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우리는 '부다페스트 시민 공원( Városluget Budapest)'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 공원은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진 멋진 숲 공원일뿐 아니라 공원 내부에는 Heroes' Square(영웅 광장)을 비롯해 아름다운 성(Vajda hunyad castle)과 House of Music Hungary, 세체니 온천 그리고 주변에는 서커스 공연장까지 있어서 흥미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주말에만 열리는 플리마켓, 'Gozsdu weekend Flea market'과 'Mercadillo Flea market'을 들러 가기로 했다.
며칠 전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플리마켓(에체리 플리마켓)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그곳은 정겹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가 풍겨 나의 기대와는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오늘 방문하는 플리마켓은 마을 장터의 정이 오가는 북적한 분위기에 흥미를 끄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향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지금 막 가판에 물건을 꺼내놓는 가게들이 많다.
'Gozsdu weekend Flea market'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는 골목에 빈 공간을 이용해 주말에만 장을 서는 마켓이었는데 보이는 물건들은 직접 짠 수예품과 그림들, 여성을 위한 액세서리들이 대부분이었다.
Gozsdu weekend Flea market
주말 장터엔 현지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그보다 주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화창한 봄날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토요일 오전의 여유와 평화로움을 느낀다.
Gozsdu weekend Flea market을 나와 약 20여분 걸었을까
대로(大路) 옆 큰 공원에 차려진 'Mercadillo Flea market'에 도착했다.
Mercadillo Flea market
이곳 역시 앞서 방문한 플리마켓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액세서리와 장식, 손뜨개용품, 가방 그리고 아이들 옷, 그림들과 액자 등의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플리마켓(flea market)은 종류에 상관없이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물품을 가지고 나와 저렴한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플리마켓은 구매자들에게 팔기 위해 만든 새로운 상품들이 많다.
간혹 아이디어가 독특한 장난감도 보이고 오래된 골동품도 더러 보이는데 정작 사고 싶은 물건은 딱히 없다. 개성 있고 취향을 나타내는 유니크한 물건들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다니다 보니 오래전 미국에서 사는 동안 주말마다 방문했던 가라지 세일(Garage sale)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내 생각엔 가정에서 하는 가라지 세일이 더 다양한 물건들이 많았으며 훨씬 정겨웠던 기억이다. 심지어는 그냥 가져가라며 선심을 베푸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가라지 세일에서는 그 가정의 분위기와 인테리어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 더 흥미롭다.
아직도 우리 집에는 그때 가라지 세일에서 구입한 접시들을 사용하고 있고 그 접시들을 볼 때마다 흐뭇한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아쉽게도 이곳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가판대들이 모여있는 거리 장터에 불과했다.
더구나 대로변에 교통도 많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은 북적한 공간이라 이런 장소를 기회삼아 상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호기심도 즐거움도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했고 내가 기대했던 정겹고 소박한 마켓과는 거리가 멀어 조금 실망도 했다.
우리는 플리마켓 구경을 마치고 서둘러 오늘의 목적지 '부다페스트 시민 공원( Városluget Budapest)'으로 향했다.
멋진 거리 'Andrássy Avenue(안드라시 에비뉴)'의 끝에 위치한 공원이다.
이 거리는 고풍스러운 외관이 특징인 네오 르네상스식 맨션과 아름다운 타운하우스가 줄지어 들어선 곳으로 2002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또한 이 거리에는 헝가리 음악교육자인 코다이(Kodaly) 기념 박물관과 헝가리 미술 대학 그리고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며칠 전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레 공연을 관람 후 뒷골목을 산책하며 무척 고풍스러운 거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 거리가 바로 Andrássy Avenue 라니 더 주의 깊게 살피며 걸을 걸 그랬나 보다.
이 거리의 끝에는 Heroes' Square(영웅 광장)이 있고 1896년 헝가리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밀레니엄 기념비에는 성스러운 왕관을 들고 있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동상과 두 개의 막대가 있는 사도 십자가가 있으며 그 아래의 동상은 마자르 족장 7명의 인물의 동상이 둘러 서있다.
반원형 아케이드에는 각각 헝가리 역사의 인물을 나타내는 14명의 동상이 있다.
