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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Oct 01. 2024

31. 쥐들은 왜 밤에 운동회를 하는가

쥐 덫 보다 쥐를 잘 잡는 여고생

내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이 더욱더 익숙해지는 와중에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밤마다 이루어지는 쥐들의 운동회다. 오래된 집이고 산과 가까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쥐와 불편한 동거가 항상 진행형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천정은 물론이고 바로 내 얼굴 옆 벽 근처에 와서도 시도 때도 없이 긁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쥐와 함께 살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쥐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징그럽거나? 더럽거나?라는 느낌보다는 시끄러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잠을 청하려고 애써 노력해 봐도 안될 때에는 씩씩거리며 형광등을 켰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빗자루를 높이 들고 천정을 쿵쿵 쳤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서 불규칙한 박자로 쳤다면, 나중에 고등학생 정도 되자 쥐들이 지나가는 동선을 파악하고 그 속도와 경로에 맞춰서 내리쳤다.       


"쿵 쿵쿵 쿵 쿵쿵"


“찍찍.. 찍찍”     


 비명에 가까운 이 소리를 들으면, 잠시의 침묵이 가능해져 나는 그 틈을 타 잠에 들 수 있었다. 천정은 그나마 상황이 해결이 간단한 편이었지만, 내 얼굴 쪽 벽에서 긁어대는 쥐는 물리치기가 여간 까다로웠다.     


"긁긁긁 드르륵"

 

 주먹으로 벽을 내리쳐도 그때뿐. 나의 주먹과 목소리에 적응이 된 건지 쥐는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나도 체념하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 쓰는 고무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했다.


 나에게는 쥐가 숙면을 방해하는 정도였다면, 이모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쌀집에는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이모할아버지가 본업 겸 취미 겸 하시는 쌀집 광에서 쥐가 출몰하면 우리 집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이모할아버지가 농협에서 20Kg 쌀을 가져오시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파는 형식이었는데, 쥐가 한 마리라도 들어와서 쌀포대를 뜯어놓으면 그대로 상품가치가 훼손되어 팔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모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장치들로 쥐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쥐들이 좋아하는 먹이에 쥐 약 놓기, 쥐 덫 설치하기, 쥐 끈끈이 놓기 등등....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와 2인 1조가 되어 쥐를 생포하는 것이었다. 이모할아버지가 쥐 출몰 소식을 전하면 체육복을 갈아입고 전투태세로 쌀집에 갔다.      


 20Kg 쌀포대를 할아버지와 내가 한쪽으로 몰아놓고 큰 나무판자를 이용해 쥐를 몬다. 옛 속담에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생사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쥐의 집중력과 속도는 가히 국가대표급이다.


 쥐를 잡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모할아버지와 나의 호흡이다. 나무판자가 워낙 커서 혼자 들 수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동시에 같은 힘과 박자로 쥐를 벽사이에 두고 밀어서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엔 어김없이 쥐 끈끈이가 있어야 한다. 잠시라도 호흡이 흐트러진다면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해야 한다. 이모할아버지와 나는 워낙 쥐의 멸종에 기여를 해본 터라 거의 원샷 원킬이었다. 끈끈이에 매달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쥐의 울음소리는 참 날카롭다.      

 

 이모할아버지와 나는 쥐 잡기에 달인이었다.      


 내가 이렇게 쌀집에 나타난 쥐잡기에 능력을 발휘한 이유는 바로.. 이 쌀집에 나의 지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작은 쌀 창고를 보면 항상 뿌듯했다. 왜냐하면 이 쌀 창고를 내손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설계는 이모할아버지가 했지만, 못을 박고 나무 톱질을 하고 뼈대를 세우는 데는 나의 공도 상당히 들어갔다. 망치로 손을 찧기도 하고 톱질이 서툴러 나무 표면이 울퉁불퉁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한 번도 혼을 낸 적이 없다.      


“괜찮아, 천천히 해봐. 너는 잘할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나씩 하다 보면 늘어”     


할아버지의 인식 속에 나는 항상 시키면 뭐든지 잘하는 손녀딸이었으리라. 나는 항상 이모할아버지의 기대대로 무엇이든지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 시험을 못 볼까 봐 두려워하는 나에게 아침마다 함께 명상의 시간을 보내주었고, 아빠를 만나서 달아 없어진 내 자존감을 키워주는 파이팅 맨이기도 했다.      


 어렸을 적 주말저녁엔 늘 텔레비전 앞에서 KBS대하 사극을 봤다. 특히 태조 왕건은 나의 영혼을 모두 차지할 정도였다. 수업시간에 가끔 재밌는 밈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하지만..

     

“얘들아 선생님이 감히 말할게. 태조왕건은 명작 그 이상이란다. ㅎㅎ”     


나를 위해 이모할아버지는 태조왕건 종영 후 함께 세트장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나의 인생에서 할머니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 이모할아버지였다. 세상 훌륭한 과외선생님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우며 느낀 시간들이었다. 나의 시간 속에 함께 있는 이모할아버지덕에 세상을 보고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모할아버지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시고, 또 그 마음 한편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근데 맨날 코털 내가 잘라줬잖아. 그 날카로운 코털 가위로. 하늘에서는 누가 해주나? 할머니, 이모할머니 아직도 지지고 볶고 싸우며 지내? 자매들이란.... ㅎㅎ 나 아직도 할아버지 따라 종이신문 보고, 할아버지랑 같이 했던 체스를 동아리 만들어서 아이들이랑 재밌게 하고 있어. 할아버지 항상 고마워."





* 게으름을 동반한 피곤함으로 발행일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10월의 멋진 첫날이네요. 오늘 때문에 주말에 게으름을 좀 부릴 수 있었나 봅니다. 왠지 빨리 떠날것만 같은 가을을 맘껏 느껴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어김없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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