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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야(Konya)의 재발견

그냥 스쳐 지나갈 뻔한 도시, 콘야

by 담소 Feb 22. 2023

오후 4시가 넘어 으흘라라 계곡을 벗어난 우리는 부지런히 '콘야(Konya)'로 향했다.

역시 튀르키예에서의 운전은 눈이 행복하다.

독특한 자연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바람에 지루함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콘야까지 약 2시간 정도의 운전은 지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야 하는 어려운 운전이었다.

우리가 렌트를 한 차는 전혀 선팅(자외선차단)이 되어 있지 않아 구름 없는 하늘에서 강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가림막을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더 이상 따가운 햇살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스카프와 옷가지들로 얼굴을 보호해야 했다.ㅠㅠ

콘야 가는 길

따가운 햇살과의 전쟁 끝에 해가 넘어갈 즈음 우리는 드디어 콘야(Konya)에 도착했다.




2022년 9월 30일, 튀르키예 콘야(Konya)에서 맞는 아침이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식사를 한 후 코냐를 떠나기 전에 숙소 근처의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어젯밤 편안한 마음으로 공원을 걸어보려 했지만 산책할 밤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숙소로 들어왔었는데 아침에 가보니 그곳은 공원이 아니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공원묘지였다.

하지만 비석들 사이의 간격이 꽤 좁다.

튀르키예는 고인에 대해 화장을 하지 않는 전통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젯밤 무턱대고 갔더라면 한밤에 공동묘지를 거닐 뻔했다. ㅎㅎㅎ



좀 더 걸으니 콘야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새로운 도시, 콘야가 만들어진 것 같다. 

건물도 분위기도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까지 모든 게 새롭다.

곧게 뻗은 넓은 도로와 새롭고 멋진 건물들 그리고 그 가운데 위치한 우아한 자태의 자미(cmaii) ...

어젯밤에는 이런 걸 전혀 보지 못했다.


우리는 먼저 콘야의 구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전통 가옥들은 서서히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옛 가옥을 철거하고 새 건물이 들어서니 점점 전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구시가지 한편에는 얼마 전 방문했던 부르사(Bursa)의 거대한 재래시장과 같은 규모의 시장이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있었다.

시장의 상인들은 활기찼고 새로 시작하는 하루를 즐겁게 맞이하고 있는 듯 보여 내 마음도 가볍다.

싱싱하고 다양한 과일들과 채소들 그리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들이 많이 보인다.



시장을 지나니 코냐의 특색 있는 박물관들과 공연장이 보인다.

먼저 코냐에서 세마(sema, sufi whirling)춤을 공연하는 장소(IRFA)를 방문했다. 

IRFA(문명연구센터)는 튀르키예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독창적으로 되살려 사회에 유익한 개인을 육성하는 걸 목표로 하는 조직이며 이 건물은 전통적인 튀르키예의 이슬람 전통기법을 가미한 건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조심히 내부를 들어가 보는데 아름답고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오늘 밤 세마춤 공연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떠나는 날이라 공연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연장 외관 건물이 무척 독특하고 아름다운데 튀르키예 전통 타일이 많이 장식되어 있는 걸 보니 전통에 대한 그들의 애착이 강하게 느껴진다.     


IRFA 내부


조금 더 걸으니 'istklal Harbi Sehitler Abidesi 박물관'을 만났는데 이곳은 전쟁용사 순국 박물관과 비슷한 곳이었다.

튀르키예 건국의 초창기 시대인 다르다넬스(Dardanelles) 전쟁부터 부터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전쟁의 역사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안내를 해주시는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시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시며 박물관 이층에 한국 참전 군인 협회가 있는데 아직도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생존해 계시고 있다고 하신다. 

만나고 싶어 전화를 해봤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셔서 많이 안타까웠다.     

직접 만나 감사의 말과 조그마한 기념품도 드리고 싶었는데...

대신 박물관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할아버지에게 자그마한 기념품을 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시면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역시 튀르키예는 한국을 도와준 고마운 형제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간다.



이어서 '파노라마 박물관(Konyanuma panorama)'을 방문했다.

