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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Sep 15. 2023

Tourist보다는 Traveler가 된 하루

부다페스트 18일째, 이래도 여행일까?

2023년 5월 9일 월요일 맑음


한국에서 보내는 일상처럼 오늘도 부다페스트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분주한 아침이었다면 어제부터는 여유 있게 일어나 거한 아침식사를 하고 피트니스 센터로 향한다.

(한국에서도 우리 부부의 휴일에는 오전에는 보통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수영장을 가는 게 일과다.)



햇살 가득한 봄날 아침의 부다페스트 거리,

도로에는 차들도 사람도 한산하고 피트니스 센터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다.

체육관에 도착하니 차분한 거리의 한산함과는 다르게 신나는 리듬의 커다란 음악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워 더 생동감 있게 만든다. 

건장한 체격에 저마다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운동을 하니 왠지 더 멋있어 보인다. ㅎㅎㅎ

남녀 모두 근력을 기르는 운동에 집중을 하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바벨, 레그 프레스, 레그컬, 렛풀다운 등에 열심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그들이 건강하고 다부진 몸을 유지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과는 조금은 다른 상황에 눈길이 가는데 한국에서도 이곳처럼 개인 PT를 많이 받나 싶다.

넓은 체육관 곳곳에서 꽤 많은 트레이너들이 저마다 열심히 지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이고 적극적으로 건강에 투자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의 개인 PT가격은 한국 가격의 절반정도였다.(물론 체육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음)


나는 몸을 풀 겸 30분 정도 가볍게 걷고 나서 수업(Stretching, Shaping)에 참여했다.

첫 수업 'Stretching'은 과도한 몸동작을 하는 게 아니고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이라 따라 하기 어려운 수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동작이라도 한 시간 동안 수업을 받은 후 바로 이어서 'Shaping'수업을  하려니 쉽지 않다.

더구나 도구들을 사용하는 Shaping수업은 60분 동안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업이라 따라 하기도 바쁘고 숨도 가쁘다.

특히 유연성이 좋지 않은 남편과 근력이 약한 나는 어디서 생긴 자신감이었는지 우리의 나이를 전혀 생각지 않고  지나친 의욕만으로 2개의 수업을 예약해 버린 탓에 두 시간의 운동에 몹시 힘이 들었다.

수업을 모두 마친 우리는 어이없는 웃음이 실실 나올 뿐이었다.ㅎㅎㅎ

다시는 수업을 2개씩 예약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을 마치고 나와 케밥으로 점심식사를 주문했는데 힘든 운동 후 지쳐 있는 상태에서 바로 먹는 점심식사라 입맛이 없어 다 먹지도 못한 채 케밥 두 개 중 하나는 숙소로 싸가지고 와서 저녁 식사로 먹어야 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데 이러다 몸이 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이 들어감을 점점 느낀 시간이었다. ㅠㅠㅠ




부다페스트 여행 절반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부터는 서서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준비를 할 것 같다.

보통 우리는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맛난 거 사 먹으라며 부모님께서 용돈을 주시기도 하고 또 오랫동안 뵙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부모님 선물은 항상 챙긴다.

헝가리를 방문하는 분들의 의견을 들었더니 주름크림(Gerovital Cream)과 근육통에 좋은 크림(Inno Rheuma)을 사가지고 간다고 한다. 

우리도 나이 드신 엄마를 위해 주름크림을, 여전히 테니스를 즐겨하시는 아빠와 남동생을 위해 근육통에 좋다는 크림을 몇 개씩 샀다.

그리고 우리가 마실 토까이 와인(Tocaj)도 몇 병도 포함해서.

귀국 선물을 사고 보니 한국에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조금 조급해지기도 한다.



오후에는 '마르기트 섬(Margit Island)'과 그곳에 있는 온천을 다시 방문했다.

섬을 산책 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쉬다 오는 것도 좋을 듯싶어 온천까지 들러 오기로 했는데 마르기트 섬은 방문할수록 더 마음에 드는 섬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평일 오후 마로니에와 라일락 나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섬에는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일뿐 오늘도 한가하고 조용하다. 

언젠가 우리도 다시 이 섬에 올 때는 간단한 먹거리를 가지고 와서 먹어가며 오랜 시간 여유 있게 즐기고 싶다.


온천장에 들어갔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며칠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사람이 많다.

햇살을 피해 주로 그늘을 찾는 우리와는 달리 햇살에 몸을 맡기는 유럽인들이 부럽다. 

먼저 우리 발걸음은 야외 수영장으로 향한다.

조금은 차갑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야외 수영장에서 30여분 수영을 한 후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

몸이 녹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물에 넣을 때 내 몸에 전해져 오는 전율, 그 짜릿한 감촉과 느낌이 참 좋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 지긋한 노부부들인데 얼굴도 표정도 편안하고 좋아 보인다.

우리도 오래도록 편안한 부부로 남고 싶다.


야외 온천장에서 나와 이번에는 실내로 들어와 높은 온도의 물에 몸을 담가 본다.

39도 정도의 뜨끈한 물이다. 

뜨거운 물에 있으니 야외 온천의 따뜻한 물(36도)에 담글 때보다 나의 몸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뜨거운 물엔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현지인들도 이 뜨거운 물을 오래도록 즐기고 있다. 

사우나실에도 들어가 보았다.

우리는 십 분도 채 안돼 금방 나와야 했는데 이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잘 참고 앉아있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온천에서 2시간 넘게 즐기고 밖으로 나오니 저녁 무렵의 공기가 무척 상쾌하다.

오늘이 이 섬 마지막 방문이라고 생각하니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언젠가 꼭 다시 오고 싶은 섬이다.




저녁 식사 후 예고 없이 숙소의 주인이 방문했다.

내일 아침 가족 모두 이탈리아를 가야 해서 미리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며 와인 한 병을 사들고 온 것이다.

어제부터 여유가 생긴 우리는 호스트 가족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초대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이른 이별을 해야 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다.

기회가 되면 이 분들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섬과 온천에서 누린 여유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이 우리의 몸과 마음의 피로를 싹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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