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보다는 일상의 나날
긴 비행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체코의 시골 마을 '이스테브니체Jistebnice'에 있는 올드 하우스이다.
이스테브니체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약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곳인데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물 올드하우스는 그곳에서도 더 들어가 약 세 가구가 모여사는 아주 시골 중의 시골 '호드코프(Hodkov)'에 위치해 있다.
128년이 된 올드하우스 주변은 온통 나무들과 초원, 그리고 조그마한 연못, 그리고 아주 작은 교회가 있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집이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이런 깡촌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체코의 봄 그리고 늦은 사월
이스테브니체 마을로 가는 시골길은 체코의 봄 풍경을 제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들....
내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아직도 자연이 뿜어내는 색상들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주변엔 아직도 개나리들이 진한 노란색을 띠며 무리 지어 피어있고 눈을 돌리면 민들레 가득한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우리의 마음과 눈을 편하게 한다.
길 가엔 아직도 서양 벚꽃 나무들과 체리 나무들이 늘어서 운전하는 내내 아름다운 길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봄 풍경이 한국과 뭐 그리 다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봄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한국의 산과 들에서 느껴지는 봄 분위기는 잘 정돈된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라면 체코에서 만나는 봄 분위기는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과 높게 솟은 나무들 어딜 가도 자주 볼 수 있는 호수와 연못들로 인해 광활하고 손대지 않은 날 것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넓은 평지에 비해 건물들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숙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숙소의 주인 예닉(Jenik)이 반갑게 우릴 반긴다.
그는 우리가 머무는 숙소 바로 옆 집에서 아내와 세 자녀 그리고 에리샤(개)와 토끼, 고양이도 함께 살고 있다.
친절하게 그리고 열심히 숙소에 대해서 소개를 하는데 무척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집이라 불편할 수 있겠지만 옛 느낌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며 이용에 주의를 부탁한다.
특히 거실에 있는 화목난로를 자랑하는데 직접 불 피우는 요령도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 장작이 그득하다.
화목난로에 불이 지펴지면 위에 연결된 침대까지 뜨끈뜨끈하다고 한다.
한국의 온돌침대와 다를 바 없다.
우리도 침실을 놔두고 화목난로 침대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화목난로를 지피니 지붕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게 참 시골다운(?) 정겨운 풍경이다.
나무를 다루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주인은 아이들을 위해 놀이기구를 직접 만들어줄 뿐 아니라 집안의 소품들도 직접 만들어 그의 손길이 간 물건들이 꽤 많다. 심지어는 사우나까지 만들어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우리가 묵는 올드 하우스 내부 역시 집주인이 손수 만든 소품들이 여기저기 가득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인테리어들이 올드하우스를 더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직접 만든 사우나 실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언제 한번 이용을 해봐야겠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따뜻한 햇살이 거실에 가득한 일요일 오후,
남편은 아름다운 우리가 머무는 올드 하우스를 그려보겠다며 집 마당 높은 곳에 올라가 스케치북을 편다.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을 사진으로만 담기에는 부족한 걸까?
눈으로 직접 보며 스케치북에 담아내고 있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봄 풍경을 보며 차분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꿈꾸던 집이며 항상 그려왔던 순간이다.
조용한 거실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며 책을 읽는 순간들...
구름 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불어도 해가 나도 좋을 그런 창 밖 풍경이다.
내가 한국에서 누리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다.
내가 머무는 이곳엔 사람과 자동차 대신 나무와 꽃 그리고 푸른 초원이 있다.
자동차의 경적 대신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있다.
미세 먼지대신 찬란한 햇살이 있다.
밤이 되면 보일러 대신 화목난로가 있고 TV를 대신할 저녁노을과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있다.
과연 이런 곳에서의 한 달간 나의 생활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2025년 4월 20일 체코 이스테브니체에서 머물며 기록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