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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Atatürk)의 도시 앙카라(Ankara)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앙카라를 방문하다.

by 담소

전통마을 사프란 볼루(Safran Bolu)를 떠나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Ankara)로 가는 길이다.

사프란 볼루에서 약 3시간가량 떨어진 앙카라를 우리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해 가기로 했다.

튀르키예의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최적화된 도로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속도로 대부분은 양방 10차선으로 이루어진 넓은 도로로 오가는 차들도 현저히 적을뿐더러 제한속도가 150km까지는 충분히 달릴 수 있게 되어있고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처럼 휴게소도 완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 단점이라면 고속도로 통행료가 비싸다는 점이다.

결국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고속도로로 가는 시간에 비해 20분가량 더 걸리지만 대신 기름값이 7% 더 절약된다는 남편의 계산에 이 국도를 선택해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절약은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오르고 내리는 언덕길과 굽이 굽이 좁은 길의 마을길을 지나자 하필 우리가 가려는 도로가 공사 중이라 운행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구글지도도 소용이 없다.

지도를 보며 두 세 차례 이 길 저 길을 다녀보았지만 하필 마을 도로가 대부분 공사를 하고 있어 결국엔 현지인에게 물어야 했다.

낯선 동양인들이 다가가 길을 묻자 잘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소통을 하면서도 끝까지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고맙다.

약 지도를 보며 10여 분간을 이곳저곳 헤매고 나서야 결국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종이 지도는 멀리 둔 채 편리하다는 이유로 구글지도만 이용하고 다녔던 우리에게 구글지도를 막상 이용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는 당황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어려운 상황이 다가왔어도 여유를 갖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또한 역시 지도는 종이 지도가 진리이다.


다행히 마을에서 빠져나와 큰 도로를 만나고부터는 넓고 한적한 도로가 이어져 운전하기 좋은 길이 되었다.

도로를 달리면 풍경도 달라진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 후엔 협곡이 보일 때가 있고 푸른 초원이 나오나 싶다가 돌산도 보이고 다시 끝없는 평원도 보이는 등 다채로운 자연 풍경이 번갈아 나타나 지루할 틈이 없다.

나라의 면적이 넓다 보니 지형도 풍경도 무척 다채로워 장시간 운전을 해도 피곤함과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튀르키예에서의 운전이다.



드디어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Ankara)'에 도착했다.

과연 한 나라의 수도답게 넓다.

이스탄불과는 분위기가 몹시 다르다.

세련된 건물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고 길도 넓직하다. 도로 옆에 자리 잡은 놀이공원의 면적도 끝이 없다.

하지만 중심가에 들어오니 차선도 복잡하고 자동차도 많아 낯선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 들어와 운전을 한다는 게 쉽진 않다.

보행자들은 신호등이 붉은색인데도 자동차만 오지 않으면 무작정 건너고 본다. 아니 자동차가 오고 있어도 건너는 중이니 오는 차가 멈춰라 하는 식의 보행이다. 성격이 급한 탓인가 보다.

그 와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거리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의 초상화가 그려진 깃발이다.



무사히 호텔(Cinnah hotel)에 도착, 짐도 풀지 않은 채 우리는 앙카라 구경에 나섰다.

오후 2시 햇살은 뜨겁다.

해가 지기 전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하기에 택시를 이용해 '앙카라 성(Ankara castle)'을 방문하기로 했다.

튀르키예의 다른 지역과 달리 앙카라의 택시는 바가지가 없다는 정보를 들어 안심하고 택시를 탔다.

앙카라의 택시

앙카라 성이 지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앙카라는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십자군의 공격도 받았으나 결국 1227년 셀주크 투르크가 이 지역을 탈환했고 이 성은 1832년 오스만 시대 때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앙카라 성까지 올라가는 골목길에는 여느 관광지처럼 다양한 품목의 기념품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는 가게를 구경하며 올라가는 길이라 힘듦도 모르겠다.

기념품 가게 내부


앙카라 성은 역시 성 다운 웅장함이 느껴진다.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내부 성벽은 아랍의 침공을 막기 위해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이고 외부 성벽은 9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 성벽 안에는 오스만 튀르크 시대의 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시가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가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앙카라의 전경이 모두 보인다.

도시 전체가 내 아래에 있는 기분이란....ㅎㅎ

성벽은 앙카라 최고의 전망을 제공하고 있었다.

놀랍다.

도시가 평원에 있다 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성벽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전경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앙카라 전체를 한 눈으로 보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멋진 성이다.

붉은색 지붕이 파도처럼 넘실 거리고 저쪽 한편에 고층건물의 마천루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참 동안이나 머물며 눈에 담는다.

