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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May 26. 2023

다뉴브 강은 아픈 사연을 품은 채  오늘도 흐른다.

부다페스트 6일째입니다.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맑음


어제처럼 청명한 날씨가 오늘도 이어진다.

창 밖 나무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걸 보니 바람도 잔잔한 것 같다.

밖으로 나가 활동하기 좋은 날씨다.


여행을 하니 남편이 내려준 커피와 딱 맞게 구워낸 토스트도 맛보게 된다. 그리고 달걀 스크램블과 과일을 곁들여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9시 즈음 숙소에서 나왔다.

예전 같으면 더 일찍 출발했겠지만 어제부터 기침이 심해져 약을 사야 했고 또 몸살기도 있는 듯 느껴져 조금 늦은 출발을 했다.




오늘은 성 이슈트반 성당(St. Stephen's Basilica), 국회의사당 방문과 그리고 부다페스트 강변을 산책하고 현지인들이 가는 재래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이슈트반 성당에 도착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헝가리 초대 국왕이며 로마 가톨릭 성인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1905년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된 성당이다. 돔의 높이는 국회의사당과 같이 896년을 기념하여 96m에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현재 대성당이 있는 이곳은 원래 Hetz-Theater라는 이름을 가진 극장이었고 동물들의 싸움이 열리는 곳이었는데 부유한 시민 한 명이 이곳에 임시교회를 세워 교구를 형성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성당 앞에 도착하니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지 아침 일찍부터 방송시설을 설치하고 성당 앞 광장엔 의자를 빽빽이 채워 넣는 등 많은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교황이 이번 주에 방문한다는 현수막을 본 것도 같은데 아마도 방문이 오늘 있나 보다.

광장에 빽빽히 들어선 의자

가림막으로 가린 채 사람들이 성당에 접근하는 걸 금지하고 있어 내부는커녕 근처에 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5월 5일, 밤 8시에 이곳 대성당에서 오르간 콘서트를 보기로 예약을 한 우리는 그날 다시 오기로 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멀리서 외관만 보아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이다.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Aura)가 뿜어져 나오는 외관이다.

신고전주의의 양식으로 된 건축에 양쪽 두 개의 종탑이 있는 파사드(Façade)가 압도적이고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의 돔이 무척 인상적이다.

아침부터 활기가 돋는 거리다.

당초 이 성당의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폴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될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계획이 변경되어 헝가리에 가톨릭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초대국왕 이슈트반 1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다페스트에서는 이 성당의 돔 높이를 넘겨서는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성당과 가톨릭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일 듯싶다.

이슈트 반 성당 앞 광장은 물론이고 주변의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거리는 벌써부터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성당에서 멀어지며 거리를 걷는데 어딜 걸어도 정말 아름다운 거리의 연속이다.

부다페스트를 다녀간 한국 여행객이 블로그에서 부다페스트를 동남아로 비유했던 적이 있다.

여행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맞고 틀리고도 없다.

동남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떤 기준에서 동남아와 비교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부다페스트는 동남아와는 전혀 다른 도시다.

분위기도 전통도 문화도 국민성도 전혀 다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방문한 동유럽의 국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로 생각된다.

부다페스트에 머문 지 아직은 엿새 밖에 안 된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걷는 길 모두가 무척 아름답고 편안함이 느껴지고 상쾌하고 깨끗하며 고풍스러움이 항상 존재하는 거리가 바로 부다페스트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 곳곳의 거리 풍경

갑자기 부다페스트 예찬론자가 된 기분이다.ㅎㅎㅎ



좀 더 골목길을 걸어 자그마한 공원을 지나니 다뉴브 강이 눈앞에 나타난다.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세체니 체인 브리지'도 오늘에서야 가까이 만났다.