이 박물관은 코냐에서 수피즘을 출발시킨 메블라나의 일대기를 사진과 그림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8세기 무렵부터 나타났으며 12~13세기 이후에 많은 교단이 조직된 수피즘의 '수피'라는 말의 어원은 수프(양모)를 몸에 걸친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이층에는 코냐 초창기부터의 생활 모습과 그 당시 문화와 관련된 모형을 직접 만들어 제시해 쉽고 재밌게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미니어처들이 무척 섬세하고 정교해 놀랐다.



수피즘의 창시자인 메블라나의 마지막 고향이기도 한 Konya는 튀르키예에서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매주 한 번씩 공연되는 세마춤(Whirling Dervish)은 이스탄불과 같은 도시에서 상연되는 일부 상업 공연과 달리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배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춤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코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메블라나 박물관(Mevlana Museum)'을 방문했다.

이곳엔 관람객들이 꽤 많다.

박물관 안에는 커다란 자미(Camii)가 있는데 그 자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수피즘의 창시자인 메블라나의 관이 중앙에 화려한 장식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영묘는 1981년에서 1994년 사이에 사용되었던 튀르키예 5,000리라 지폐의 뒷면에 묘사되었다고 한다.

메블라나의 수피즘은 청빈과 금욕, 고행을 중요시했던 종파인데 그의 관은 무척 화려한 게 아이러니하다.

부르사에서 본 오스만의 무덤 보다도 훨씬 더 화려한 듯하다.

자미를 둘러보는데 세마 춤을 출 때 들을 듯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사람들은 명상을 하는지 기도를 하는지 눈을 감고 정지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도시 코냐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니 흥분이 된다.

  



콘야 중심가에 도착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종류의 빵도 사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알라딘 공원(Aladin Park)을 방문했다.

알라딘 공원 입구

이 공원은 복잡한 도시 소음과 많은 인파에서 잠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었다. 

공원 한쪽에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자미(camii)가 있었다.

우리에게 자미를 안내해 주시겠다는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다.

이 자미 안에서 4,2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자미 내부는 의외로 소탈했다.    

눈에 띄는 건 일반 자미와 달리 내부에 42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비잔틴 양식, 로마 양식, 그리고 셀투크투르크 양식 등 다양한 양식의 기둥이 모여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자미 외관과 내부

코린트 양식, 이오니야 양식으로 된 기둥들, 마호메트의 모양이 새겨진 기둥 양식 등 몇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기둥들을 이 자미안으로 옮겨 오는 것도 꽤나 힘들었겠다. 

하지만 이 기둥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약탈이었을 것이다. 

원래의 자리에서 기둥이 뽑힌 채 고대의 신전과 건축물들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씁쓸하다.



자미에서 나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오래된 나무들도 많고 색상도 다양한 가을 장미가 가득하다. 

한적한 공원 내의 벤치엔 띄엄띄엄 시민들이 앉아 휴식을 즐긴다.

번잡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한적한 공원 분위기에 마음도 정화가 되는 듯하다.

알라딘 공원

그런데 부르카를 입은 여성이 공원에 더러 보인다.

여행 중 히잡을 쓴 여성들은 많이 봤지만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보니 낯선데 콘야가 종교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도시라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원을 나와 다시 시내 중심가를 걷는데 눈앞에 이발소가 눈에 보이자 남편이 호기심 삼아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한다.

우린 계획도 없이 이발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남편은 나이 지긋하신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겼다.

겉으로 보기에도 경륜이 있어 보이는 분 같다.

무척 정성스레 머리를 깎아주시고 다듬어 주신다. 말쑥하게 잘린 남편의 머리를 보고는 스스로 “촉 귀젤(아주 좋아요)”이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벽에 붙어 있는 코란의 구절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우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해 주시는 걸 보니 무척 싶은 신앙심을 갖고 계신 분임을 느끼게 된다. 코냐는 종교색채가 강한 보수적인 도시라고 했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설명을 끝낸 후 갑자기 밖으로 나가서 아이란을 사가지고 오시더니 우리에게 마시라며 나눠주신다.

다정다감하신 행동과 베풀어주는 뜻밖의 친절에 기분이 좋아진다.

생소했지만 재밌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다행히 말쑥하게 잘린 남편의 머리가 훨씬 단정해 보인다.


콘야는 콘야만의 강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분명했다. 

비단길, 면화의 길, 향료의 길 등 많은 길들이 거쳐가는 도시가 콘야였던 만큼 도시 콘야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메블라나와 수피즘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전통문화와 역사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

코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 잘못된 인식으로 떠날 뻔 한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단 몇 분만에 한 도시에 대해 알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경솔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엔 아쉬운 도시였다. 



