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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Aug 30. 2023

관광 없는 여행

부다페스트 17일째 : 무계획으로 하루를 보내다

2023년 5월 8일 월요일 맑음


부다페스트를 떠나 헝가리의 온천 도시 '발라톤(Balaton)'에 가기 전까지 오늘부터 사흘동안은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 지내기로 했다.

우리의 이번 부다페스트 여행은 욕심과 조급함이 없는 여유 있고 보통의 일상생활을 하며 지내기로 했지만 낯설고 새로운 도시를 방문한 이상 한 곳이라도 더 방문하려고 욕심부리며 부지런을 떤 날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바쁘고 알차게 돌아다닌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부턴 조금은 게으름도 피우고 여유 있게 보내기로 했는데 말이 쉽지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벌써 남편은 사흘 동안 무얼 할까 생각 중이니 말이다.ㅎㅎㅎ


모처럼 아침 9시가 넘어 일어나 여유 있게 아침식사를 한 후 남편은 휴대전화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숙소 맞은편 과학공원(Science Park) 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 식당인데 메뉴가 자주 바뀌고 또 무게를 달아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양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어 가격도 저렴한 가성비 좋은 식당이다.

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원생과 교수들 그리고 연구소의 직원들이었는데 우리는 점심 식사장소로 벌써 세 번째 이용하고 있지만 방문할수록 괜찮은 식당이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과학공원 단지 내에 있는 실내 수영장엘 갔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수영장을 꼭 방문한다.

다른 나라, 낯선 도시의 색다른 수영장을 방문해서 수영을 하곤 하는데 나름 꽤 스릴 있고 재밌다.

이 수영장을 며칠 전 방문했을 때는 물이 무척 차갑다고 느꼈는데 오늘은 조금 나은 편이다.

50m 국제규격 수영장은 선수용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일반인이 사용하는 25m의 작은 수영장은 5개의 레인이 있는데 레인 한 개의 넓이가 무척 넓어 편하게 수영할 수 있었다.

오늘도 수영장에는 서너 사람밖엔 없다.

그런데 레인 한 곳에서는 장애인이 수영을 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와서 물에서 도움 없이 혼자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놀랍다.

장애인이 수영을 할 수 있도록 의자가 달린 이동식 크레인이 있어서 입수와 출수 시 안전하게 물에서 휠체어로 이동이 쉽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놀랍기도 했고 무엇보다 장애인의 용기 있는 행동에 칭찬은 물론 장애인과 일반인을 자연스럽게 동일시하는 헝가리 인들의 의식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나오니 몸이 노곤하다.

오후 4시 30분엔 피트니스 센터에서 척추 스트레칭(Gerinctorna + stretching)과 요가 수업(GerincJoga)을 받기로 예약했는데 큰일이다.




결국 숙소에 들어와 삼십 여 분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요가 겸 척추운동과 스트레치를 집중으로 하는 수업이라 연달아 두 개의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 수업은 스트레칭을 위한 수업으로 다양한 자세로 몸을 스트레칭하다 보니 몸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내 마음대로 몸이 펴지질 않는다.

그동안 내 자세에 많은 문제가 있었음을 느낀다. 이 시간을 계기로 더 많이 내 몸을 스트레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이어서 쉽고 단순한 동작과 명상에 관련된 요가 수업이었는데 편안한 자세에서 눈을 감은채 명상을 하는 동작들을 많이 가르쳐 준다.

몸의 스트레칭 후 몸과 마음이 릴랙스 되는 힐링 시간이었다.

피트니스 수업 예약 사이트 및 Gerincjoga (요가)수업 후 강사와 함께 찍은 사진

두 시간 연속 수업을 받고 나니 나른하고 기운도 없다.

격렬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내 몸에서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무척 고프다.



저녁 식사는 모처럼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 'Black Dog'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 보아둔 레스토랑인데 항상 야외 테이블까지 꽉 차있는 식당이었다.

오늘도 역시 야외 테이블엔 많은 손님이 와 있어 남아있는 테이블이 몇 개 없다.

우리는 하우스와인과 블랙독 Pizza를 주문했다.

레스토랑 입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인데 한국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국에서의 레스토랑 분위기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자리에 앉아있는 모두 상대방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며 서로 말을 주고받고, 술을 마시고 있지만 큰소리 없이 얘기가 오간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술자리가 무척 편해 보인다.

그런데 50분이 지나도 우리가 주문한 피자는 나올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는 으레 그러려니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것에는 상관없이 서로 얘기에 집중하느라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치 식사를 하러 왔다기보다 모여서 얘기를 하러 온 목적이 더 커 보인다.

이렇게 음식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한국 식당에서 일어난다면 직원에게 몇 번을 물었을 상황인데 누구 하나 물어보거나 재촉하는 사람 없이 마냥 그들의 대화에만 집중한다.

한국에서 온 나만 급한가 보다. ㅠㅠ

결국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가 저녁바람에 추위를 느껴 실내로 들어왔다.


드디어 주문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어 피자가 나왔다. 화덕에서 굽느라 늦어졌나 보다.

배고파서 맛이 있는 건지 원래 맛집인지 가늠이 안 가지만 엄청 맛난 피자다.

순식간에 맥주와 피자 한판이 사라졌다.

오래 기다려 맛있는 피자를 먹었더니 불편했던 마음이 금세 행복해진다.

역시 내 기분은 음식에 약하다.ㅎㅎㅎ


오늘 우리는 부다페스트의 관광지를 찾아가거나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집 주변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저 한국에서 하는 우리의 휴일 일상(낮잠, 수영, 짐(Gym), 외식 등)들을 부다페스트에서도 해보았다.

낯선 나라에서의 일상도 한국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느낀다.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보니 커다란 둥근달이 떠있다.

보름인가?

'어버이날'라고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기특한 녀석~~ㅎㅎㅎ

배도 부르고 눈도 마음도 풍요롭다.

그런데 우리의 여행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숙소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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