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쌀을 사고 김치 담고 그리고 환전하기
2023년 4월 23일 일요일, 맑음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첫날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발코니에 나가니 벌써 해가 떠 있다.
다행스럽게도 숙소 발코니에 나가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위치라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상쾌한 아침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숙소 근처에 있는 공용바이크를 타고 주변을 자전거로 산책해 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가는 나라마다 자전거를 자주 이용해서 산책을 하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부다페스트 공용자전거는 30분 간격으로 무료로 사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무척 유용하고 편리한 이동 수단이다.
더구나 자전거 이용도로가 안전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사람도 많았고 가까운 곳 이동은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이용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나라였다.
숙소 맞은편 커다란 공원에 공용자전거 대여장소가 있어 그쪽으로 향해가는데 공원에 나무가 많고 새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와 상쾌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뉴브 강을 따라 달리는데 얼굴을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공기...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부다페스트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다니는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인적도 드물어 욕심을 부려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한다. Buda Part지역의 Kopaszi dike(코파시 제방), Sho beach(쇼 해변)까지 달려본다.
'Buda Part'는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으로 높고 멋진 디자인의 첨단의 건물들이 들어서는 중이라 마치 부다페스트의 신도시와 같은 느낌이다.
유럽 전통의 예스러운 느낌은 없지만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 새롭기도 하다.
공원 내부의 숲 속 오솔길을 달리는데 아름다운 경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전거에서 잠시 내린다.
다뉴브 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
주변의 초록색 나무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나고 다뉴브 강의 청둥오리들도 따뜻한 햇빛과 함께 여유 있는 아침 산책을 나와 즐기는 듯하다. 마치 우리처럼...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코퍼시(Kopaszi) 제방에 오니 이렇듯 다뉴브 강의 색다른 경치를 볼 수 있는 선물이 주어진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다뉴브 강이 아닌 숲 속을 흐르는 다뉴브 강은 정말 고요하고 잔잔한데 이런 숨은 비경을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전거를 타고 와야만 가능할 것 같다.
파리의 센 강 시테섬 끝자락에 있는 숨어있는 장소에서처럼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 장소에 좋은 날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잔디 위에 자리를 깔고 분위기 나는 식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타고나니 벌써 1시간 반이나 지났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지만 휴일 아침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꿀맛 같은 아침식사를 한다.
남편이 내려주는 구수한 라테와 갓 구워진 토스트 그리고 과일, 비록 평범하고 수수한 아침 메뉴지만 오늘 먹는 아침식사는 왠지 더 맛나다.
도착한 지 이틀째라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탓에 새벽 3시부터 뒤척거리며 선잠을 자다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몸은 상쾌하다.
잠시 숨을 돌린 후 'Life 1 Allee fiteness center'에 가서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받은 그룹 수업은 'Gerinctorna(Fit-Ball-In)'라는 수업으로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인데 척추자세를 위한 교정운동과 비슷한 운동이었다.
이미 약 십여 명 정도의 여성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들어가려니 처음이라 낯설다. 하지만 서로 미소로 인사를 시작해 주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하지만 매트 위에서 맨 몸 또는 커다란 볼(Ball)을 이용하는 동작들로 대부분 낯선 동작들이라 몸이 잘 따라주지 힘이 드는데 유연성이 부족한 남편도 내 옆에서 곧잘 따라 한다.ㅎㅎㅎ
친절하게도 강사가 우리를 위해 영어로 다시 설명을 해주는 덕에 수업을 편히 받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알리 몰(Allee Mall)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가격이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편이다.
헝가리는 유럽에서 비교적 저렴한 물가로 알려진 곳이었는데 생각만큼 저렴하지는 않다.
식사 후 숙소에서 전철로 10분 거리의 코빈(Corvin)에 있는 아시안 마켓(Asian Market)을 방문해 머무는 기간 동안 먹을 쌀을 샀다.
김치와 깍두기도 담가 보려고 대형 마켓(Lidl)에 들러 살펴보니 무는 없고 배추만 조금 보이는데 가격도 1kg에 6,000원 정도라 비싼 편이다.
배추 두 포기와 토카이 와인을 사들고 집으로 와 김치를 담갔다.
한국에서도 담가 먹지 않던 김치를 20년 전 미국에 살았을 때 담갔던 기억으로 해보려니 무척 낯설었지만 다행히 양이 적고 남편도 함께 거들어 일이 쉽게 마무리 되었다.
이제부터는 김치와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어 든든한 마음이다.
늦은 오후,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바찌(Vaci)거리를 방문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환전 수수료 없는 카드로 ATM기계에서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를 인출하려고 했으나 세 곳의 은행에서 각각 4%, 8% 11%의 수수료가 있어서 너무 비싼 탓에 카톡 헝가리 한인회 채팅방에 들어가 직거래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달러로 환전이 아니고 헝가리 화폐(HUF)로 바꾸기 때문에 수수료가 생기나 보다.
다행히 수수료 없이 포린트를 받고 한화는 한국계좌에 이체해 주는 방식으로 기준 환율로 교환을 했다.
바치(Vaci)는 서울의 명동쯤으로 알려진 곳으로 역시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거린다.
하지만 유명한 곳이라고 하기엔 다른 외국의 유명거리와는 달리 생각보다 조용하고 차분한데 거리 한쪽에서 거리 음악 연주자들이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 그나마 거리에 활기를 돋운다.
부다페스트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다니는 거리 골목골목마다 그림이다.
오히려 내 생각엔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심지어 예술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파리의 거리보다 훨씬 더 유럽의 취향이 느껴지며 건물들과 골목의 조화가 꽤 아름답고 멋지다.
거리의 이름난 카페들과 베이커리에는 줄지어 사 먹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곳에 오니 한국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유명하다는 굴뚝빵(Chimney Cake)을 사 먹을까 생각해 보지만 pass....
다음 기회로...
잠시 아름다운 바찌 거리를 산책하는데 번화가인 이 거리에서 그리고 내가 묵는 숙소 주변에서도 자동차의 경적소리를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다.
그래서 도시의 분위기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나 보다. 웬일인 걸까?
내 생각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대중교통(버스와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다시 느끼지만 헝가리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무척 잘 되어있는 곳이다.
숙소 주변엔 언제든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차와 버스 정류소가 있고, 전차는 24시간 운행을 하는지(4번과 6번) 새벽 3시에도 전차가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어 굳이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처음부터 마음이 편안한 도시는 오랜만이다.
집으로 돌아와 낮에 담근 김치와 고기, 그리고 샐러드로 저녁 식탁을 차린다.
낮에 구매한 토카이 와인도 빼놓을 수 없다.
토카이 와인을 저렴한 것과 값이 나가는 것 두 병을 샀는데 오늘은 먼저 저렴한 와인을 개봉해서 마셔본다.
처음 맛은 진한 포도맛이 나다가 점점 단 맛이 강하게 다가온다. 아주 강한 단맛이다.
500ml의 토카이 와인 한 병을 둘이서 마시니 금세 바닥이 난다.
식사를 하며 이틀 동안 경험한 부다페스트에서의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데 남편 역시 좋은 인상을 받았나 보다. 헝가리에 와서 살아보기로 했다.
피곤해진 몸에 와인까지 곁들여진 알딸딸한 기분으로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