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16일째, 아시아인이 '유럽인의 날'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2023년 5월 7일 일요일 맑음
화창한 일요일,
헝가리에서도 오늘은 'Mother's Day'다.
며칠 전부터 꽃가게들마다 예쁜 꽃들이 수북하고 거리엔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도 내일은 어버이 날.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로만 인사를 드렸다.
오히려 엄마는 우리에게 행복한 시간 보내라고 건강 조심하라고 응원과 걱정을 하신다.
나의 부모님에게 나는 나이가 들어도 항상 물가에 놓여진 아이(?)인 것 같다. ㅠㅠ
남편은 그동안 지친 몸을 충전하겠다며 숙소에서 쉬기로 했고 나는 피트니트 센터로 향했다.
운동을 하면 몸도 개운하고 마음도 훨씬 가벼워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서너 명 밖에 없어 실내가 훨씬 쾌적하다.
약 40분 정도의 러닝으로 가볍게 시작을 하고 10시부터 시작하는 'Alakformalo(Shaping)'수업을 신청했는데 처음 듣는 수업이라 조금은 낯설다.
강사를 따라 처음 30분은 스쾃과 런지 자세 등 맨 몸 운동을 하고 나머지 30분은 매트에서 볼과 스텝퍼를 이용한 격한 운동을 쉬지 않고 했다.
허걱!!
1시간 수업을 하는 동안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내 몸은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기에 버겁다.
수업 이름이 'Shaping'답게 나의 body shaping이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나와 같이 운동을 했던 현지인들은 아직도 기운이 펄펄하다.
나이 때문일까? 아마도 이들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듯 하니 나이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스스로의 합리화를 해본다.ㅎㅎㅎ
힘들었던 만큼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온 나의 마음과 몸은 날아갈 것 같다.
이래서 운동을 하나보다.
점심식사는 남편과 함께 Pizza를 먹기로 했다.
열심히 힘들게 운동을 한 후 Pizza 라니...
나의 Body Shaping은 오늘도 이렇게 무너지나 보다. ㅠㅠㅠ
점심 식사 후 우리는 'Liberty Square'로 향했다.
유럽에서 매년 5월 9일은 '유럽인의 날'인데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이 파리에서 발표한 ‘쉬망 선언(Schuman declaration)’을 기리는 날이라고 한다.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시 그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을 제안했고 ECSC는 이후 자유무역지대 설립, 관세 동맹, 단일 시장·통화 도입 과정을 거쳐 지금의 유럽연합(EU)이 됐다. 이런 이유로 그는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고, 이 선언이 나온 날을 지금도 유럽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작년에 '유럽인의 날'이 시청광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부다페스트 이곳저곳에 걸린 '유럽인의 날(Europa Nap)' 축제 포스터를 보니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서 축제가 벌어지는 'Liberty Square'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유럽인의 날 축제에 아시아인이 가는 것도 조금은 어색한 일일 수 있지만 그들은 이런 날 어떤 이벤트를 하며 어떤 분위기로 축제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도시에서의 축제 방문은 우리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날씨가 따뜻해 자전거를 타고 다뉴브 강을 따라 약 30여분 이동해 Liberty Square까지 가기로 했다.
오늘은 특히 페스트(Pest) 지역 강변도로의 자동차 진입을 통제하고 있는 덕에 자전거를 타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다른 날의 배가 되었다.
피부에 와닿는 강바람이 며칠 전 스쳤던 강바람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하다.
주변의 초록색 짙은 나무들과 조용히 흐르는 다뉴브 강 그리고 강변에 들어서있는 멋진 건물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순간은 더없이 행복했다.
오늘도 다뉴브 강변엔 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강변을 걷거나 벤치에서 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여럿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자전거나 킥보드로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모두들 일요일 평온한 봄 날을 누리려 강변에 모였는데 이들 모두 한결같이 편안한 모습이고 행복한 모습들에 나도 기분이 더 좋아진다.
자전거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자유 광장(Liberty Square)'에 도착했다.
광장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곳곳에 설치된 부스에서는 무언가에 대해 홍보를 하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스에서 설명을 듣기도 하고 서류에 작성도 한다.
한쪽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신나는 음악과 쇼를 공연하고 체험 부스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곳 축제에도 푸드 코드가 들어섰는데 음료와 맥주, 추로스, 케밥, 핫도그, 햄버거 등을 팔고 있다.
우리도 추로스와 음료를 사서 벤치에 앉는다.
화창한 날씨,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성한 나무들, 파란 하늘을 수놓은 하얀 구름들 그리고 음악과 먹거리...
사람들의 얼굴엔 여유로움과 편안함, 그리고 그들에게서 흥도 느껴진다.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에 분위기까지 참 좋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응원을 하는 의식이 거행된다.
우크라이나인들과 유럽인들이 무대로 나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당신들을 응원하며 당신들과 영원히 함께라는 듯...
노래를 부르고 있는 뒷 배경의 동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함과 처참함도 보인다.
통곡과 오열, 절망스러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민간인들과 전쟁을 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먹먹하고 아프다.
유럽의 한쪽에선 이렇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무섭고 잔인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극과 극의 상황에 마음이 울컥해지고 아려온다.
잠시 후 의식이 끝나고 음악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헝가리에서 유명한 3인조 남성그룹 'ARANYAKKORD'이 출연해 포크(Folk), 발라드(Ballad), 록(Rock) 등 다양한 노래를 부르며 무겁던 분위기를 활기찬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세계 각국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자리가 참 자유롭고 여유롭다.
마치 서로들 알고 있었다는 듯 익숙한 인사와 대화가 자연스럽다.
어린아이부터 청년들 그리고 노인들, 커플과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즐기는 분위기가 느긋하고 평화롭다.
잔디와 벤치 그리고 테이블마다 맥주와 음료를 마시고 즐기며 우리는 하나라는 듯 스스럼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들의 마음과 모습들이 부럽다.
'유럽인의 날'에 아시아인이 함께 있어 어색해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편하게 다가와 준다. ㅎㅎㅎ
과함이 없고 지나침이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과 행동들에 우리들 마음도 편해진 시간이었다.
서서히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다뉴브 강가 잔디밭에 들러 일요일 오후의 분위기를 느껴본다.
여전히 이곳에서도 편안함과 여유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