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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May 15. 2023

흐린 날의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머문 지 사흘째입니다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흐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있다.

며칠 동안 따뜻하고 청명했던 날씨는 가고 구름 잔뜩, 바람까지 부는 월요일 아침이다.

날씨까지 흐리니 조용한 마을 분위기는 더욱 차분하다.

보통이라면 주말을 보낸 월요일 출근길 풍경은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리고 도로엔 정체가 심해 꼬리물기도 보여야 월요일 분위기가 나는 법인데 이곳은 오히려 더 한가해 주말 오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잠시 후 비는 조금씩 그쳐가는데 파란 하늘과 함께 해도 함께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진한 커피와 토스트 그리고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것들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하다는 시장 "Great Market Hall"을 방문하기로 했다.

버스로 두 정거장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다뉴브 강의 'Liberty Bridge"를 건넌다.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다리 '세체니 체인 다리(Széchenyi Lánchid, Széchenyi Chain Bridge)'를 많이 알고 있고 또 사실 제일 유명한 다리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직접 건너본 Liberty Bridge는 세치니 다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훨씬 정교하고 여성스러운 다리로 우아함까지 느껴지는 다리다. 아름답기로 말하면 리버티 다리가 더 아름답다.

원래는 황제의 이름을 딴 Ferenc József híd (Franz Joseph Bridge)라는 이름이었으며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에서 가장 짧은 다리라고 한다.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로 지어진 걸까? 

마치 여인들의 레이스자락이 길게 펼쳐진 듯한 쇠사슬 모양으로 된 교량과 우아한 첨탑이 무척 인상적이다. 또한 전체가 녹색으로 칠해진 다리는 주변의 초록 나무들과 잘 어울려 다뉴브 강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다리 중앙에 장식된 헝가리 국가의 문장도 인상적이다.

아마도 나는 부다페스트를 떠난 뒤에도 세치니보다 이 다리를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부다페스트의 Liberty Bridge

리버티 다리(Liberty Bridge)를 건너는 나는 다뉴브 강의 전경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내내 강을 마주 보고 서있는 건물과 강을 바라보는데 한데 어울린 도시의 풍경이 이렇게나 아름다워도 되나 싶다.

특히 다뉴브 강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고풍스럽고 우아한 유럽풍 건물들로 지어져 내 눈을 마비시킨다.

건물의 디자인이 독특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건물이 아니고 새로 말쑥하게 단장된 건물도 아닌데 주변과 다뉴브 강, 그리고 건물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니 다뉴브 강의 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만나는'Budapest corvinus college'의 건물도 자유의 다리 못지않게 우아하고 고풍스럽기 그지없는데 건물 군데군데 세워진 조각상들이 정교하고 섬세하다.

대학의 건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이 대학은 경제, 경영 및 사회 과학 분야에서 헝가리 최고의 교육 기관이라고 자랑하는 대학인 만큼 건물 외관도 최고인 것 같다.

아름답고 멋진 외관을 자랑하는 장소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마음도 건물만큼이나 멋지고 여유와 낭만을 가진 학생들일 것만 같다.

Budapest corvinus college



파리의 센 강 주변과는 다른 부다페스트의 고혹적인 다뉴브강 풍경에 나는 마음이 더 기운다.

내가 느끼기에는 파리의 센 강 주변이 화려함과 세련됨이라면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주변은 수수함과 고풍스러움이다.

한마디로 파리가 낭만적 감성이라면 부다페스트는 고혹이 강한 감성이다.

이런 풍경과 함께라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를 것만 같다.

이런 날, 이런 풍경엔 내 귀엔 벌써 리스트(Lizst)의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가 들리는 것 같다.

교회당의 종소리를 생각하면서 만든 음악이라지만 나는 흘러가는 다뉴브 강에 더 어울리는 음악처럼 들린다.

혹시 누가 아는가? 리스트가 다뉴브 강에 앉아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이 곡을 작곡했는지 말이다.

이런 도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 누구일까?

오늘따라 다뉴브 강의 물줄기가 더 여유 있게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 유독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띄는데 바로 'Great Market Hall'이다.

그런데 외관이 시장 건물이 아니다.

물론 시장의 외관은 이래야 한다는 정답은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시장의 외관은 목적에 맞는 실용적이고 현대적이기보다는 신고딕 양식이 곁들여진 우아함을 잔뜩 품은 건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897년에 지어진 이 시장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시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Great Market Hall의 정면과 측면

오전 6시부터 문을 여는 시장이라는 정보에 많은 가게들이 오픈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전 9 시인 시간에도 문이 닫힌 가게도 많고 그제야 문을 여는 가게도 있다.


내부 1층에는 과일, 유제품, 다양한 살라미를 포함해 육류는 물론 와인들을 팔고 있었으며 2층엔 기념품과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간편하고 빨리 조리되는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헝가리 전통 음식인 굴라쉬와 랑고쉬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어 가보니 제법 맛나 보인다.

