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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May 18. 2023

부다페스트의 겉과 속

부다페스트 거리를 걷다.

2023 4월 25일 화요일 흐림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새벽 잔뜩 흐린 하늘은 결국은 비를 내렸다.

그런데 비는 오는데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내리는 비를 그냥 맞고 다닌다.

하인이 우산을 들고 주인을 씌워주었다는 유럽의 전통 때문일까?

아니면 비가 오락가락하는 헝가리 날씨 때문일까?

아이도, 어른도, 젊은 남녀도 모두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다닌다.

레인코트를 입었겠지만 그래도 오는 비 맞고 다니는 그들이 조금은 낯설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닝커피와 함께 비 오는 부다페스트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여유를 부려본다.


비가 오니 자전거를 타기도, 걷기도 불편할 것 같아 대신 피트니트 센터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많은 운동 시설이 잠을 자고 있다.

약 1시간 정도 운동을 한 후 숙소로 도착해 주인이 마련해 준 스파게티를 삶고 치즈볼을 오븐에 구워 간단하게 먹는다.



다행히 오후가 되니 서서히 하늘이 갠다

조금씩 파란 하늘도 보이고 젖었던 아스팔트 길도 말라가고 있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공기가 무척 상쾌하다.

식사 후 우리는 겔레르트 언덕(Gellert Hill)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이 언덕의 높이는 235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하는 곳이며 1987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겔레르트 언덕은 부다페스트의 멋진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이지만 사실 이 언덕은 헝가리 인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담겨있는 언덕이라고 한다.

이 언덕을 만든 건 헝가리인들이지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 당시 헝가리 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언덕을 만들게 했으며 심지어는 이 언덕을 헝가리 인들의 독립운동 감시용으로 지었다고 하니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격이었다.

이후 헝가리 인들은 요새를 되찾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다시 빼앗기게 되어 이 언덕에서 부다페스트를 향해 폭격을 하고 일부는 전범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리 마음 편한 곳으로 여겨지진 않을 것 같다.

또한 이 언덕의 이름인 '겔레르트(Gellert)'는 헝가리가 기독교화되는데 반대하는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와인통 속에 갇힌 채 언덕에서 다뉴브 강으로 떠밀려 목숨을 잃은 성인이다.

그는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Gerard, Gellert 주교)가 된 인물이며 성 겔레르트 동상은 그가 통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언덕에 세워진 것이니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겔레르트 언덕이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을 내려다보고 겔레르트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철을 타고 언덕 앞에서 내려 올라가기로 했는데 의 언덕정상까지는 여러 입구에서 오를 수 있다.

다행히 오르는 길은 완급을 조절하며 오를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특히 길 양 옆에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우거진 나무들, 거기에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조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절경 덕에 오르는 길이 힘든 줄 모른다.

겔레르트 언덕 입구와 오르는 길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다뉴브 강의 전경과 부다페스트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나지막이 펼쳐진 아름다운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가슴을 트이게 만든다.

헝가리 정부에서는 성 스테판 성당의 종탑 높이를 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모든 건물들이 나지막하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다페스트의 확 트인 전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이는 전망 어디를 봐도 모두 그림처럼 멋지다.

모두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다.



요새 정상에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는 종려나무 잎사귀를 들고 있는 40M 높이의 소녀상이 눈에 띄는데 그 상은 러시아가 헝가리를 속국으로 만들며 승리의 기념으로 세운 동상이라 헝가리 인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동상이다. 하지만 아픈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만들지 말자라는 의미로 철거하지 않고 세워두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겔레르트 언덕은 헝가리 인들에게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편안한 언덕이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말없이 다뉴브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겔레르트와 언덕은 왠지 할 말을 많이 품고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소녀의 상


올라간 길 반대편으로 내려오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왠지 나도 괜스레 미끄럼틀을 타보고 싶어 타고 내려오는데 재밌기보다는 겁이 먼저 나니 나도 늙었나 보다.

가족끼리 놀러 와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보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놀이터

이 언덕에서 유명한 동굴은 St. Gellért Rock Church로도 알려진 St. Paul 교단의 예배당이 있는 St. Ivan's Cave이다.

이 동굴은 "성 이반의 동굴"( Szent Iván-barlang )이라고도 하는데 , 동굴 옆에 있는 진흙탕 호수의 천연 온천수 병자를 치료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온 물이 바로 앞에 있는 호텔(Gellert Hotel)에서 운영하는 'Gellert Bath'온천에 공급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Gellert Hotel과 Bath


겔레르트 언덕을 내려와 바로 앞에 있는 리버티 다리(Liberty Bridge)를 걸어본다.

다리 난간에 올라앉아 다뉴브 강 주변을 둘러보니 또 새롭다.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는데 무척 상쾌하다. 결코 못 잊을 강바람이다.


한참 동안 강바람과 함께 다뉴브강을 내려다보니 오래전 이 강물에서 참사를 겪었던 우리 관광객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어둡고 차가운 다뉴브 강물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던 다뉴브 강이 조금은 무섭고 겁도 난다.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다리를 건너 어제 아침에 들렀던 Great Market Hall에 다시 들러보기로 했다.

오전에는 썰렁했던 시장이 오후가 돼서 그런지 홀 내에는 사람들이 많아 활기가 차고 북적거린다.

모든 가게들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손님들은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필요한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리니 이제야 시장에 와있는 분위기인데 현지인들보다는 관광객들이 더 많은 시장이다.

