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과 동굴마을이 인상적인 괴레메
지금 우리는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향해 달리고 있다.
중간에 소금호수(Tuz Gölü, solt lake)를 들러갈 예정이다.
이곳은 튀르키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자 염도도 두 번째로 높은 이 소금호수는 유출이 없는 폐쇄된 호수이다.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리서 하얀 무엇인가가 반짝이고 있다.
드넓은 평원 안에 하얀 띠 같은 게 있던 가 싶더니 그 하얀 띠가 점점 면적이 넓어져 백색 호수가 되어버렸다.
호수로 물을 끌어오는 개울은 여름에 물이 줄어들거나 완전히 말라버리기 때문에 1년 중 5월에 물이 가장 많이 고이고 8월이 되면서부터 호수는 마르기 시작해 8월에 평균 30cm 두께의 소금층이 생긴다고 한다.
튀르키예의 소금 수요의 40%가 이 호수에서 공급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지금은 9월, 푸른 물이 말라 호수의 가장자리가 온통 하얗게 소금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물 웅덩이들이 조금씩 남아있어 다행스럽게 반영(反影)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넓게 드리워진 소금호수가 장관이다.
마치 시간이 멈추고 속세를 벗어난 별천지에 와 있는 기분이다.
지금은 물이 말라 소금이 덮여있는 얕은 호수를 걷고 있지만 물이 차는 겨울엔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질 듯하다.
소금 호수 주변에는 소금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을 많이 팔고 있다. 소금 초콜릿, 소금 비누, 소금이 들어간 화장품 등 소금의 유익함을 내세워 관광객들에게 소개를 하고 있었다.
갈 길이 먼 우리는 멋진 배경 사진을 찍고 소금 호수를 떠난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카파도키아(Cappadocia)'에 도착했다.
땅 위에 솟은 기이한 바위들이 카파도키아에 들어섰다는 사인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초현실적인 장소라고도 느껴지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도시 이름이 아닌 지역의 이름인 카파도키아는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튀르키예 여행의 백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중앙 고원의 한 지형으로 화산 분화에 의한 화산재와 용암 등이 오랜 세월을 거쳐 바람, 비, 눈, 강물, 호숫물 등에 의해 침식되고 지진도 겪으면서 기암들이 형성되었는데 독특함을 뛰어넘어 지구를 벗어난 또 하나의 행성을 방문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사람들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도시와 집들은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미로처럼 얽힌 그곳은 로마 시대에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 사람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데 과거 튀르키예인들의 어마어마하고 경이로운 삶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평원에 올려진 괴이한 바위들과 지형, 암굴에 지어진 집들....
벌써부터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괴레메(Göreme)'였다.
이 마을은 기원전 1800년에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는 곳으로 주변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마치 깔때기를 엎어놓은 듯한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괴레메 마을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Love valley'라는 곳이었다.
흥미로운 남근 모양을 닮은 크고 부드러운 암석모양에서 지어진 이름인 듯하다.
이 암석은 약간 우스꽝스럽지만 커다란 버섯 모양과 건조한 평원과 마른 초목 등의 독특한 풍경은 마치 달 표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역시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독특한 바위들이 열을 지어 서있거나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셀 수 없는 계절의 손을 탔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남아있는지 정말 신기했다.
괴레메 전 지역의 자연지형이 너무나 독특하고 기이해서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곳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끼리끼리 널따란 평원이나 계곡을 보며 혹은 평원과 계곡을 등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 부부도 하트 모양의 설치물이 있는 그네에 앉아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보이는 곳 어딜 대고 찍어도 그림이고 절경이다.
360도 돌아가며 사진기를 계속 눌러도 신기하고 괴이한 지형에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이제 우린 'Fairy chimneys'로 향한다.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나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용암바위 주위에 분진으로 인해 응회암으로 굳어졌는데 이 응회암이 비바람에 쉽게 변형되는 성질 탓에 버섯모양의 바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튀르키예인들은 이 버섯모양의 바위를 Peribaca라고 붙였으며 이곳에 요정이 산다고 믿어 '요정의 굴뚝'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마법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 거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바위와 돌을 버섯모양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곳 역시 신기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기암들이 우리에겐 볼수록 신기한 자연의 선물들이지만 삭막하고 돌밖에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바위를 깎아 구멍을 내며 살았던 과거 시대의 어렵고 궁핍한 생활이 상상되어 마음이 무겁다.
우린 차를 다시 Zelve open air Museum으로 몰았다.
Zelve는 비잔틴 시대 정착지였는데 페르시아와 아랍의 공격에 대한 안식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발견되는 기이하고 신비한 바위들...
이 박물관은 독특한 바위들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는데 풍화작용에 만들어진 바위 모양의 외관과 전체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마치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되어 신기하고 의문투성이인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산책로를 걸어가니 무려 500년 전의 교회도 만나게 되는데 내부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어 놀랍다.
오스만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로마와 아랍 정복자들로부터 피난처로 사용하면서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종교 문제가 끝난 이후에는 튀르키예인들이 그들의 정착을 위해 집으로 사용되었지만 붕괴 위험이 있어 결국 1950년 이후로는 거주자가 살지 않은 박물관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동굴 속에 들어가니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이런 곳에서는 삶에 어떤 의미를 두며 살았을까?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한 이 Zelve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우리는 또 다른 기괴한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 떠나야 했다.