성 안의 광장 한쪽에선 바이올린 소리와 기타 소리, 그리고 노랫소리가 들린다.

앙카라 성의 오래전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 구슬픈 노랫소리와 악기 연주는 앙카라 성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한층 자아내고 있다.



넋 놓고 음악을 듣다가 성에서 나와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Erimtan archeology and art Museum이다

유적들이 많아 서 있는 그 자리들이 바로 유적지가 되는 곳이 튀르키예이며 큰돈을 내지 않고도 훌륭한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앙카라였다.

이 박물관은 2015년 튀르키예의 문화 예술 민간단체의 소장품을 전시로 시작된 박물관이었는데 그리스, 로마시대의 장식품과 생활 용품들, 그리고 벽화들, 특히 아나톨리아 지역의 유적들이 대부분 전시되고 있었다.

그 당시 여성들의 장신구 중 하나인 귀걸이도 지금 내 귀에 걸려있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아름답다.

심지어는 술병과 그릇들에 새겨져 있는 섬세한 묘사도 결코 지금 사용되는 것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시대의 도자기 기술이나 현재의 기술에 큰 차이가 없음을 느끼고 많이 놀랐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인들은 분명 장인들과 천재들이 많았을 것이다.

감탄사가 연속으로 나온다.



이곳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근처에 있는 Museum of anatolian civilizaion을 방문했다.

이곳은 조금 전에 들렀던 박물관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역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발굴된 여러 전시물들이 공개되고 있었는데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신석기시대, 초기 청동기 시대, 아시리아, 히타이트,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주크 및 오스만 시대 등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발굴된 장소와 이름이 구체적으로 공개되고 있어 더 놀라웠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그려진 벽화들을 통해 오래전 생활상과 그들의 뛰어난 재능을 알게 되었고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에서 보이는 그들의 두뇌와 손기술의 능력은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그들의 기술과 뛰어난 재능에 놀람의 연속이다.

심지어 신석기시대에 벽난로를 배치했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표시판(Tablet)'이란 것이 제작되어 사용되던 유물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무척 흥미롭다.

종류도 무척 다양했는데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강에 빠뜨린 후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무죄임이 입증되었다면서 무죄증명서를 주고, 살던 부부가 이혼을 하며 이혼증명서를, 결혼을 하면 결혼 증명서 등을 만들어 주었다니 삶에 있어서 모든 행위에 대해 빼곡하게 새긴 태블릿을 수여했다고 되어 있었다.

때로는 비록 비합리적이기도 하고 이성적인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은 현재와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고 나니 놀라울 뿐이다.

박물관을 돌아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앙카라에 머물 기회가 있다면 꼭 박물관 방문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야 했고 걸어서 Mustafa Kemal Atatürk(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는 곳까지 갔다. 동상만 보더라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멋진 인물이다.


'cumhuriyet museum'을 방문했는데 이곳은 그(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대통령 시절 '대통령 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cumhuriyet museum외관
cumhuriyet museum 내부

Mustafa Kemal Atatürk(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인들에게 있어 신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터키 국회는 무스타프 케말에게 '조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Atatürk)'라는 경칭을 수여했는데 그는 혁명가이자 정치가, 튀르키예 공화국의 창시자로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슬람 전통복장과 일부일처제를 도입, 남녀평등에 노력했다. 심지어는 사용 중이던 아랍문자를 폐지하고 튀르키예 문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고 하니 국민을 위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나 국가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터키 화폐는 물론 공항과 거리, 공공장소 심지어는 개인 주택이나 가게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에 관한 사진 130여 점과 그의 삶의 다양한 시기를 나타내는 50여 점의 아타튀르크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또한 사용하던 집무실, 의회장소, 라운지, 연구실 등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박물관을 지어 기억하고 거대한 묘지를 조성해 전 세계인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지금도 튀르키예인들의 뇌리에 정신적 모토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앙카라 시내 중심에 있는 Genclick park(겐츨릭공원)에 들러 잠시 쉬기로 했다.

역시 넓다.

공원 안에는 호수 한가운데에서 힘차게 뿜어 오르는 분수가 많이 보인다.

지금은 해가 지기 전, 조금은 강렬함이 줄어든 햇살을 받으며 뿜어대는 물줄기가 힘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분수 주변의 벤치들은 많은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이 공원에서도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는 여기저기에 크게 걸려있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 그에 대한 앙카라 시민의 사랑을 짙게 느낄 수 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Genclick park

여유롭고 평화로운 공원에서 한참을 쉬다가 바로 옆에 있는 놀이 공원(Luna Park)에 들어가 관람차를 타보기로 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앙카라 도시 전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내려다본 앙카라는 이스탄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광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놀이공원 관람차에서 내려다 본 앙카라 전경



놀이공원에서 나와 앙카라에서 아름다운 모스크로 유명한 'Melike Hatun Mosk'를 방문했다.