랑고쉬는 헝가리식 피자라고도 하고 접시 모양의 빵에 갖가지 토핑을 얹어 먹는 음식인데 가격이 다양한데 꽤 비싼 가격의 랑고쉬도 팔고 있다.


'Hungaricum'이라는 팻말을 따라 지하에 내려가 보았다.

헝가리쿰(Hungaricum)은 헝가리 인들의 특별함, 품격을 부각할 가치를 나타내는 물건들, 소위 헝가리에서 인증하는 품목을 파는 곳이었다.

역시 이곳도 썰렁하다. 다른 날 늦은 시간에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다시 와야겠다.




시장을 나와 걷는 부다페스트의 아침거리는 상쾌했다.

새벽에 비가 내린 탓인지 나무들의 초록이 더 짙어져 나무들이 많은 이 도시가 마치 전원도시처럼 느껴진다.

기대했던 시장의 진면목을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지만 부다페스트의 비 온 후 거리 골목들과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날 수 있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오늘은 피트니트 센터에서 12시에 필라테스(Pilates) 수업을 듣는 날이다.

약 6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친절한 강사의 수업을 들었는데 60분 정확하게 수업을 한다.

직접 모든 동작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쉬지 않고 설명을 하시는데 무척 힘들 것 같다.

쓰지 않던 근육을 쓰고 낯선 동작을 1시간여 하고 나고 나니 진이 빠진 기분이다.

할 땐 몰랐는데 수업이 끝나고 몰려오는 이 피곤함은 무얼까?

남편도 똑같은 증상이다. ㅎㅎㅎ

역시 몸을 많이 움직이면 배도 고픈 법, 숙소 근처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와 스프링 롤을 먹었는데 부다페스트는 음식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평균 1인분 음식이 10,000원 이상의 가격을 넘는다. 이 금액을 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과 저녁은 주로 숙소에서 직접 간단한 요리를 해서 먹기로 하고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다가 오후 3시 즈음, 숙소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수영장에 가기로 했는데 오늘처럼 흐리고 바람 부는 날엔 수영장이 최고다.

우리 부부는 여행 중 수영장이 있는 도시라면 반드시 방문해 수영을 즐긴다. 낯선 곳에서의 수영도 꽤나 재밌는 경험 중 하나기 때문이다.

'Tuskecsarnok sports center'에 있는 수영장인데 이곳은 수영장 말고도 농구장을 비롯해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스포츠 센터이다.

1회 수영장 이용료도 한국돈 5,600원 정도라 많이 비싼 편이 아니다.

수영장 규모는 일반인이 수영을 하는 레인이 5개 정도가 있고 수영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레인들이 다른 쪽에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규모도 꽤 크다.

커다란 수영장 내부로 들어오니 평일 오후라 그런지 수영을 하는 사람이 적어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겠지 했는데 수영장 물이 너무 차갑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가 혹시 수영장의 차가운 물이 원인일까?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좋지만 도저히 오랜 시간 차가운 물에 수영을 계속할 수 없어 1시간도 안 돼서 나와야 했다.

바깥 날씨도 스산한데 수영장 물까지 차니 몸이 더 으스스해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묵는 숙소 근처라 자주 이용을 하려고 마음먹고 왔는데 물이 너무 차서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ㅎㅎ

따뜻한 날 다시 오기로 하고 수영장을 나왔다.


수영장을 나와 주변을 보니 수영장 단지 안에는 스포츠 센터 말고 다른 건물들도 보였는데 그중 대학 건물들, 벤처 연구소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1635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ELTE University"로 헝가리 최고의 국립대학이며 자연계와 공대가 있는 캠퍼스였다.

식당과 카페, 유흥가가 많은 우리나라의 대학 주변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이 대학 주변엔 넓은 공원과 주택들이 모여있는 조용한 구역 내에 위치한 대학 캠퍼스이다.

조그만 카페나 커피와 음료를 파는 자그마한 매장이 대학 내 도로에 한 두 곳 있을 뿐이다.

젊은 청년들이 열심히 바삐 움직이는 싱그러운 모습에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생각에 잠기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생각도 해보지만 내 내답은 No!

아니다. 지금이 좋다.

요즘 대학생활은 낭만과 열정 대신 삶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고민에 가득 찬 날 들로 계속될 것만 같은 어두움과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젊은 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열정과 공부는 때가 있단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밤 9시가 다되어가는 늦은 시간인데 공원엔 불이 환하다.

축구를 하는지 축구장엔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유 있고 평화스러운 마을 분위기에 내 마음도 서서히 여유가 생긴다.

공원 내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


흐린 날, 부다페스트에서의 색다른 경험들은 나를 많은 생각들로 하루 마무리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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