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반스코를 방문하다.
그리스와 불가리아의 국경 마을 비로니아(Vironia)에서의 아침,
오늘 우리는 다시 불가리아로 가는 날이다.
어제 늦은 오후에 비로니아 마을에 도착해 숙소에서 보낸 탓에 마을을 둘러보지 못해 오늘은 아침 일찍 식사도 하지 않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어제 만났던 로잔나가 비로니아 마을이 예쁘니 꼭 산책을 해보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광지도 아니고 마을 인구가 많은 마을도 아닌 조그마한 시골마을이지만 마을을 걷다 보면 정감이 가는 마을이다.
'스트리모나스(strimonas, struma)' 강이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의외로 강의 폭이 넓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인데 주변 경치도 무척 평화스럽고 아름답다.
작은 마을 뒤편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흐르니 비로니아 마을이 더 마음에 든다.
이 강은 알고 보니 불가리아의 비토샤산에서 발원된 물이 그리스로 흘러들어 가는 강이었는데 발칸 반도 내륙에 흐르는 강들 중 가장 긴 강이며 어제 방문한 케르키니 호수의 주요 수로이기도 한 강이었다.
지도에서도 이 강 줄기(지도의 파란색 줄이 스트리모나스 강)가 발칸을 휘감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열흘 전 불가리아에서 그리스로 넘어오는 도중 struma강을 쭈욱 따라왔는데 그 강이 이 마을 비로니아까지 연결된 강(스트리모나스 강)이니 무척 긴 강이다.
스트리모나스(스트루마) 강 주변은 평지로 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곳으로 하루 종일 강을 따라 걸어도 좋을 장소지만 가야 할 길이 먼 우리는 잠시 짧은 산책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스 국경을 거쳐 불가리아로 들어가는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그리스 국경 출국 창구 바로 옆이 불가리아 국경 입국 절차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 출국, 입국을 할 수 있어 시간도 많이 절약된다. 물론 출입국 절차는 매우 순조로웠다.
다시 불가리아에 들어와 며칠 전 달리던 도로를 운전하니 익숙하다.
우리가 달리는 옆에는 스트루마 강이 아주 힘차게 흐르는데 이곳에서 래프팅을 하는 간판도 볼 수 있다.
강물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가 보는데 강물의 양이 무섭도록 흐르는 급류다.
보기만 해도 어지럽고 무섭다.
조금 전 비로니아 마을 뒤로 얌전히 흐르던 그 강이 이렇게 거센 강물로 변하다니...
아침 식사를 걸렀더니 배가 고프다.
조그마한 마을의 빵가게에 들러 바니짜와 피자를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오분 정도 기다리면 바니짜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기다려 먹기로 했는데 즉석에서 만들어 오븐에 구워주니 더욱 맛있다.
지금은 불가리아에 왔으니 아이란도 먹어줘야겠지?
주방에서 바니짜를 만드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을 수 있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주방으로 들어와서 찍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매우 친절한 부부시다.
친절함과 배려, 그리고 갓 구운 바니짜와 함께 기분 좋은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 '반스코'로 향했다.
드디어 불가리아 반스코(Bansko) 마을에 도착했다.
반스코는 원래 겨울 스키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하지만 피린 국립공원(Pirin National Park)이 있어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특히 마을이 아담하고 예쁜 마을이라 더 인기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숙소로 가기 전 '피린 국립공원(Pirin National Park)'에 들러 등산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비렌(Viren) 국립공원'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불가리아의 릴라 국립공원, 중앙 발칸 국립공원과 함께 3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피린 국립공원은 탁월한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어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불가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정상이자 발칸반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이곳엔 빙하호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국립공원 입구에 오니 날씨가 잔뜩 흐리고 먹구름이 산에 걸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케이블카도, 리프트도 운행을 하지 않는다(나중에 안 사실은 성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동차로 높은 곳까지 오르는 길은 정비가 잘 된 도로였지만 자동차로 샬레까지 올라간 후 그곳에서 등산을 할 계획이었던 우리의 계획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낯선 산 그리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높은 곳에서 산행을 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고 올라간다 하더라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도 좋지 않을 게 분명해 결국 우리는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와 공원 평지에서 약 1시간 정도 트레일을 하기로 했다.
숲은 공원 면적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거의 95%가 침엽수림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숲의 평균 연령은 85년인데 이곳에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바이쿠세프 소나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동물들도 살고 있는데 포유류 45종, 조류 159종, 파충류 11종, 양서류 8종, 어류 6종을 이 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피린 국립공원 트레일 길은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걷기 편한 길도 있고 조금 어려운 코스도 있다. 심지어는 장애인을 위한 산책길도 따로 있었다.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이곳 한적한 피린 공원은 마치 새벽처럼 습기가 많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다양한 나무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이 공원 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산책하는 내내 옆에서 들리는 물소리와 주변의 새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폭포처럼 흐르는 거센 물줄기도 보이고 오랜만에 뻐꾸기 소리도 듣는다.
갑자기 동요 '오빠생각'이 떠올라 함께 불러본다. "뻐꾹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고..."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무 빼곡한 숲길을 걷다 보면 아픈 병도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경치와 깨끗한 공기를 누리려 이곳을 찾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산행 대신 상쾌한 산책을 마친 우리는 반스코의 숙소로 향했다.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거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릴라(Rila)' 산이다.
사파레바 반야 마을 근처에 있는 릴라 산은 며칠 후 올라 예정인데 반스코에서는 피린(Pirin)과 릴라 모두 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숙소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전망인데 숙소 내부가 밝고 창이 넓은 집, 그리고 전망이 좋은 집을 가장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는 편이다.
