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현 Sep 22. 2023

기대 이상(以上)이었던 도시,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에서의 19일째 :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2023년 5월 10일 수요일 맑음


오늘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하지 않고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항상 숙소에서 간단히 먹곤 했는데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오늘은 숙소 앞 베이커리에서 간단히 하기로 했다.

주택가 주변에 있는 베이커리인데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우리처럼 가게 테이블에서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빵을 사서 바쁘게 가는 사람이 많다.

역시 베이커리에서 마시는 따뜻한 라테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고소하다. 아침마다 남편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다.ㅎㅎ


몇 년 전 파리(Paris)의 베이커리에서 아침식사를 했던 그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커피와 빵맛 그리고 주변 풍경도 파리의 그날 아침 분위기와는 조금 먼 것 같다. ㅎㅎㅎ

숙소 근처 베이커리에서의 아침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부다파트(Budapart)와 코파시(Kopaszi) 제방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원 주변에 새롭게 들어선 현대적이고 멋진 건물 그리고 깨끗한 주변 환경이 어우러진,  조금은 이색적인 구역이다.

공원 주변의 현대적인 건물


코파시 제방 공원

하지만 자전거로 이 공원 안쪽을 달리다 보면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조용히 흐르는 다뉴브 강을 만나게 되는데 무척 한적하고 전원적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곳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공원에 가득한 식물들은 오월(五月)의 싱그러움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색색의 꽃들이 피어있고 초록의 나무들에서는 반짝반짝 윤기도 난다.

산책로에는 마로니에를 비롯해 능수버들 그리고 라일락 나무들과 이름 모를 키 작은 꽃들도 많다.

놀랍게도 꽃이 핀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게 되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세히 살펴보니 꽃봉오리도 있는데 꽃이 핀 플라타스 나무를 보는 건 처음이다. 오렌지 빛으로 수줍게 피어 있는 플라타너스 꽃이 무척 신기하고 새롭다.

꽃과 열매가 있는 플라타너스


공원의 구석이라고 할 수 있는 코파시 제방 끝, 다뉴브 강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니 오늘은 젊은 한 쌍의 커플이 잔디에 앉아 데이트를 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여행의 취향이 다르고 여행에서 추구하는 목적도 다르니 여행을 하는 올바른 방법은 딱히 있을 수 없다. 그저 여행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부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생동감 있고 활기찬 분위기의 장소를 찾기보다는 자연이 주는 느낌을 더 즐기고 사람들과의 어울림보다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여행 취향을 갖고 있다.

아마 이 젊은 커플도 한적한 곳을 찾아 데이트를 하는 취향인가 보다.

참 보기가 좋다.

그들의 데이트에 방해라도 될까 봐 자전거를 세운채 떨어져 우리도 잠시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한다.

무척 오래된 능수버들이 축 늘어져 마치 다뉴브 강에 머리라도 감을 듯 한 모습이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가득하니 새들이 많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새들도 서로 아침 인사를 하는 듯 높고 날카로운 소리, 딱따구리처럼 계속 울어대는 소리, 아주 얇고 가냘픈 소리들로 내 귀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귀로 듣는 즐거움, 코로 맡는 향긋함, 눈으로 보는 편안함으로 나의 감각들을 모두 만족시킨 아침 공원의 자전거 산책을 마치고 이제는 나의 입을 만족시킬 맛난 점심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나무와 새소리가 가득한 우거진 공원


벌써 세 번째 방문하는 레스토랑 'Araz'이다.

분위기는 물론 음식이 무척 고급스럽고 맛도 좋아 이 레스토랑을 자주 방문했는데 특히 매주 메뉴가 바뀌는 탓에 올 때마다 기대가 되는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먹는 음식을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음식의 고유 이름은 없다. 그저 재료와 요리 방법을 짧게 쓴 설명을 보고 선택하면 된다.

나는 먼저 멕시칸 콩과 구운 소고기가 들어간 수프를 주문했고 메인음식으로는 팬 케이크에 잘게 다져진 소고기와 그리고 치즈 소스가 깔린 bbq 그리고 디저트는 차가운 쵸코케이크를 부탁했다.

주방장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가미된 독특한(실험적인?) 메뉴들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이젠 이 레스토랑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무척 아쉽다.

메인요리와 디저트

점심 식사를 하고 부다페스트 골목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좁은 골목길은 여전히 옛 유럽의 정취가 풍기는 고풍스러움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대로(大路)는 우아한 건물들의 보호를 받으며 곧고 시원하게 뻗어있다.

아름답고 편안한 이 길이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떠나게 된다.

모든 여행은 대부분 그런 것 같아 항상 아쉽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마지막으로 보트를 탔다.

모든 게 한눈에 담긴다.

다뉴브 강은 말없이 흐르고 강 옆 매혹적이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은 고고하게 그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화려하고 멋진 국회의사당, 단아한 자태의 부다의 성, 한을 품을 겔레르트 언덕, 섬세하게 다듬어진 요새의 언덕,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상들이 돋보이는 고풍스러운 대학 건물 그리고 아름답고 우아한 다뉴브강의 다리들, 무엇보다 부다페스트의 모든 곳들을 철컥거리는 소리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낭만 있는 전차들, 어디든 날 쉽게 데려다주던 편안한 시내버스들...


모든 것들에 벌써 정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들과 이별을 해야 할 때다.

편안함과 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날 매혹시킨 부다페스트를 말이다.

많이 그리워지고 자꾸 생각이 날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발코니로 나가 마지막 부다페스트의 밤거리 풍경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십 일을 지내는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많은 일들과 느낌들을 찬찬히 꺼내본다.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며 쉬려는 목적으로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그저 가만히 편하게 쉬기에는 너무나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이국적인 문화가 융합된 이 멋진 도시를 그저 한가롭게 게으름 피우며 있다가 떠날 수만은 없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여행에 비하면 편안했고 매 순간 여유를 즐겼던 여행이었다. 이런 여유 있고 편안한 여행을 하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남편 덕이다.(남편의 부지런함 덕에 나만 편했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9월에는 찐 무위도식(無爲徒食) 여행을 하자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유혹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데려가지 않을 그런 도시...

'치앙마이(Chiang Mai)'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자고 한다.

얼떨결에 'OK'했지만 우리가 정말 무위도식하며 한 달을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ㅎㅎ


나는 언젠가 다시 방문할 이 부다페스트를 눈과 마음에 깊이깊이 담아 두고 있는데 남편은 벌써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있다.


드디어 내일은 아침 8시에 공항에 들러 자동차를 빌려 '벌러톤(Balaton)'에 간다.




                    

이전 18화 Tourist보다는 Traveler가 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