Zelve에서 나와 'camel fairy chimney'에 잠시 들렀다.
도로변에 있는 낙타 모양의 바위인데 바위의 모습이 정말 그럴싸하다.
잠시 낙타바위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 바위와 함께 찰칵!
그런데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경이 따로 없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괴레메 풍경이다
이래서 카파도키아를 찾고 있나 보다
차로 몇 분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세 미녀 바위'이다. 큰 바위 두 개와 작은 바위 하나가 모여 있어 이름 지어진 모양이다.
누가 이 바위를 보고 미녀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정하자... ㅎㅎ
이어서 'Goreme open air musium'을 방문했는데 오늘의 마지막 방문장소이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대부분 10, 11, 12세기에 있었던 동굴 수도원으로 고대 비잔틴 프레스코화의 훌륭한 표본을 전시하는 의미 있는 역사적 수도원과 동굴 교회가 모여있는 곳이다.
조금 전 방문했던 Zelve 야외 박물관은 한때 수도원이자 사람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방문한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대부분 수도원 정착지였기 때문에 훨씬 더 다양한 유적이 보존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수도원 단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특히 이 박물관은 기암괴석의 동굴 안의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암석을 깎아 만든 수도원 내부에 여전히 원래의 색상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있어 반드시 방문해야 할 박물관이라고 알려져 있다.
11세기에 동굴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성화가 지금도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스만 제국이 카파도키아를 지배할 당시 그들은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 아름다운 수도원을 비둘기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시기에 성화가 훼손되었을 듯싶다.
이 박물관 내에는 다시 또 티켓을 사서 들어가야 하는 동굴 수도원이 따로 있다.
당연히 들어가 봐야지...
아름다운 성화가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펼쳐지는데 색상은 물론 그림도 완벽한 성화가 보존되고 있는 동굴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이 흐르는 동안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당연히 비디오와 사진 촬영이 금지가 된 곳이어서 아쉬웠지만 눈에 담고 오는 수밖에....
거대한 바위를 이동할 때마다 마술처럼 뚫린 동굴을 허리를 굽혀 다니고 엎드려 다니느라 '에구~~"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오고 몸은 지치지만 이런 곳에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생활하고 은둔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소리는 사치이겠다 싶다.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서서히 긴 그림자가 마을을 덮고 있는 모습에 달리(Salvador Dali)가 그린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가 떠올려진다.
신비하면서도 섬뜩한 느낌도 드는 마을이다.
오늘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우리의 멋진 숙소 'Anatolia cave pension'에 도착했다.
독특한 장소 카파도키아를 방문했으니 동굴 숙소에서 지내보는 경험을 하기로 했다.
비록 수천 년 전에 살았던 과거 튀르키예 인들의 동굴생활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 숙소는 이천 년 전부터 이 바위에 방을 만들어 사람들이 기거를 했던 곳이다.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 들어가니 이럴 수가~~
동굴 숙소 내에 거실도 있고 침실도, 욕실도 따로 있다.
벽은 차가운 동굴인데 실내는 너무 아늑하고 정갈하게 단장해 놓았다. 불편하리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울퉁불퉁한 벽을 만져보니 징과 망치로 한 땀 한 땀 두드려 만든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충 깎아내어 만든 동굴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만져가며 다듬은 벽이었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다니... 소름이 돋는다.
동굴 벽에 조그맣게 난 창문을 여니 괴레메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감탄이다.
많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숙소에서 잠을 잤지만 이런 천연 동굴 숙소는 다시 하기 어려운 진기한 경험이다.
과거에는 이런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변변한 시설이나 가구없이 지내야 했을 텐데...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짐을 풀고 우리는 괴레메의 멋진 노을을 보기 위해 Sunset view point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올라왔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마치 기이한 행성에 머무는 사람들이 지구의 해넘이를 보러 모여들었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광경을 보니 몇 년 전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의 이아(Oia) 마을에서도 노을을 보러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노을을 보기 위해 무리 지어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떠올려졌다.
물론 그날처럼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지는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고 흥분된 모습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괴레메의 노을은 산토리니의 에게해 노을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다. 산 위에 먹구름이 두껍게 띠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랴...
자연의 힘을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독특하고 낯선 자연을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해가 지니 금세 주변이 어두워지고 멀리 동굴집들에서는 하나둘씩 불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신기하고 멋진 장면에 한참 동안이나 보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허기도 함께 느껴진다.
마을 번화가에 있는 바자르에 들러 저녁식사로 튀르키예 전통음식을 먹고 잠시 마을 산책을 했다.
관광지다 보니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가 대부분이고 다양한 기념품가게가 많다. 특히 고급스러운 카펫을 파는 가게에 눈이 간다.
밤바람을 쏘이고 싶어 숙소 발코니에 나가 괴레메의 야경을 본다.
밤이 되니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불빛들이 오히려 차분한 밤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에 떠있는 별들도 오늘따라 더 선명하고 밝게 빛을 내고 있다.
낮에 보았던 괴이한 바위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동굴과 주택에서 아스라이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괴레메 마을을 수놓고 있다. 잊지 못할 그림 같은 야경이다.
낮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움과 낭만이 합해진 묘한 분위기가 피어오른다.
행복한 밤이다.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상쾌한 밤공기에 시원한 맥주 그리고 낭만적이고 몽롱한 밤 분위기...
그저 모든 게 좋다.
이 글은 2022년 9월~10월에 걸쳐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