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결석 2회
내 고2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기타 결석이 2회 있는데, 그 두 밤을 할머니와 보냈기 때문이다. 그 악몽 같은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는 나 혼자 두고 혼자 가는 발걸음이 매우 무거웠나 보다.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고는 가장 먼저 어눌한 발음으로,
“뿌..듯아.”
하고 나를 찾았다.
“응 할머니, 나 누군지 알겠어? 괜찮아?”
몇 주간의 입원 후 할머니는 집으로 왔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그 청천벽력 같은 ‘준비’라는 말이 가슴에 낸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이년아 너는 나 죽으면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할머니가 늘 해왔던 이 말이 정말로 진실했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신께 감사했다. 할머니와의 시간을 더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도감과 동시에 내 맘속엔
'언제고 또 찾아올 수 있는 고통이구나'
가 여러 번 나를 짓눌렀다. 지금 당장 할머니가 살아온 것에 대해 감격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찾아올 일이기에 마음이 마냥 놓이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집에 왔지만, 그 전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말이 어눌하고 거동이 불편했다. 할머니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고모가 우리 집에 와서 할머니를 보살피기로 했다. 나는 고모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고모는 매 끼니마다 정성을 들여 할머니와 나를 챙겨줬다. 사실 나는 학교를 다니느라 큰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고모 덕분에 할머니는 점차 건강을 되찾아갔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였지만, 고모는 자신의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돌봐야 할 남편과 자녀를 먼 전라도에 남겨두고 수개월이나 할머니를 돌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빠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새엄마의 말대로 정말 괜찮은 사람이 아닌 건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2000만 원 대신 들어와 있는 적은돈을 보면서 할머니는 때때로 가슴 아파했다. 돈이 정말 무엇이길래 하루아침에 가족의 사이를 이렇게 처참하게 갈라놓는가. 사실 돈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것을 잘 못 사용한 인간의 탓이지.
나는 예전처럼 이모할아버지를 대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돌아설 수도 없는 상황에 있었다. 여전히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미워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감정이 이모할아버지를 싫어하는 감정이었다. 마음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그나마 당시의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근사치의 단어였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인간에 대한 차가운 불신이 18살 내 마음에 가득했다.
할머니는 평생 태우던 담배를 이때 끊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죽을 고비를 눈앞에 보고 나서야 할머니는 그 좋아하던 담배를 끊었다. 할머니의 뇌혈관에서 나온 피의 방향이 조금만 방향을 바꿨다면 그날이 할머니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길래 내가 진작에 좀 끊으라고 했잖아."
마음은 좋으면서도 왜 할머니에게 다정한 말투가 나오지 않는 걸까.
내 마음으로는,
"할머니가 살아 돌아와서 얼마나 좋은지 알아 할머니! 할머니가 떠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언제나처럼 할머니 약을 챙기고 연탄을 제 때 가는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아빠에 대한 복잡한 마음, 새엄마에 대한 미움, 이모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아무리 정리하려고 노력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다. 더 이상 나를 갉아먹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이 나에게 준 운명에는 이유가 있을거다. 분명히.
이렇게 나를 다잡으면서 고2의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 아름다운 가을 저녁밤이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