Great Market Hall 내부

2층에 위치한 기념품 코너에 올라가니 가게들마다 특색이 있다.

도자기를 파는 가게, 인형을 파는 가게, 뜨게 소품을 파는 가게, 사진을 파는 가게.... 등 가게마다 파는 종목이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게에서 직접 바느질을 하는 주인을 보니 솜씨가 좋은 사람들이 갑자기 부러워진다.

학창 시절 손뜨개와 바느질 수업이 있었던 가사 수업 시간이 내겐 무척 부담스러웠던 시간이었는데...




시장을 나와 번화가를 걷다 보니 '헝가리 국립 민속박물관(Hungarian National Museum)'이 눈에 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과 화려한 정원으로 둘러싸인 박물관은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대도시의 심장부 중심에서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헝가리 문화와 정치 발전에 초점을 맞춘 역사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박물관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고 정원 벤치에 앉아 봄날의 아름답고 편안한 주변 정경을 즐기기로 했다.

박물관 건물 입구 정면의 프리즈에 조각된 장식들을 올려다보니 정말 정교한 솜씨다.

부다페스트 최초의 공공 공원 가운데 하나였던 이 박물관 정원에는 아름답고 화창한 봄 날씨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잔디와 벤치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맛난 것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여유롭고 편하다.

헝가리 국립 민속박물관(Hungarian National Museum)

 



헝가리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하니 거리 (Dohány Street)로 향했다.

Dohány synagogue(유대인 성당)가 있는 곳인데 유럽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대교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한눈에 봐도 독특한 양식의 이 건물은 고전양식과 고딕 양식에서 파생된 건축양식이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비잔틴, 낭만주의 및 고딕 요소가 혼합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 특히 아랍에서 사용했던 건축 스타일이 담긴 것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니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같다.


Dohány Street는 과거 유대인 게토(Ghetto) 지역이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비극이 있었던 장소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무겁다.

뒤뜰에는 유대인 공동묘지가 있다.

이곳은 헝가리 친나치에 의해 폭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나치 시대의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1944-1945년 겨울 동안 게토에서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유대인 학살로 사망한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회당 안뜰에 묻혀 있다고 한다.

유대인 공동묘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되어야 하는데 지금도 한쪽에서는 전쟁과 폭력이 일어나 사상자가 생기고 대한민국도 항상 이런 위험에 놓여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우울하다.




Dohany synagogue 주변을 벗어나 부다페스트 골목길을 걷는 건 낭만이다.

골목길 어디를 걸어도 멋진 건물에 파묻혀 걷는 느낌이고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골목길들이다.

골목 모퉁이를 도니 바로 Street Food(Karavan)가 보인다.


자그마한 빈 공터에 약 10개의 음식 부스들을 설치하고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메뉴를 살피며 돌아다녀보니 전통간식 굴뚝빵도 있고 랑고쉬(Langos)도 보이고 햄버거류도 있다. 맥주와 커피, 주스는 물론 다양한 음식과 음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내가 먹고 싶어 했던 굴뚝빵과 Langos를 하나씩 주문해 테이블에 앉아 먹는다.

굴뚝빵(Chimney Cake)을 주문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밀가루 반죽을 빵틀에 끼어 빙빙 돌려가며 굽는다.

불에 서서히 익어가며 브라운 색으로 변해가는 빵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기대가 너무 컸나?

계피향이 조금 강하고 갓 구워 나온 빵인데도 부드럽진 않다.

부드럽고 달콤한 그리고 버터향이 강한 빵을 좋아하는 나에겐 조금 투박하다.

굴뚝빵은 내 입맛에 썩 당기는 맛은 아니었지만 헝가리 전통 간식이라고 하니 한 번쯤 먹어볼 만은 했다.

랑고쉬는 빵 위에 잔뜩 올린 치즈, 페로니, 햄 등이 올라가 있어 피자보다는 조금 짠 듯하다

잠시 쉬면서 맛난 것도 먹으니 다시 기운이 나 다시 걷는다.





걷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 다른 슬럼가(?)처럼 느껴지는 골목도 지나게 된다.

벽들과 건물에는 난잡하게 그려진 그라피티가 보이고 집들도 낡고 보수가 안된 건물도 그대로 있다.

어느 도시에나 이런 곳은 있기 마련인데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의 골목만 계속 걷다가 이런 거리를 만나니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골목을 벗어나자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아름다운 꽃들로 치장한 거리가 나오는데 이름은 'Gozsdu udvar' , 한마디로 레스토랑, 카페가 모여있는 거리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곳처럼 생각된다.

독특한 간판들과 재밌게 꾸며진 가게 입구에서 벌써 재미와 흥미가 느껴진다. 특히 레스토랑의 맛난 음식들과 헝가리의 문화를 결합한 특별한 만남의 장소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열정과 낭만, 그리고 행복도 덤으로 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된다.

서서히 주변이 어두워가니 화려한 불빛들이 더 많이 켜지고 음악 소리도 점점 커진다.

내 몸도 벌써 이곳에 동화되고 음악에 심취되어 몸이 저절로 움직여진다.


Gozsdu udvar

하지만 우리는 숙소로 가야지...




숙소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이렇게 오늘도 우리는 부다페스트의 겉과 안을 오가며 거리에 몸과 마음을 맡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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