'세체니 체인 브리지(Széchenyi Lánchíd)'는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을 가로질러 놓인 1849년에 개통된  최초의 다리이며,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 반 (Széchenyi István)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사자상의 위엄과 잔잔한 기품, 장중함까지 갖춘 이 다리는 남성적이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업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 국민의 진보와 각성[覺醒]을 포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동쪽과 서쪽을 이어주는 중요한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밤이 되면, 380m의 케이블로 이어진 수 천 개의 전등이 다뉴브 강의 수면을 수놓게 되는데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는 이유로 불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걸어서 다리를 건널 수도 없고 자전거와 자동차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자전거도로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엔 위험이 따를 것 같아 곁에서 눈으로만 보기로 했다.

다뉴브 강에는 많은 다리가 놓여 있는데 역시 이 다리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다리인 만큼 역시 다리에서 느껴지는 기품과 위엄이 충분히 느껴진다.

다뉴브 강의 녹색의 리버티 다리( (Szabadsag hid)가 우아함이었다면 세체니 다리는 모양새나 다리 전체에서 위세와 권위까지 넘친다.

한 나라를 대표하고 한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세체니 체인 브리지는 그 가치가 충분히 느껴지는 다리였다.

우리나라에도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꽤 많이 있는데....



강을 벗 삼아 한참을 또 걷는다

강바람이 오늘따라 좋다. 포근한 바람이다.

그런데 강 바로 옆에 철로 된 오래된 녹이 슨 신발들이 놓여있다.

어른이 신었던 신발들 그리고 어린아이가 신었던 신발까지...

그런데 그들의 신발은 다뉴브 강을 향해 놓여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Shoes on the Danube Bank (Cipők a Duna-parton)'이라는 곳으로 이 신발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이다.

헝가리 조각가가 만든 이 작품은 유럽에서 학살당한 60만 명의 유대인을 상징하여 만든 신발로 총 60켤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신발 위에는 꽃들이 놓여있다.

어린아이가 신었던 신발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솟구친다. 마음이 무척 아프다.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강을 바라보고 서있었을까...

애절함, 두려움, 처절함, 절망감이 느껴져 소름이 돋는다.

결코 이런 짓은 사람이 사람을 향해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사람이 무섭다.


무거운 마음을 강바람에 씻어 버리고 싶어 강변을 한참 동안 다시 걷는다.


조금 더 걸으니 다뉴브 강을 바라보고 있는 국회 의사당이 보인다.

국회 의사당은 그 나라 모든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집결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는 건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럴까?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외관이다.


국회의사당의 화려한 파사드는 묵묵히 흐르는 다뉴브 강을 바라보고 있지만 국회의사당의 정식 입구는 동쪽에 있는 광장 쪽으로 나있었다.

곳곳마다 어찌 이렇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조각이 되어 있는지, 어찌 이렇게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다울까?

국회의사당을 표현하는 나의 한정된 형용사에 속상할 뿐이다.


국회의사당의 돔 높이는 약 96m로, 성 이슈트반 대성당과 함께 부다페스트 시내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들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이'96'이라는 숫자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인 1896년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1902년에 정식으로 개장된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완공 이래 현재까지 헝가리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라고 한다.

1885년에서 1902까지 총 17년간 지어졌는데 아쉽게도 건축의 디자이너 본인은 완공 5주 전에 사망해 준공식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건축의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깝기도 하다.

다카의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도 완성을 못 보고 사망했는데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하느라 몸을 돌보지 않았나 보다.


우리는 내부 입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입장료가 한국돈으로 40,000 원가량 하니 적은 비용이 아닐뿐더러 몇 시간 동안 국회의사당 내부를 일일이 돌아다니느니 더 멋진 풍경을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내부도 못 본 내가 다른 나라의 국회 의사당을 큰돈 지불하며 내부를 꼭 들어가야 하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의 광장과 외관을 직접 본 우리는 강변을 걸어 멀리 보이는 머르기트 브리지(Margit Bridge, 마가렛 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강변을 걷는 일은 언제나 좋다.

마르기트 브리지

멀리서 보는 머르기트 브리지는 양 옆으로 우아한 가로등이 인상적인 다리였다.

다리는 약 120도 정도 굽어져 있다.

