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적지 시데(side)를 방문하다.
우리가 묵었던 키질롯(Kizilot) 마을을 떠나 튀르키예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대 도시 중 하나인 '시데(Side)'를 방문하는 날이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지금까지 거의 느끼지 못했던 더위 때문이다.
우리가 가려는 시데의 낮 기온은 무려 38도이다.
역시 튀르키예 남부로 내려올수록 '더위란 이런 거야...'라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많이 덥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데(Side)에 도착했다.
시데는 아나톨리아어로 '석류'를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다산의 여신 시데(Side)가 딸을 위해 눈에 띄는 색의 꽃을 꺾어주지만 그 순간 시데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의 발은 나무뿌리로 변했다고 한다.
여신의 꽃이었던 꽃을 따버린 그녀, 시데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과일에 피 색깔을 주고 생명의 상징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하며 결국 시데는 석류나무로 변했고 이 지역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한다.
시데는 터키 남서부 중심도시로 아름다운 바다를 비롯해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많은 고대 문명이 존재했던 역사문화의 보고이자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멋진 해변뿐만 아니라 이곳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헬레니즘(Hellenism)과 로마 시대의 많은 유적과 흥미로운 유물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역시 관광객들이 많다. 단체로 온 유럽 관광객들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 역시 튀르키예에서 주요 관광지인 것만은 틀림없다.
아침 9시를 조금 넘긴 오전인데도 벌써 훅~ 하고 뜨거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벌써 태양은 뜨겁고 그늘이 없는 도로를 걷자니 더위가 더 실감이 난다.
매우 값진 중요한 유적지를 방문했는데도 이렇게 덥고 뜨거운 날씨는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나의 몸을 벌써 지치게 만들고 정신도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데(side)의 유적을 하루 종일 탐험하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인데 내 마음속에선 어서 시원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라고 벌써 아우성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이상 side ancient city(시데 고대 도시)를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시데의 고대 도시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적인 지역 중 하나이며 한마디로 야외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33년에 투쟁 없이 시데를 점령했고 그는 이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고 이곳을 문화도시로 융성하는데 기여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시데 고대 도시에서는 그리스,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도시의 성벽과 문, 바실리카, 무역 아고라, 현재 시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고라 목욕탕, 주교 궁전, 개선문, 베스파시아누스 분수, 님파이움 기념비적 분수, 고대 극장, 아폴로와 아테나 신전. 고대 극장과 박물관 등 고대 도시의 중요한 역사적 흔적이 어느 곳보다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4세기부터 점점 쇠퇴하여 7세기에 들어서자 아랍함대가 시데를 습격하여 불태웠고 이후 지진 등으로 인해 10세기에 이곳은 폐허가 되어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고 결국 시민들까지도 인근 안탈리아(Antalya)로 이주해야 했다.
시데 고대 도시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유적이 눈앞에 나타난다.
'Nymphaeum'이라고 불려진 이것은 고대 분수이다.
'나인 스트림'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물의 원천이 마나브가트(Manvgat Falls)라고 한다.
매우 인상적인 구조로 된 유물로 원래 20m 높이로 지어졌지만 지진으로 인해 12m로 축소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로와 동시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앞에는 큰 우물(?) 같은 것이 보인다.
지금도 안탈리아에서는 "History Comes to the Day of the Day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복원 및 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안내판에 'House with consoles'라고 되어 있는 이 유적(아래 사진)은 도로 옆에 지어진 시설로 시데에서 가장 잘 보존된 집 유형 중 하나라고 한다.
위층을 지탱하는 콘솔의 구조로 된 이 집의 현재 중심 바닥은 화재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방에는 여전히 모자이크 바닥의 흔적을 볼 수 있었으며 집 내부에 분수와 하수도 시스템이 발견된 걸 보니 집 구조가 어마어마했을 듯싶다.
왠지 모를 감동이 함께 온다.
그늘 없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고대 도시의 대로를 걸어가는데 거대한 극장(The theatre)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고대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극장 안으로 직접 들어와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 당시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극장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생각하니 소름도 돋는다.
이 유적은 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오늘날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한다. 무려 15,000명이나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 극장인데 3층으로 지어졌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구조가 비슷하다고 하는 이 극장은 로마 시대에 검투사와 야생 동물 싸움이 벌어지던 극장이자 투기장으로 사용되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야외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다.
비록 완전하게 보존되고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기둥과 그 당시의 양식들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몇 천 년 전 고대 사람들이 걸었다는 바로 그 대로(大路)와 같은 길이라는 거다.
시데가 가장 번창하던 시기인 서기 2세기에 정문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기둥이 늘어선 넓은 두 개의 길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도시 아고라로 이어지는 도로였고 현재까지 여전히 시데의 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원래 너비가 20m였으며 대리석 석판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집 안에는 모자이크로 바닥을 도배했고 도로에는 대리석을 대리석을 깔았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거리를 따라 양쪽에는 모자이크 바닥이 있는 주택이 있었고 도로에 늘어서있는 기둥 뒤에는 상설 상점이 운영되었으며 역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거리도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고 현관과 상점들로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몇 천 년 전 고대 시대의 거리도 지금 내가 사는 시대의 거리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고급진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다.
