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은 날
오늘은 남보헤미아 주(South Bohemian Region)에 위치한 작은 마을, 역사 도시 '블라트나(Blatná)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중세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토요일 하루를 아름다운 마을, 블라트나에서 보내기로 했다.
블라트나 가는 길에 아름답고 조그마한 마을 '치멜리체(Cimelice)'를 들러 보기로 하는데 조용한 체코 시골의 매력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 규모가 큰 '성삼위일체 교회(Church of the Holy Trinity'가 광장에 있어 눈에 띈다.
자그마한 마을에 우뚝 선 이 교회는 15세기말에서 16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며, 1800~1820년 사이에 탑이 추가되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걸로 보아 마을의 중심적인 종교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마을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마을을 걸으며 만난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스칼리체(Skalice) 강이 마을을 흐르는데 강을 따라 걷는 내 발걸음도 어느새 평화로운 리듬을 찾았다.
강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을 보니 모든 여유가 강물에 스며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강물에 어우러진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연못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산책로가 나 있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발끝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연못 위에는 고요한 평화가 흐르는데 아침 공기는 신선하고, 시간조차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조용한 손길은 물속의 고기들과 마주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고기를 잡는 행위에 몰입하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이 던진 낚싯줄은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위한 작은 명상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히 지나치는 마을이 아니라 시간을 잊고 머물고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Dobri den'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체코인들은 편안하고 친절하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원예시장이 크게 들어섰다.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원예시장 쪽으로 가길래 우리도 덩달아 방문해 보았다.
계절의 여왕, 봄에 어울리는 다양한 꽃들과 나무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 다발씩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도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가격이 한국과 비교해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작은 화분에 심어져 있는 꽃모종이 제일 저렴한데 대략 50~60 크로나, 한국에서 약 삼, 사천원가량 하는 가격이다.
체코인들은 집 마당과 창가에 놓을 화분과 꽃, 나무들에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이고 있다.
마을과 집 주변을 보면 정성스럽게 가꾼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들로 가득한데 많은 사람들이 집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꽃과 나무들뿐만 아니라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작은 정원들은 그들에게 자연과의 연결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삶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거나 나무가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며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 더 정성을 다하는 것 같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 많음을 느낀다.
아파트는 공간적인 제약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 실내에서 취미를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체코에서는 집 주변의 자연을 적극적으로 가꾸는 모습이 우리의 생활과는 다른 점인 것 같다.
체코인들에게 자연은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고,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이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자연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치멜리체(Cimelice)'마을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 '블라트나(Blatna)'로 향했다.
블라트나 마을을 가는 이유는 중세의 분위기가 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무엇보다도 물 위에 있는 성과 성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기 위해서다.
블라트나 성(Blatná Castle)은 남부 보헤미아 지방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데 물 위에 세워진 중세 성으로 '수상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이지만 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성 입구로 들어서니 조그마한 시장이 열렸다.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우리는 공원을 산책하며 먹을 빵과 견과류를 조금씩 샀다.
공원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넓게 펼쳐진 초원에 자유롭게 놀고 있는 사슴들이다.
사람들이 주변을 이리저리 다녀도 전혀 피하지 않고 유유자적 행동하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다.
며칠 전 숙소 마을 근처 초원에서 뛰놀던 노루는 우리가 다가가자 잽싸게 도망을 갔는데...
이 사슴들은 이미 많은 관광객에 적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원은 크지 않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길들이 여기저기로 뻗어있었고 우리는 그 길들을 걷기 시작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공원이라 더 편안하다.
앉아 쉴 수 있도록 벤치도 잘 만들어져 있었고 안으로 걸어가니 넓은 호수도 있다.
호수에서 놀고 있던 오리 떼들이 먹이를 줄 걸로 알았는지 우리 쪽으로 몰려온다.
벤치에 마냥 앉아있으니 실망했는지 이어 다른 관광객이 오는 그쪽으로 다시 우르르 몰려간다.
오리 떼들도 그들 나름의 생존방법을 익혀나가나 보다.
오리 떼들이 잠수를 해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귀엽고 재밌어 한참을 즐겼다.
조금 더 숲 속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슴 무리들이 여기저기서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길게 뻗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오히려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사슴들까지 있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철창이나 울타리 없이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서, 사슴들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이 인상 깊었는데 그 안에는 서로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깊은 신뢰가 있었고, 바로 그 믿음이 이런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고, 성 광장에 자리한 작은 부스에서 랑고쉬를 하나 사 먹었다.
몇 년 전 부다페스트에서 맛보았던 랑고쉬보다 반죽이 훨씬 얇아, 입에 넣는 순간 바삭하게 부서지며 과자처럼 사르르 흩어졌다.
바람에 실려 오는 고소한 향과 함께, 한입 한입이 소소한 행복처럼 느껴졌다.
블라트나 성에서 근사한 한 나절을 보낸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멋진 호수를 만났다.
'므스티체(Mstice) 마을에 '백조의 호수(Rybnik Labut)'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다.
길게 뻗어있는 호수의 모양이 백조처럼 생겨서 붙은 모양이다.
잠시 내려 호수를 둘러싼 산책길을 약 30여분 걸어보기로 했다.
호수에서는 윈드서핑을 하는 무리도 보인다. 바람이 적당히 부는 오늘 서핑하기에도 좋은 날씨인가 보다.
호수를 따라 걷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그림이 따로 없다.
걷는 내내, 호수를 감싸 안은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마치 광고 속 장면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순간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은 어느 곳에서,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눌러도 그저 그림이 된다.
어쩌면 이건 보헤미아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슐레지엔, 모라비아 등 체코의 모든 지역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면, 이 나라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정원 같기도 할 것 같다.
풀잎은 바람결에 가볍게 몸을 흔들고,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린다.
이 잎들이 가을이 되면 어떤 색으로 물들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언젠가 꼭, 가을의 보헤미아를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오늘도 우리는 체코의 멋진 자연에 깊이 취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글은 2025년 4~5월에 걸쳐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머물며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