
“좀 기다리면 되는데, 꼭 저렇게 승질이 지랄 맞아가지고 나중에 시집이나 갈랑가 몰라. 감기 들면은 또 아프다고 지랄을 지랄을 할 거면서!”
“그냥 제자리 뛰기 몇 분하고 땀 내서 씻을 거야. 내가 바보야? 감기 걸리게!! 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쓰지 마”
“니 맘대로 해라.”
엄동설한. 15살의 소녀는 냉수마찰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이 악물고 찬물을 몸에 뿌리면 내 몸에서 연기가 폴폴 났다. 자연스럽게 체력단련의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무겁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됐다. 역시 궁하면 다 통한다.
내가 지은이네 집에 놀러 가서 젤 부러운 것은 화장실이었다. 춥지 않게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 지은이에게 가끔,
"너희 집에서 씻어도 괜찮아?"
"응"
지은이가 거절할까 봐 마음을 내내 졸였었다.
아빠집은 아파트라 화장실이 따뜻했지만 이상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간혹 나를 아예 데리고 가서 살 거라는 그 공포 섞인 말 때문이었을까? 아빠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화장실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할머니랑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그 추운 집이 항상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한테 우리집은 왜 이렇냐고 말한적이 없다. 냉수마찰로 목욕을 해도, 냄새가 지독한 연탄도, 날마다 험한 것(?)들과 만나야 하는 푸세식 화장실도... 아빠집에서 살지 않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자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오늘 친구랑 사우나를 다녀왔는데, 예전에 냉수마찰 하던 실력이 다 사라졌더라고요. 많이 세속화(?) 된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할머니를 만나는 기분입니다. 우리 할머니도 제 글을 읽고 계시겠죠?
'할머니 나 성공했어! 따뜻한 집에 따뜻한 화장실! 그 때 할머니 고생 참 많았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