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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을 부딪치며 마음을 열다, 낯섦에서 정[情]으로

체코의 시골 마을에서 따뜻한 정을 느끼다

by 담소

우리는 지금 체코의 보헤미아(Bohemia) 작은 마을 이스테브니체(Jistebnice)의 호드코프(Hodkov) 마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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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드코프 마을 입구와 전경

숙소 주인 Jenik(예닉)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는 새우와 야채를 넣어 볶은 요리를 준비했고 예닉은 슬로바키아의 전통요리 'bryndzove halusky'라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우리에게 대접했다.

직접 만들었다는 브린죠베 알루스키(bryndzove halusky)는 감자 뇨키(Halušky)와 브린다(Bryndza)라는 양젖 치즈를 사용하여 만들며, 슬로바키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자주 즐겨 먹는다고 했다.

브린다 치즈(슬로바키아 특산의 양념된 양치즈)와 베이컨이나 돼지고기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 요리였는데 부드럽고 크리미 한 맛이 났고 짭짤한 치즈와 고소한 베이컨의 조화가 매우 맛있었다.

그에게 요리를 대접받는 건 두 번째인데 그의 요리 솜씨가 꽤 좋다.

혼자서 자연스럽게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그의 행동에 잠시 남편을 떠 올려보지만 나는 이내 그 생각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타인과의 비교는 되도록이면 하지 말자라는 나 만의 다짐이기 때문이다. ^*^

비교는 우리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이 비교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일 뿐이며 상대방 삶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교란 큰 함정일 수 있으며 대부분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즉, 공정하지 않은 비교라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긍정적인 면을 얻을 수도 있다. 즉, 비교를 통해 더 다듬어지고 강해지는 나로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비교라는 행위가 나를 어디로 이끄는 가?, 어디로 가야 하는 가?

다시 말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과의 비교 또한 우리 삶에서 필요한 감정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타인을 거울로 삼지 말고 나 자신의 거울을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저녁 준비를 하는 예닉의 모습을 보며 잠시 딴 길로 빠졌다. ^*^


예닉은 우리가 준비한 새우 볶음밥을 먹으며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다며(light) 무척 좋아했다.

주변에 바다가 없어 해산물과 생선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여서 그런지 그는 우리가 가지고 간 김과 미역 그리고 새우를 좋아했다.

며칠 전 김밥을 싸서 나누어 주었더니 맛있었다며 좋아했다.

이번에는 조미된 김도 먹어보라고 건네주니 너무 맛있다며 아껴먹어 크리스마스 날까지 먹어야겠다며 잘 보관해 둔단다.

우리나라의 조미 김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기인 모양이다.

다행히 여유 있게 김을 가져간 덕에 몇 개 건네주니 너무나 행복해한다.

김 몇 장에 상대를 이렇게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니...

우리도 기분이 좋다.



예닉이 조심스레 내게 작은 목공예품 하나를 건넸다.

마치 무언가 귀중한 것을 다루듯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나를 향해 내미는 그 손끝엔 따뜻한 마음이 실려 있었다.

그 순간, 손바닥 위로 느껴진 나무의 온기와 결이 포근했다.

나이테가 아름다운 귀한 나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작은 조각임에도 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숨기지 않았다.

희미하게 퍼진 둥근 무늬들이 많은 세월의 흐름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이 지금 내 손안에 하나의 형태로 모아져 있게 된 것이다.

예닉은 작지만 많은 의미를 담았다며 이리저리 설명을 해준다.

구름도 되고, 고래도 되고 나뭇잎도 된다며 요리조리 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그저 예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 만든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진심, 함께한 시간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가져가자는 바람까지 따뜻한 마음이 이 작은 나무 조각 안에 고요히 새겨져 있는 듯했다.

작은 소품이 아니라, 예닉이라는 사람의 마음 그 자체를 받은 기분이었다.

진심이 담긴 순간 앞에서는 값은 중요하지 않으며 작고 소박한 것 하나가, 때로는 가장 깊은 따뜻함이 될 수 있다는 걸 또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예닉이 직접 만든 사우나에서 사우나를 했다.

IMG_20250420_202140.jpg 예닉이 만든 사우나

핀란드식 사우나인데 만든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편백나무의 냄새가 기분 좋게 풍긴다.

약 80도로 데워진 내부에서 몸을 따뜻하게 만들며 15분 정도 머물다가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곳에 앉아 잠시 쉰 후 다시 15분 들어가는 반복을 하면서 한 시간 정도 머물렀더니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하다.

뜨겁게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의자에 앉아 쉬는데 하늘을 보니 노을이 오늘따라 무척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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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색들이 어우러져 하늘을 뒤덮은 광경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이다.

이런 노을과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니 진정한 힐링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숲 속 한가운데서 사우나를 하는 느낌이다.

여행 중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 준 예닉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사우나가 끝난 후 예닉에게서 와인을 마시자는 문자가 왔다. Why not?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는 도중 예닉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네댓 병의 술병을 더 가지고 나온다.

며칠 전 전통주라며 마셔보라고 건네준 살구를 발효시킨 'Slivovice'를 비롯해 'Boskov Standard(Bodka)', 캐러멜향이 나는 'Martini', 여성들이 좋아한다며 Orange향이 나는 'Cinzano vermuth', Lum, Brandy 일종인 강화포도주 등을 잔뜩 가지고 나와 조금씩 맛을 보라며 따라준다.

많은 술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건 은은한 오렌지 향이 스며든 'Cinzano vermuth'였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술이라 했지만 내가 경험한 그 맛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따뜻하고 다정한 추억들까지 소환해 주는 맛이었다.

잔을 들고 입을 대는 순간 조용히 바람을 품고 있는 나무들 아래에 앉아 있는 듯한 오묘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달콤하고, 조금은 쓸쓸한 그 향을 천천히, 오래도록 음미하게 되었다.

와인 한 병을 세 명이 나눠 마신 후에도 계속 마시는 술들에 취기가 돌고 말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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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앉아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욕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에 대해 두서없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더 친해진 듯하다.


예닉은 외딴 시골에서 가족과 지내려니 말동무가 필요했나 보다.

밤 열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얘기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은 대화를 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은 달라도 마음이 통하면 서로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

어색했던 첫인사에서 시작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공감하며 웃고, 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들이 참 따뜻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마음이 가까워진 느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통했다'는 그 감정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글은 2025년 4~5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머물며 기록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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