머르기트 다리

프랑스 엔지니어의 작품답게 정교하게 그려진 아치와 석조물, 기둥, 조각상 등은 프랑스의 멋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특히 다리의 우아한 조명은  장식용 촛대 모양으로 되었고 각 기둥의 머리는 헝가리 왕관으로 장식되어 더 기품을 자아낸다.

하지만 다리가 개통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에서 죽음을 생각하다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머르기트 브리지가 다가오면 올수록 내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다뉴브 강은 알고 있겠지... 얼마나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 이곳에서 일어났는지....


한국 여행객을 태운 유람선이 좌초되어 많은 사람이 다뉴브 강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접해야 했던 곳이 바로 머르기트 브리지 근처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관광객들을 태운 배의 선장은 이 아름다운 다리에 넋을 놓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근엄한 표정으로 다뉴브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유혹이었을까?

당시 머르기트 다리 촛대모양의 가로등에 검은색 조기가 걸려있던 영상이 갑자기 떠오른다

지금도 머르기트 다리 끝에는 그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국 관광객들을 기리기 위해 자그마한 추모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는 추모글도 한글로 쓰여있다..

이들을 찾아와 헌화한 흔적들도 있다. 나도 꽃이라도 사들고 와야 할걸 그랬다.

잠시 묵념을 한다. 평온한 쉼을 가지시길...

머르기트 다리 앞에 있는 한국 관광객을 위한 추모공간

머르기트 다리까지 강 산책을 마치니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어간다.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재래시장인 'Lehel market'을 삼십 여분 정도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마켓까지 가는 길의 골목골목이 너무 아름답다.

골목에 다양한 색상의 튤립을 심어놓으니 삭막한 골목길에 봄기운이 그득하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모여있는 골목은 그 나름대로 예스런 운치가 있고 차가운 시멘트 벽의 단순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공간엔 이렇게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을 심어 황량할 수 있는 골목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중에 공원(성 이슈트반 공원)을 거쳐 가는데 주택들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이지만 아주 조용하고 나무가 많아 휴식을 하기에 그만이다.

골목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튤립화단
성 이슈트반 공원

삼십 여분을 걸었지만 봄 풍경을 제대로 즐긴 듯 해 마냥 즐겁다.

마침내 'Lehel market'에 도착했다.

어제 방문했던 그레이트 마켓 홀(Great market Hall)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아담한 재래시장이고 대부분 현지인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Lehel market

2층에도 올라가 보는데 식당이 서너 군데 있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하우스도 보인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식당 앞에 가보니 가격도 아주 저렴하고 양도 많다. 하지만 배고픈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베트남 식당으로 갔는데 이곳 역시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함께 주문한 에그롤이 아주 부드럽고 맛나다.

줄을 길게 선 식당과 메뉴
우리가 선택한 베트남 식당과 음식

식사 후 자그마한 카페에 들어가 마키아토를 주문했는데 내가 바랬던 한국의 달착지근한 마키아토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마키아토(cafe espresso macchiato)가 나온다.

참,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내 실수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커피 위에 올려진 우유 모양이 조금은 찌그러졌지만 저렴한 가격(2,500원)을 주고 마실 수 있으니 이 정도는 문제없다. ㅎㅎㅎ

참고로 카페 마키아토는 "우유로 모양을 낸 에스프레소"를 뜻한다.

내가 주문한 마끼아토

1층 매장 과일코너를 둘러보다 싱싱하게 보이는 딸기 1kg을 한국 돈으로 11,000원가량 주고 샀는데 한국에 비해 결코 싼 편은 아니다.

매장 내에 눈에 띄는 처음 보는 빵도 있고 달콤한 케이크도 많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잔뜩 사고 말았다.

저녁 식사메뉴로 소시지와 튀긴 치킨을 사가지고 숙소로 향하는데 먹을거리가 풍부하다는 생각에 양손에 든 짐이 전혀 무겁지 않다.ㅎㅎㅎ




오후 5시 30분,

숙소에 돌아 피트니스센터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끝으로 오늘의 주요 일정을 마무리했다.

부다페스트의 봄바람, 강바람과 함께 한 여유 있는 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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