비록 지금은 길이 새롭게 단장이 되었지만 길 옆엔 그 당시의 상가며 주택들이 있었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고대 사람들이 시데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고대 도시를 걸어 도로 끝에 다다르면 기둥형 거리(Columnar Street)라고 불리는 아폴로 신전이 있다.
아폴로 신전은 고대도시에서 또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이다.
아폴로 신전은 빛, 아름다움, 예술의 신으로 알려진 아폴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린트식 건축으로 된 이 사원은 서기 15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성전이 변형되거나 해체되는 수난도 겪은 신전이다.
신전의 상단 부분을 보니 조각들이 많이 사라져 무척 안타깝다.
고대 도시 방문을 끝내고 우리는 'Side Archaeological Museum'을 방문했다.
이 박물관은 AD 2세기에 Side의 고대 도시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실내 박물관과 실외 박물관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이곳은 고대 로마의 필수 시설 중 하나였던 고대 아고라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이 유적은 1960~1961년에 복원되어 고고학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이제 2000년 된 시데의 아고라 목욕탕(Agora Bath of Side)은 이 마을 안팎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Side Archaeological Museum 내에는 5개의 방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다.
다양한 조각상, 일상생활 용품, 보석, 동전, 석관 및 비문 등 많은 유적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 유적들만 보아도 그 당시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로마 제국 시대의 대리석으로 된 관(棺)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관들이 몹시 화려하고 문양들이 정교하다.
사후 세계를 중시 여겼던 걸까? 그리고 신분에 따라 관의 크기와 장식에 차이를 두었을까?
대리석으로 된 관 외부의 장식들이 볼수록 정교하고 화려하기까지 하다.
또한 전시실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품들, 몸통, 두상들과 그리고 프리즈(Frieze)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시데 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유적들을 빠짐없이 관람하기에는 무척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물며 고대 유적과 역사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내가 이 어마어마한 유적들을 빠짐없이 보면서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아프다.
시데의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서양 고대사에 대한 무한대의 지식 요구가 나에겐 무리였나 보다.
다행히 시원한 박물관(Side Archaeological Museum)에서 몸을 식히면서 관람을 하니 몸도 마음도 조금 나아진다.
커피와 차이를 마시며 쉴 새 없이 움직인 뇌와 몸을 안정시켜야 했다.
아름다운 야외 공연장으로 알려진 Aspendos thearter(아펜도스 극장)을 향해 출발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극장은 아스펜도스의 통치자가 계획한 경쟁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경쟁의 내용은 아스펜도스의 번영에 가장 크게 기여할 건축물을 짓는 것이었고 우승자는 통치자의 딸을 상으로 받는 것이었는데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결과물이 Aspendos thearter(아펜도스 극장)이었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긴 우승자는 통치자의 딸과 이 극장에서 결혼을 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실제로 극장은 Aspendos에서 태어난 그리스 건축가 Zeno가 만든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로마 황제 Marcus Aurelius (161-180 AD)의 통치 기간인 AD 2 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셀주크(Seljuqs)인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수리되었는데 그들은 이곳을 캐러밴들의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고 13세기에는 궁전으로 개조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원형극장으로 세계 제일의 고대 원형극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직접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과연 알려진 그대로였다.
아름다움이 그대로 전달되는 완벽 그 자체였다.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 삼아 자리한 이 웅장한 원형극장은 뛰어난 음향과 정교한 건축 장식으로도 유명하다.
정밀하고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으로 장식된 2층 무대 건물은 5개의 문이 있는데 멀리서 본 파사드 자체가 무척 웅장하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토록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아스펜도스 극장은 약 7,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식 극장 중 하나로 무대 가운데서 노래를 하면 관객석의 끝까지 소리의 변함없이 훌륭하게 전달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음향효과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공연장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이곳에서 연주회를 가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시즌이 아니라 연주일정이 잡혀있지 않다고 했다.
이런 곳에서 타인의 연주회를 감상할 수 만 있어도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될 텐데...
극장 입구에서는 이곳에서의 공연 실황 음반을 팔고 있었다.
내가 이런 장소에서 첼로 연주를 한다면 어떤 소리와 울림으로 퍼져 나갈지 몹시 궁금하고 흥분된다.
참 뜬금없다. ㅎㅎㅎ
오랫동안 만지지 않고 방 한쪽에 두고 있는 첼로를 꺼내 연주를 해보고 싶다.
이런 곳에서 연주를 해볼 수 있다면....
어불성설이지만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ㅎㅎㅎ
이렇게 시데(side)에서 고대로의 여행을 마친다.
Side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돌 하나를 보아도 모두 고대의 유물이고 서있는 장소가 유적지였기 때문이었다.
수천 년 된 아름다움과 고급진 웅장함으로 나를 매혹시킨 고대 도시 시데(side)!
오랜 역사 속으로의 시간 여행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 글은 2022년 9월과 10월에 걸쳐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글입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튀르키예인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