몇 년 전 아부다비에서 방문했던 'Grand Mosk'에 비하면 훨씬 작은 규모의 모스크지만 나름의 독특함과 세련미가 합쳐진 우아한 모스크이다.

서서히 하나 둘 모스크에 불이 밝혀지니 모스크 외관이 더욱 아름답고 내부는 정갈하다.

Melike Hatun Mosk외관과 내부

모스크 광장 벤치에 앉아 감상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아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간다. 예배를 드리러 가나보다.

번잡한 대도시에 아잔 소리가 퍼지니 왠지 도시 분위기가 '숭고'를 떠올리게 한다.




서서히 모스크를 떠나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앙카라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알려진 한국 음식점 'Korelee'라는 식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식당까지는 걸어서 약 40여분 걸어야 했는데 앙카라 번화가를 퇴근시간에 걸으니 도로엔 차들도 사람들도 어마어마하다.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경적을 울려대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부딪히지 않으려 몸을 틀며 걸어야 했다.

역시 대도시 수도답다.


한참을 걸어 식당에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식당 앞에는 열대여섯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줄을 설 줄이야...

식당 내부를 들여다보니 한국사람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현지인들이 찾아오는 식당이었다.

식당에 있는 모든 직원들도 모두 튀르키예인들로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중 웨이터 한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오더니 한국말로 반갑게 '안녕하세요'로 인사를 한다. 기분이 좋다.

식당 주인은 한국인인데 지금은 이곳에 없는 듯하다.

앙카라의 한국 레스토랑(Korelee)


낯선 외국 땅에서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많다는 것에 무척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30여분을 기다리려니 배도 고프고 몸도 힘들다.ㅠㅠ

오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우리는 김밥, 김치찌개, 떡볶이 등을 주문해 먹었는데 의외로 맵다. 이 매운 음식을 튀르키예 현지인들이 즐겨 먹고 있다는 게 놀랍다.

여행 중 처음 맛보는 한국음식을 맛나게 배불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숙소까지 걸어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앙카라 시내의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바(bar)들은 대부분 성시(成市)를 이루고 있다.

코로나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인데 튀르키예는 경제 상황이 좋은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튀르키예에서는 인플레로 인해 물가가 치솟아 서민들이 힘들다고 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의아스럽다.

어쨌든 사람으로 번잡한 거리와 북적거리는 가게의 풍경을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우리나라의 썰렁한 식당도 앙카라의 식당처럼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앙카라 시내의 저녁 풍경


숙소 주변에 있는 공원을 잠시 들르는데 젊은이들이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걸 보니 기분도 좋고 또 왠지 부럽다.

우리도 오늘 하루 지친 몸을 달콤하고 시원한 돈두르마(아이스크림)로 달래 본다.




다음날 아침, 앙카라를 떠나기 전에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을 잠시 산책했다.

도시 여기저기 자리한 넓은 공원들 그 안에서 콸콸 물을 뿜어내는 분수와 아름다운 조경...

비록 파리의 공원만큼 다듬어지거나 세련된 공원은 아니지만 넓은 땅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니 이런 혜택을 누리는 앙카라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앙카라 시내에 위치한 공원(Segmenler park)


이틀 짧게 머물고 떠나는 앙카라지만 많은 걸 보고 느꼈으며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도시이다.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앙카라는 모든 게 풍부해 보였다.

앙카라 성(Ankara Castle)에서 바라본 도시 앙카라의 광대한 전망에 압도되었고 도시 곳곳에 있는 박물관들과 튀르키예인들이 갖고 있는 유물과 유적들에 감탄했으며 친절하고 밝은 표정의 사람들로부터는 아름다운 도시의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때때로 러시아워시간에는 도로의 차들이 복잡하게 얽혀 어지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고 거리의 신호등은 보행자들에게 의미가 없는 무용지물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오가는 자동차들은 그러려니 하고 보행자들을 위해 멈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다.

이 모두가 앙카라다운 풍경이다.


앙카라는 나의 눈과 마음, 그리고 뇌리에 많은 걸 담아갈 수 있는 풍요로운 도시였다.

박물관을 통해 튀르키예의 고대사를 이해하고 아타튀르크의 업적과 그들의 근대사를 어렴풋이 이해하면서 튀르키예인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워짐을 느끼며 수도 앙카라(Ankara)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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