아케이드 상단 왼쪽에는 노동과 부를 상징하는 낫을 든 남자와 씨를 뿌리는 여자 그리고 뱀을 채찍으로 삼아 전차를 몰고 전쟁을 상징하는 남성상이 있다.
오른쪽 콜로네이드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을 들고 마차를 탄 여성과 작은 금상을 들고 있는 남자와 야자나무 잎을 가진 여자의 이중 동상이 있는데, 이는 지식과 영광을 상징한다고 한다.
품위 있게 만들어진 조각들이 무척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영웅광장에 대해 가이드가 설명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위인들의 동상을 저렇게 조각해서 세워 놓는다면 과연 세계적인 방문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
한국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우리의 위인들에 대해 열심히 듣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공원의 분위기가 차분함 보다는 다소 심란함이 느껴진다.
공원 내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며칠 전 방문했던 조용하고 한적했던 마르키트 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원이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심지어는 자동차들도 다닐 수 있도록 도로가 난 바람에 공원이 조용하기보다는 조금은 산만하다는 느낌도 든다.
공원 안으로 몇 걸음 걸어 들어가자 우아하고 멋진 성 'Vajda hunyad castle'이 눈앞에 나타난다.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Vajda hunyad castle
이 성은 루마니아의 성 Hunyad castle를 모방한 성으로 헝가리의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 천 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의 일환으로 1896년에 지어진 성이라고 한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Bridge Gate는 전형적인 중세 성문을 연상시키는데 왼쪽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날개, 오른쪽에는 고딕 양식의 날개가 화려함을 장식하고 있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안뜰을 갖고 있는 이 건물이 지금은 농업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인데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나 싶다.
그런데 성의 외벽에는 영화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했던 배우 '벨라 루고시(Bela Lugosi)'의 동상이 있어 나도 옆에서 찍어본다.
건물 뒤 쪽엔 헝가리의 유명한 작가의 동상도 있다. 그런데 펜대를 쥐고 있는 집게손가락칠이 벗겨져 반짝거릴 정도로 만진 흔적이 있어 나도 동상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만져본다.
그의 손가락을 만지면 나도 글이 술술 잘 써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꼭 잡아본다.
근데 효험은 없다. ㅠㅠㅠ
공원 내 아름다운 카페가 보여 커피를 사들고 나와 벤치를 찾아 잠시 쉬기로 하는데 이곳은 아이스링크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이 다 말라 호수의 바닥이 보인다.
여름엔 호수가 되고 겨울엔 아이스링크장으로 사용되는 곳이 지금은 물이 하나도 없으니 삭막하다.
숙소에서 싸 온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우리는 다시 공원을 산책했다.
'House of Music Hungary'란 건물을 만났다.
House of Music Hungary 입구
'하우스 오브 뮤직 헝가리'는 3층으로 된 구조로 지하층에는 전시 공간이 있고 1층에는 전시실과 카페 그리고 기념샵, 콘서트 홀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도서관 및 세미나 실, 연구실 등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디자인이 하얀색 대리석바닥에 양쪽엔 검은색 철제 기둥으로 되어 있어 마치 피아노를 연상시킨다.
House of Music Hungary 내부 계단
특히 내부 천장의 구조가 독특한 디자인과 색으로 구성되어 내 눈길을 끈다. 천장의 디자인이 낯익다 했는데 몇 년 전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천장이 떠오른다.
이곳에서는 라이브 음악과 음악 관련 워크숍은 물론 교사를 위한 음악 학습 및 지도법 등 음악 교육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 아마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자 코다이(Zoltan Kodaly)의 음악 교육 방법을 전수하지 않을까 싶다.
코다이(Zoltan Kodaly)는 헝가리에서 태어난 음악 교육자로 내가 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도 코다이의 지도법을 배웠던 적이 있는데 그의 고향 헝가리에 와서 접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House of Music Hungary를 나오면 바로 앞에 하늘을 향해 양쪽으로 높게 뻗어있는 동산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장소는 민속학 박물관의 지붕역할을 하고 있었다.
끝까지 올라가 보는데 마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정상에 도착해 내려다보니 넓게 펼쳐진 시민 공원뿐만 아니라 주변의 전경이 한눈에 보여 가슴이 뻥 뚫린다.
