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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ul 29. 2023

봄밤에 울려 퍼진 천상의 소리에 매혹되다.

부다페스트 14일째, 성 이슈트반 대성당 음악회에 가다.

2023년 5월 5일 금요일, 맑음


며칠동안 부다페스트를 벗어나 교외를 다니며 많이 걷고 바쁘게 다녔더니 몸이 조금은 지친 느낌이다.

오늘은 조금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저녁 8시, 이슈트반 성당에서 공연하는 음악회를 보러 가기 전까지는 종일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화창한 봄 날씨, 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진 우리는 마냥 숙소에 머물 수 없어 남편은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필라테스 수업을 한 후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더니 땀이 나고 개운한 몸이 되어 훨씬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볍다. 숙소에만 있었더라면 오히려 더 몸이 늘어졌을 것 같아 집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을 끝내고 남편을 만나 Science Park 단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곳은 뷔페식으로 된 식당인데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양만큼 담아 무게를 재어 계산을 한 후 테이블에서 먹는 식당이다.

남편은 취향껏 음식을 골라왔고 나는 오늘의 특별 메뉴로 나온 팔라친타(Palacinta)를 선택, 저렴한 가격(약 4,000원)으로 맛나게 먹었다.

따뜻한 날씨덕에 야외 테이블로 나가 점심 식사를 하는데 햇살이 포근하고 예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다페스트의 쌀쌀했던 날씨 탓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란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이틀 전부터 마치 여름날씨처럼 따뜻해졌다.

여행 중에는 날씨 상황이 매우 중요한데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날씨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선물이다.

멋진 날씨와 맛난 음식 그리고 시간의 여유까지 누리며 훌륭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따뜻한 실내 공기가 우리를 낮잠으로 이끈다.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우리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 Szent István-bazilika)으로 향했다.

음악회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성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는데 연주 프로그램도 다행히 귀에 익은 곡들이라 함께 가는 남편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당 근처에 왔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가게가 있다. 장미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다.

아이스크림을 장미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곳인데 하나씩 손에 들고 나오는 아이스크림들이 참 예쁘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결국 우리도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보니 금방 먹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하지만 예쁜 장미모양으로 만들어 준 장미 아이스크림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도, 더 이상 군침을 흘리기 싫어 결국 내 입으로 향했다. 맛도 부드럽고 달콤하다.

사진 한 장에 장미아이스크림의 아름다움을 담고 서둘러 먹으며 연주회장으로 향했다.



성 이스트반 성당의 고풍스러움은 성당 외관 뒷면에서도 여전하다.

Bajcsy-Zsilinszky út를 향하고 있는 성당의 후면 외관은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진다.

성당의 품격과 위엄이 느껴지는 정문 위에는 Karoly senyei가 제작한 이스트반의 동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낄 헝가리 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이슈트반 성당의 뒷 편 외관과 이슈트반 동상



드디어 성당 내부로 들어오니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엄숙하고 위엄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는 성당이다.

정면에 가로줄이 두 개인 십자가를 들고 근엄하게 서 있는 성 이슈트반의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십자가는 교황청으로부터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부여받은 성 이슈트반의 십자가이며 헝가리만이 이 십자가를 사용한다고 한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운 성화와 섬세한 조각들 그리고 아름답고 화려한 제단을 보자 역시 왜 성 이슈트반 성당이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성당이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슈트반 대성당 내부

성당의 벽과 기둥은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내부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유리관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이것을 보기 위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슈트반 대성당의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제단과 이슈트 반 1세의 오른손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1905년 봉헌된 이후 음악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특히 교회의 수석 오르간 연주자는 항상 매우 존경받는 음악가였으며 오래전부터 대성당은 클래식 음악 및 현대 음악 공연의 본거지가 되어 왔다고 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이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행복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이슈트반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악기의 울림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음악회를 위한 훌륭한 울림장치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늘 연주 첫 곡은 트럼펫 연주다.

귀에 익은  Charpentier 곡의 'Te Deum'과 purcell이 작곡한 'Trumpet Toluntary' 두 곡을 연주했는데 오늘 공연의 시작곡으로 화려한 팡파르를 듣는 것 같아 덩달아 마음이 흥분된다.

트럼펫 연주자의 연주도 뛰어난데 트럼펫으로 소리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가볍게 연주할 뿐 아니라 기교가 무척 뛰어나 음 하나하나 빠뜨리는 음 없이 정확하게 연주를 한다. 관악기로 이런 기교를 연주하려면 꽤나 수준이 높은 연주자임이 분명하다.


이어지는 공연은 소프라노 가수의 'Ave Maria'이다.

Gounod의 아베 마리아부터 시작해 Caccini, Mascgni의 아베 마리아까지 귀에 익은 곡들을 부른다.

고음역을 꾀꼬리 같은 소리로 자유자재로 부르는 성악가의 목소리에 한참이나 넋이 나갔다.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도 심상치 않다.

Albinoni의 ' Adagio'를 연주하는데 일반적으로 현악합주를 통해 듣던 'Adagio'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가뜩이나 느리게 연주되는 곡이 오르간으로 연주되니 더 어둡고 차분하며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현악 합주로 들을 때는 여리고 슬픈 느낌이 강했는데 오르간 연주로 들어보니 웅장하고 묵직한 느낌이 더 강하다.

느낌이 새롭다.

오르간 연주자의 모습


마침내 오늘의 하이라이트, 파이프오르간 독주이다.

성당 뒤편 2층에 위치한 파이프오르간의 육중한 저음이 내 귀에 들리는 순간 소름이 돋는 건 물론 커다란 성당 내부를 꽉 채우는 충만하고 풍만한 오르간 소리에 내 모든 감각이 바늘처럼 솟아오른다.

며칠 전 자그마한 성당에서 듣던 파이프오르간 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고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울림이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Toccata, Air and Fugue in Dminor)의 연주를 파이프오르간 실음으로 듣는 건 처음이다.

성당 뒤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연주자의 연주 모습을 직접 보며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뛰어난 연주 기교에 의한 저음과 고음의 현란한 이동이 내 귀를 한참 동안이나 매혹시킨다.



약 1시간 20분 정도의 연주회가 끝나고 성당을 나오면서 우리는 오늘 들었던 연주들과 파이프오르간의 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성당에서 연주한 연주자들은 비록 세계 정상의 연주자 들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에 못지않은 충분한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준 훌륭한 연주자들이었음에 서로 공감했다.


낮과 밤 이곳저곳에서 멋진 음악이 연주되고 훌륭한 음악가들의 공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도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품격 있고 수준 높은 음악회를 자주 볼 수 있는 도시가 부다페스트였다.


이게 내가 헝가리에서 살아볼 또 한 가지의 이유이다.






 


이전 13화 헝가리의 속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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