이제 코냐를 떠나 실레(sile) 마을을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코냐에서 약 15분 정도 운전하면 작은 마을 실레가 나오는데 이 도시는 오스만 시절 많은 학자들과 문인, 그리고 과학자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한다.

입구에는 커다란 하맘(목욕탕)이 보인다.

근데 막상 도착해 보니 조그마한 sile 마을의 거리는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들어차 있어 옛날 유적과 전통 마을 분위기는 느끼기 어려웠다.

실레의 거리
실레의 하맘과 동굴마을

관광객을 위해 많은 상가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을의 오래된 전통과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져 변해가는 마을에 대해 아쉬움도 든 마을이었다.     

     



이제 sile를 떠나 오늘의 목적지인 지중해를 품고 있는 마을 '키질롯(Kizilot)'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가 출출해진다.

운전 중 괴즐레메를 팔고 있다는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길 옆 공터에 차려진 식당으로 들어갔다. 

실수였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우릴 반갑게 맞이하며 다가오시더니 온갖 친절을 베푸신다.

묻지도 않고 우리에게 차이를 따라주시고 차이를 마시는 사진을 찍으라며 내 포즈도 정해주신다. 그러더니 옥수수 찌는 솥에서 옥수수를 꺼내주시며 먹으라고 하신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웠지만 친절한 행동과 웃는 얼굴에 거절하기어려워 하라는 대로 따라 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옥수수 1개를 먹게 되었고 점심식사로 괴즐레메를 주문했다.

사실 우리는 괴즐레메를 1개만 주문하려 했는데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인 할아버지는 알아서 해주시겠다며 우리를 테이블에 앉게 했다.

그러자 갑자기 또 꿀단지를 가져오시더니 꿀을 떠 먹여주신다. 헐~~

꿀 1병을 사라는 얘기였다. 

그제야 우리는 단호하게 사지 않겠다고 표현하자 알겠다며 가져가신다.

마침내 괴즐레메와 함께 샐러드가 우리 앞에 놓였는데 커다란 괴즐레메를 무려 4개나 가져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포장을 해서 가져와야 했다.

그리고 괴즐레메와 옥수수를 먹은 점심 식사 가격은 150TL. 

무려 레스토랑에서 먹는 저녁 식사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려고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정신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호갱이 되었고 바가지를 썼던 것이다.

코냐에서는 친절한 이발사를 만나 기분이 좋았는데 바로 이어 친절한 척하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니 기분이 그리 좋진 않다.

튀르키예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한참 운전을 해서 도로 높은 곳에 오르니 멀리서 지중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흑해를 보고 왔는데 오늘부턴 지중해다.

튀르키예에서 처음으로 지중해를 만날 수 있는 마을 Kizilot에 도착했다. 

키질롯 마을은 시데(side) 근처의 작은 마을로 모래자갈 해변과 아름다운 해안이 잔잔히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낮에는 해변에서 수영을 하며 즐기고 저녁에는 칵테일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딱 그만인 마을이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호텔 앞이 바로 지중해인데 몇 걸음 걸으면 바로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숙소를 선택했다. 

숙소 내에는 야외 풀장도 갖추어져 있지만 바다 수영이 최고다. 기대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호텔 뒤편에 있는 바다로 곧장 들어갔다.

모래가 발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따뜻하니 신발이 필요하지 않고 바닷물도 매우 깨끗하다. 

이곳은 낮 기온이 30도가 되니 바다에 들어가도 물이 차갑지 않다.

지금까지 지중해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바다에 직접 들어가 수영을 하는 건 처음이다.

설레고 신이 난다.


한낮 키질롯 바다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바다에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해변에서 가까운 곳인데도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들이 많다. 

물이 참 맑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지중해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한참 동안 하고 나니 피곤하다.

서서히 해가 진다. 

오늘도 새롭고 멋진 경험으로 가득 채운 하루였다.

저녁 식사는 호갱이 되어 점심식사를 잔뜩 주문하고 남아 싸가지고 온 괴즐레메로 대신해야 했다. ㅠㅠㅠ 




이 글은 22년 9월~10월에 걸쳐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글입니다.


힘든시기를 겪고 있는 튀르키예여 힘내시길...

지진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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