상의를 벗고 혼자 잔디밭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 잔디에 엎드려 책을 읽은 여성,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잔디에 앉아 노는 장면, 젊은 커플이 어깨를 마주대로 속삭이는 모습...
공원에 있는 모두가 편안한 모습들이다.
멋진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와 가까이 가보니 '세체니 온천(Széchenyi Gyógyfürdő)'이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온천으로 바로크 양식을 재현한 웅장한 외관이 나의 눈길을 끈다.
우리는 며칠 전 마르기트 섬에 있는 온천을 다녀온 터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는데 온천의 외관이 무척 아름다워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온천 내부도 아름다울 게 분명하다.
역시 유명한 데엔 그 이유가 있다.
세체니 온천
우리는 공원의 넓은 지역을 걸어 다니기엔 힘들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이곳저곳을 쉽게 갈 수는 있었지만 자동차들도 많고 도로가 움푹 파여있는 곳들이 너무 많아 자전거로의 이동이 쉽지 않아 오래 탈 수는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공원이라 해도 넓은 공원을 몇 시간 돌아다니니 몸도 쉽게 피곤해진다.
잔디에 앉아 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우리도 벤치를 찾아 쉬기로 했다.
벤치에 앉으니 이젠 눕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 사람의 왕래가 뜸한 장소를 찾아 잠시 눈을 붙여본다.
십여분 낮잠을 자고 나니 훨씬 몸이 가볍다. 꿀잠이다.
공원에서 나온 우리는 헝가리 시립 서커스단 공연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 주말 오후라 그런지 가족들 단위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다.
서커스 장 입구
서커스(circus)??
새롭다. 내가 서커스를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인가 싶다.
10여 년 전 베이징 여행을 하며 방문한 서커스장이 마지막 서커스 구경인 듯싶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기괴한 재주를 부리던 사람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많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저런 묘기를 부리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오랜 훈련을 이겨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부다페스트 시립 서커스는 1889년 최초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유서 깊은 서커스단이며 이 장소는 중부 유럽의 유일한 석조로 만들어진 서커스장으로 날씨에 상관없이 약 2,000명이 볼 수 있는 거대한 관객석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서커스 공연자들 역시 과거에 Jászai Prize를 수상한 Gábor Eötvös 광대와 같은 유명한 공연가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영국의 배우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도 그의 공연을 보고 경의를 표했다고 하니 꽤 인정받았던 단체인 것 같다.
또한 부다페스트 시립 서커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때문에 연습이 중단된 우크라이나의 서커스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이 서커스 장을 제공했는데 부다페스트 서커스단 관계자는 "서로를 살펴봐주고 돕는 것이 서커스 예술의 기본 정신 중 하나"라고 말하며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을 들으니 한층 더 이 단체가 위대해 보인다.
화려한(?) 무대가 열리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몽골,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헝가리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서커스 단들이 함께 공연을 했다.
그런데 가끔 실수도 한다. ㅎㅎ
서커스 공연 중 실수를 하는 순간을 실제로 보게 되니 내가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럴수록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로 응원과 격려를 한다.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 있지... 다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다.
많은 관중 앞에서 묘기를 부리며 어려운 기술을 뽐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을 견뎌야 했을지...
나는 서커스를 보면 왠지 마음 편하게 관람할 수만은 없다.
서커스 공연을 보고 나와 숙소로 오는 길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기로 했다.
부다페스트 뉴가티(Nyugati) 기차역 건물에 있는 맥도널드인데 외관의 모습과 내부의 인테리어가 색다르다.
시멘트로 된 차가운 느낌의 벽 대신 붉은색 벽돌로 쌓아진 벽과 커다란 창들이 많아 외관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맥도널드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편리성과 신속성을 중시해 공간과 가구를 배치하기 때문에 조금은 삭막하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방문한 맥도널드의 내부는 심플과 평범함이 아닌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실내에는 여기저기 고풍스러운 등도 매달려있어 우아한 멋도 풍기고 발코니 형식으로 오픈된 2층은 Mc Cafe가 운영되고 있었다.
맥도널드 매장 내부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풍기는 맥도널드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맛집, 멋집 투어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취향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따라 하고 있다니... 나도 어쩔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