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릴라 산에 오르다.
릴라(Rila) 산으로 세븐 레이크(Seven Lakes)를 보러 간다.
하지만 3년 전의 릴라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릴라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강한 탓에 리프트 운영을 하지 않아 약 2시간가량 걸어 샬레까지 올라갔었다.
그런데 약 2시간 넘게 올라간 것도 힘든 등반이었는데 샬레에 도착하자마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호수를 보러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결국 우리는 릴라의 일곱 개의 호수 중 그 어떤 하나도 보지 못한 채 비바람을 맞으며 다시 걸어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더 억울한 건 움직이지 않고 있던 리프트가 우리가 1/3가량 걸어 내려오자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올라가 타고내려와 하는지 아니면 계속 이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지 갈등하다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온 몸에 비바람을 맞으며 내려왔는데 속옷까지 모두 흠뻑 젖어 버렸다.
그 참담한 기분이란... ㅠㅠ
3년 후 오늘,
그때와 마찬가지로 5월, 우리는 릴라 산에 두 번째 방문이다.
낯익은 입구, 하지만 당황스럽게 오늘도 티켓을 사는 창구는 열리지 않았고 열명 남짓 등반객들이 또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헐~~
악몽이 다시 반복되는 건지...
릴라는 이번에도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
리프팅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적어도 3시간 내에는 리프팅을 움직이기 어려울 거라는 내용을 듣고 우리는 갈등이 되었다.
걸어서 2,000m의 샬레까지 올라가느냐 아니면 그냥 돌아가느냐의 고심 끝에 이미 입구까지 왔으니 다시 한번 걸어 샬레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왜 릴라는 우리를 거부하는 걸까?' 라며 오르는 내내 원망하며 힘든 등반을 해야 했다.
사실 우리는 어제 약 3시간 반 가량의 Pirin산을 등반했기 때문에 제대로 풀리지 않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릴라에 다시 온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약 1시간 30여 분 가량을 걸어 릴라 샬레에 도착했다.
그런데 높은 곳에 오르니 릴라 산 입구의 출발했던 장소의 날씨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기온도 무척 낮아지고 바람에 거세지며 먹구름도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세븐 레이크(일곱 개의 호수)를 모두 보려면 최소 3시간 이상 등반을 해야 하는데 이런 날씨와 몸 컨디션으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일곱 개의 호수 중 한 개의 호수라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욕심(나중엔 감사한 마음이었지만)을 부린다.
높은 곳에 오르면 심하게 급변하는 날씨가 걱정된 나는 지금이라도 날씨가 괜찮을 때 내려가야 한다며 설득해 보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남편의 설득에 졌고 우리는 제일 처음 만나는 호수를 보기 위해 우리는 길을 떠났다.
눈이 덮인 산을 걸어야 했고, 물길을 걸어야 했으며 바위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등 쉽지 않은 등반이었다.
흐린 날씨, 비까지 흩뿌리는 상황에서 40분 정도의 산행이었지만 오가는 사람도 없는 이 험한 산행은 어느 때 보다도 불안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힘든 걸음에도 내내 감탄사가 나왔다.
무섭도록 거대한 산, 릴라는 하얀 눈을 아직도 덮고 있었고 서서히 눈이 녹아 릴라를 흐르는 물줄기는 콸콸 흐른다.
어제 피린을 등반하며 보았던 보라색 꽃 크로커스가 릴라에도 있었다.
지금은 오월 중순,
봄이 왔으니 눈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라도 하려는 듯 눈 옆에 바로 피어있다.
꽃과 눈이 함께 있으니 신기하다.
약 사십 여 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우리 눈앞에 호수가 나타났다.
아! Dolnoto lake다.
깊은 산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잔잔한 호수...
아직 녹지 않은 주변의 눈과 숲에 뒤덮여 그 가운데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호수를 보기 위해 힘들게 이곳까지 왔다.
한 번에 그 자태를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보고 싶은 보석 같은 호수다.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다. 하지만 어둡고 흐린 날씨 탓에 호수의 색이 무서울 정도로 진한 에메랄드 청록색이다.
이 아름다운 호수를 보기 위해 우리는 약 3시간가량을 걸려 험한 길을 걸었나 보다.
날씨만 좋다면 이 호수를 보며 몇 시간이라도 앉아 바라보고 싶을 정도다.
호수도 우리에게 더 머물다 가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다음 호수를 보러 서둘러 떠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난관에 부닥쳤다.
호수가 더 깊은 산 중에 있다보니 이제부터는 바위와 흙길이 아닌 아직 눈이 덮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것도 평지가 아닌 비스듬히 기울어진 눈길이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눈길을 그것도 깊이도 알 수 없는 경사진 그 눈길을 걸어가는 건 무척 위험하게 보였다.
아무도 그 길을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음 호수까지는 약 20여분 걸릴 것 같은 가까운 호수였지만 눈 길이라 무척 위험한 산행이 될 것 같아 결국 우리는 한 개의 호수만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멀리서 눈으로만 보고 오는 우리의 마음은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샬레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날씨가 우리 편이 아니다.
비가 내렸던 상황에서 이젠 바람과 함께 비가 우박이 되어 내 손등을 아프게 때린다.
손도 차갑고 우박에 맞은 내 손등이 벌겋다.
정말 산 위의 날씨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호수를 보러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호수를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보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묻는다.
약 30여분 더 가면 볼 수 있다 하니 좋아하며 간다.
날씨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무사히 샬레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공원 입구까지 걸어 다시 내려가야 할 걱정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우리를 도우려는지 멈춰있던 리프트가 운행이 되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리프트를 타고도 찬바람을 맞으며 20분 이상 내려가야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좋아했던지...
오늘 우리는 어제의 힘든 산행에 이어 바로 다음 날 또 높은 산을 올라야 했기에 몸에 부담을 느낀 채 시작한 산행이었다.
오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다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계속 오갔지만 결국 이겨내고 목적을 달성했다.
비록 일곱 개의 호수 중 한 개였지만 궁금하고 간절했던 호수를 봤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했고 행복했다.
힘들고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는 항상 희열을 느낀다.
그 맛에 계속 도전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는 7개의 모든 호수를 꼭 보고 말 거라는 욕심도 또 생긴다.
오늘 오른 릴라(Rila) 산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어제 우리가 등반했던 피린(Pirin) 산 역시 발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었다.
이 두 산의 분위기도 산의 풍경도 많이 달랐다.
피린 산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산행이었다면 릴라는 더 장대하고 압도적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두 산 모두 절경이었고 무척 장관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두 산의 품속에 잠시 들어갔었다.
이 글은 2024년 5월 불가리아를 여행하며 기록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