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뿌듯 Aug 31. 2024

27. 새엄마와 잘 지내는 사람도 있겠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식사

 중학생 무렵 아빠가 할머니와 내가 살고 있는 여주로 이사를 왔다. 정확히는 아빠는 여주 시내에 살고, 나는 여주에서 버스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대신이라는 곳이다. 사실...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별로 기쁘지 않았다. 아빠랑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서 부모자식 간의 심리적인 거리도 멀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었나 보다. 아빠는 나를 위해서 가까이 이사를 온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하는 얘기인지.. 마음이 답답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 흔한 새엄마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의 모든 새엄마들이 나쁜 건 아닐 테니... 그리고 항상 새엄마들이 직접 자신의 얘기를 하기보다 그 아래에 있는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에 비치다 보니 억울한 점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여주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아빠의 집에 짧게는 일주일에 한 번, 이주에 한번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금요일 저녁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결혼과 죽음은 뒤로 미룰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데, 그보다도 미루고 싶은 게 아빠집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 싫어도 어쩌겠나. 오라면 와야 하고 가라면 가야 한다. 안 간다고 하면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나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냈다간 중국 한나라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한 사마천과 같은 형벌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여주 시내로 나간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서 나는 계속 탑돌이 하는 마음으로 단지를 걷고 또 걸었다. 아빠집에 가기 싫어서다. 조금이라도 아빠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나의 계책이었다.

      

 내가 가는 금요일 저녁은 대부분 삼겹살을 먹었다. 같은 삼겹살이지만 할머니가 구워주는 삼겹살보다 이상하게 맛있었다. 할머니가 알면 ‘키워준 공도 모르는 계집애’라고 욕먹을 것이 뻔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삼겹살은 맛있었지만 항상 뒷정리는 나의 담당이었다. 새엄마가 뒷정리를 하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 내가 스스로 나선 것이다. 그것마저 안 하면 마음이 참 불편했다. 5인분의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릇도 모두 도자기라서 손목은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아빠 가족과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하는 순간이 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메뉴가 삼겹살이 아니라 생선구이였던 날이었다. 아빠가 무심히 고등어 살을 크게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줬다. 새엄마는 가감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당신이 언제 얘네들(이복동생 2명)한테 생선살 발라준 적 있어?”

“.......”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무안해했던 아빠의 표정이 선하다. 나는 뭔 죄인가. 그 이후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새엄마가 기뻐하라고 밥을 열심히 먹으면 쩝쩝거리면서 동생 들 거까지 다 먹는다고 혼나고, 그래서 다음번에 조금씩 먹으면 깨작거린다고 혼나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마저도 아빠가 있으면 눈치만 줬지만, 아빠가 외출하거나 자리를 비우면 본격적인 공산당 느낌의 ‘자아비판’ 시간이 돌아왔다. 철저히 새엄마의 주관대로 진행하는 ‘뿌듯이의 자아비판’ 시간이다. 자아비판이라고 썼지만 나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말만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짧으면 2시간, 길면 그 이상. 나는 혼이나야 했다. 내 전반적인 생활습관과 밥을 먹는 모양. 말을 하는 방식, 성격, 공부 등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쉴 새 없이 쏘아댔다. 대략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네가 얼마나 못됐는 줄 알아? 네 할머니랑 똑같아. 하는 짓이”


“아빠 앞에서 불쌍한 척하니까 좋아? 왜 깨작대서 아빠가 생선살 발라주게 만들어?”


“동생들이랑 좀 나눠먹으라고 줬더니 혼자 다 먹어?”


“그리고 좀 잘 씻어라 냄시(냄새) 난다”


“설거지할 때 물을 왜 이렇게 많이 써.”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은 등에서 식은땀이 뻘뻘 나고, 다리에 쥐가 나서 아예 감각이 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도 멍해져서 방이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기진맥진 앉아있는 힘이 다하면 타인비판 같은 자아비판 시간이 끝난다. 굳이 자아비판이라고 쓴 이유는 중간중간에 내가 그렇다고 대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엄마의 말대로라면 나는,

 

'밥을 많이 먹는 욕심쟁이고 밥을 깨작거리는 동정심 유발자이며, 성질이 더럽고, 잘 씻지도 않으며, 머리도 멍청하고 배려심도 없는.. 기타 등등 단점으로 가득한' 생명체이다.

 

지금은 인내심이 참 없는데, 이때의 인내심은 어디에서 나온 거지?    

  

 그래도 나는, 나에게 생긴 새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있는 엄마가 나도 있고 싶었다. 나를 안 좋아하긴 하지만, 노력하면 그래도 새엄마 마음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빠집에서 새엄마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저 ‘뿌듯비판’의 시간은 없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아빠에게 일러서 새엄마를 내쫓아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럼 두 동생은 엄마를 잃는 거고 아빠는 두 번째 부인하고도 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같이 다 틀린 말은 아닐 테니... 애석하게도 아빠랑 계속 살아줄 사람은 새엄마다. 그럼 그냥 내가 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억울하지만...


 할머니가 언젠가 이야기를 했다. ‘이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 그리고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싸우는 건 보기 싫었다. 미우나 고우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가족이지 않은가.


 그리고 새엄마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데에는 나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워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사이인데, 무엇이 잘못된 건지.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따뜻하고, 맛있고, 좋은 곳이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함께 있고 싶지 않다. 지금도 이 마음은 한결같다.



가을이 열심히 찾아오고 있는것 같습니다. 서둘러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어요. 오늘의 글을 너무 무겁게만 읽어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도 말 못한 마음을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ㅎ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22화 26.할머니가 죽는 날, 나는 개밥의 도토리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