사실 반스코의 숙소는 전망이 꽤 좋아 선택한 집이다.
창문 앞 바로 나무들 너머에 평야와 마을이 있고 저 멀리 눈 덮인 릴라산이 보이니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드리워져 먼 마을, 먼 산까지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우거진 숲이 보여 그냥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숙소였다.
잠시 쉬고 나서 천천히 반스코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분 좋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창을 통해 보이는 멋진 풍경이 우리를 밖으로 내몬다.
차를 숙소에 두고 걸어서 반스코 마을의 중심가와 아름답다고 알려진 올드타운을 둘러보러 나섰다.
센터로 향하는 길, 제일 먼저 집에서 가까운 'Bansko city park'를 만나 공원으로 들어가 본다.
조그마한 마을인데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으니 분수와 벤치가 있으면 멋진 공원이 만들어진다.
이 공원 역시 광장에는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고 분수 주변엔 벤치들이 둘러있어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공원 한쪽엔 아이들을 위한 MTB자전거 연습 장소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아닌 천연 모래언덕을 쌓아두고 있었다.
벤치도 통나무를 잘라 그대로 만든 자연벤치다.
크지 않은 공원이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 대신 자연을 이용한 다양한 시설이 있어 친환경 공원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마을 중심가로 들어오니 자그마한 광장이 우리를 맞는다.
커다란 나무들이 둘러쳐진 광장인데 깨끗하고 조용하다.
광장이 이렇게나 한적하고 조용하다니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처럼 여겨질 정도다.
광장 주변을 둘러보다 갤러리가 들어와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갤러리 앞에 앉아 계신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이곳은 원래 은행이었는데 은행이 문을 닫고 대신 갤러리로 이용하고 있다며 그림들을 마음껏 구경하라고 하신다.
이 전시회의 주관(매니저)을 맡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십 여분 간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이곳에는 약 6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900여 개의 작품들로 전시되어 있는데 주로 불가리아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외국 작가의 작품도 있다며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을 가리킨다.
꽤 유명한 아티스트의 그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그림들이 섞여 있는데 마음에 드는 건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고 한다.
무척 다채로운 그림들이 건물의 3층까지 그리고 복도까지 가득 차있었다.
지하 금고에도 그림들이 걸려있다.
이 금고 안에 있는 그림들은 더 비싼 걸까? ㅎㅎㅎ
수채화, 유화는 물론 단순 습작과 같은 작품들도 있고 이 고장의 피린산과 릴라산을 그린 그림, 인물화, 성화까지 다양한 테마와 기법들로 전시된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어 하나하나 둘러보는데 무척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갤러리를 나와 반스코 중심가로 들어섰다
Nikola Vaptsarov Square에는 반스코 출신의 시인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광장 주변엔 역시 분수가 뿜어 나오고 주변엔 초록의 오래된 나무들이 둘러 서있다.
광장은 한가하고 조용하다.
한여름도 아니고 스키시즌도 아닌 지금이 가장 한적할 때인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올드타운으로 들어섰다
올드타운 Vazrazdane Spuare에 왔다.
무척 위엄 있고 근엄하게 자세를 하고 있는 성직자의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광장 주변에 성당(Church of the Holy Trinity)과 우뚝 선 시계탑도 우아하다.
올드타운은 모든 집들이 돌벽으로 되어 있고 길은 돌 길이다.
무척 아름답고 이채롭다.
주로 나무로 만든 집들과 벽돌로 쌓은 집들이 올드타운을 채웠다면 내가 있는 반스코는 완벽한 돌담벼락이다.
내가 본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보다 더 고즈넉하고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전통과 오랜 세월을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 일거다.
간혹 돌로 벽을 채우다가 중간쯤 한 줄 정도는 진흙반죽을 넣고 겉은 나무로 장식한 벽돌담들이 보인다.
며칠 전 테살로니키 성벽에서도 돌로 짓다가 서너 줄을 벽돌로 장식한 비잔틴양식의 담벼락들을 보았는데 이곳도 비슷한 양식의 담벼락이다.
올드타운 어딜 가나 정말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어느 도시의 올드타운 보다도 더 올드타운답다.
잠시 돌길 돌담벼락을 걸어본다. 운치와 옛정취가 저절로 느껴진다.
반스코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피린산에서 내려오는 힘찬 물줄기가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수로를 따라 내려오는 물은 졸졸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양도 많고 아주 힘차다.
도로 양쪽 건물들을 사이에 두고 가운데로 수로를 내어 물줄기가 끊임없이 내려오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24시간 이 물소리를 듣고 산다.
오후가 되니 수로 주변 벤치에 나와 동네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동네 분위기에 이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그런데 수로의 시작이 어딘지 찾아 가는데 그 길이 매우 멀다.
결국 그 시작점을 찾았는데 폭포와 같은 강물줄기가 피린산에서 거세게 내려온 것이었다.
그 소리도 엄청나고 물의 양도 강물치고는 엄청나다.
내일 우리는 피린 산 등반을 할 예정인데 도대체 피린산의 물줄기가 어디서 이렇게 힘차게 내려오는지 볼 예정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한 작은 마을, 반스코는 작지만 정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마을이었다.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의 올드타운은 물론 피린의 물줄기를 한 몸에 받고 사는 동네 반스코로 기억될 것 같다.
이 글은 2024년 5월 불가리아를 여행하며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