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러니까 20년도 훨씬 전에 성인의 나이가 되어서 밖에서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종종 밥을 사 먹고는 했지만 편의점에서 포장되어 판매하는 김밥이라든지 샌드위치, 삼각김밥과 같은 즉석식품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영 손이 가질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유 모를 찝찝함에 사 먹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김밥은 갓 지은 고슬고슬한 흰쌀밥에 손질한 각종 재료를 넣어 단단하게 말아 싼 다음 늦어도 서너 시간 이내에 먹어야 안전한 음식인데 편의점 냉장 시설에 하루 나절 진열되어 있는 것도, 또 차갑다는 것도 먹기에 불편한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삼각 김밥도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전 남편과 교제를 시작하고 석 달 정도 지날 무렵, 어느 날 남편이 주말에 창원에서 열릴 농구경기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경기 룰을 다 파악하고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농구라는 종목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약속하고 약속 당일 아침 우리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났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바로 온 남편은 배가 고팠는지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찾았는데 그때 아주 자연스럽게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으면 되겠다고 하면서 삼각김밥과 요구르트를 집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한 번 먹어보라며 건넸는데 아침을 먹고 나왔다고 둘러대면서 먹지 않았다. 사실은 그때 나도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삼각김밥을 먹는 것보다 배고픈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거절할 수 있었다.
편의점 안 일자형 테이블에 나란히 서서 남편은 삼각김밥을 먹고 나는 창 밖을 응시하며 기다려 주었는데 혼자 먹기 미안했는지 남편은 두 번째 김밥의 포장지를 뜯으며 한 입만 먹어볼 것을 권했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어서 정말 괜찮다고 함박미소를 지으며 거절했지만 사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산뜻한 샌드위치와 편의점 커피를 사서 간단한 아침으로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 역시 밥 한 술 뜨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는 사무실 내 자리 옆 직원의 자리에 '참치마요네즈' 라벨이 붙은 삼각김밥이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보고는 '아침을 못 먹고 와서 사 왔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삼각김밥 맛있어? 먹을 만 해?"하고 물었더니 "맛있죠.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 바나나 우유 사러 갔다가 보이길래 하나 샀거든요. 근데 배가 불러서 못 먹겠어요. 언니 먹어 볼래요?"하고 넌지시 건네는 거다.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운 거라서 지금 먹으면 맛나다면서. 살짝 홀린 듯 포장지를 뜯어서 한 입 베어 먹었는데
"음~~ 괜찮네? 맛있네?" 하면서 세 번 베어 물고는 다 먹어버렸다.
남편은 근무 특성상 주야 교대 근무가 필수인 상황이다. 결혼 전 교제할 때 우리는 많이 만나봐야 일주일에 두 번 정도였고,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어려우면 이 주만에 만나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더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일주일에 한 번이든, 이 주일에 한 번이든 만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 늘 마음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주말에 약속이라도 하면 남편이 아침에 퇴근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를 잡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이 육체적으로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사랑의 힘'을 앞세워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고 졸음의 엄습을 차단하려는 가상한 노력이 통했던 삼십 대 중반의 신체 건장한 남자가 아니었나. 지금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서너 시간은 무조건 잠을 자 둬야 그다음 일정 소화가 가능해진 오십 대 중반의 내 남편이다.
그렇게 삼각김밥을 처음 경험한 나는 그 후로 주말 아침에 남편을 만날 때면 내가 먼저 삼각김밥으로 간단한 요기를 제안하며 남편의 허기를 달래 주었고 행복한 데이트를 이어갔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삼각김밥은 '참치마요네즈'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흰쌀밥과도 잘 어우러져서인지 나 혼자서 세 개까지도 거뜬히 먹을 수 있다. 물론 남편 앞에서는 내숭 떤다고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면 충분해요."하고 애써 식욕을 억누르며 한 개만 먹지만.
지금은 삼각김밥 전용 김과 틀을 사두고 남편과 아이의 간식으로 종종 만들어 주면서 나의 간식 고민 해결사 역할도 해준다. 어제 장 보러 마트에 갔다가 캔참치가 진열된 것을 보고 계획에도 없이 덥석 바구니에 담았다. 그간 아이가 좋아하는 속을 넣어 만들어주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참치마요네즈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해내지는 못하지만 만들어 주면 남편은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잘 먹는다. 다섯 개를 만들어 세 개만 식탁에 올려놔야겠다. 남편 두 개, 나 한 개. 여전히 "하나면 충분해요."하고 말한 다음, 남편 몰래 두 개를 더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