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에서 찾은 큰 행복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체코의 보헤미아에 있는 이스테브니체 마을, 그 마을에서도 약 10여분 더 안으로 들어간 '호드코프(Hodkof)'마을이다.
주변에 집들도 약 여덟 가구 정도 있는 아주 자그만 마을이고 이 마을 전체가 숲 속에 있다.
그러다 보니 창을 열면 보이는 건 나무와 풀, 그리고 꽃과 잔디 그리고 집 앞의 조그마한 연못, 조금 떨어진 초원.
들리는 건 새소리, 바람소리뿐이다.
이런 곳에서 한 달 여 있다 보니 귀국 후 어떻게 지낼지 불안이 되지만 어디서든 적응이 빠른 우리는 걱정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잠을 자다가 새벽 1시쯤 갑자기 잠에서 깬 나는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도시에서만 보던 뿌옇고 탁한 하늘에서 벗어나 시골마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온전히 까만 밤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지금, 하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조차 숨을 죽이고 오로지 별빛만이 반짝이는 밤이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이 숙소를 감싸고 있는 아늑함과 포근함 마저 든다.
마치 까만 카펫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하다.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싶다.
누군가는 별을 향해 소원을 빈다지만, 나는 무한한 공간을 마주하니 갑자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나 작은 존재가, 이렇게도 큰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위로감이 느껴지고 불안도, 후회도, 조급함도 별빛 아래에서는 모두 잠잠해진다.
내가 바라보는 시골 밤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맑아, 하늘은 먹물처럼 깊고 투명했으며 그 위로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다.
잔잔한 별들이 총총하게 떠있는 와중에 놀랍게도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반짝인다.
그리고 북두칠성의 끝 두 별을 연결하니 북극성(Polaris)도 밝게 빛나고 있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눈으로 본 북두칠성이 제대로 화면에 나와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총총히 새겨진 별들을 보는 것도 감동인데 북두칠성까지 우리에게 선물하다니...
사실 난 지금까지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이렇듯 선명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멀리 이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북쪽을 가리키는 안내자이자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별자리"로 상징되는 북두칠성이 마치 우리에게 여행길을 축복해 주는 의미인가도 싶다.
고요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 하나가 나에게 한없는 평화를 안겨다 주기도, 또 한편으로는 존재의 미미함도 깨우치게 한다.
밤하늘에 희미하게 보이는 별무리는 마치 은하수 같기도 하다.
깊은 시골의 하늘이라 은하수 일 것 같기도 한데 좋지 않은 내 시력 때문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순간 밝은 불빛이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걸 본 나는 대뜸 '유성이다'라고 소리쳤더니 비행기 불빛이라는 남편의 말에 얼마나 허탈해 웃었는지...
그 순간마저도 신기하고 소중했다.
지금 나와 별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불빛도 소음도 전깃줄도....
깊은 산골에서 보는 밤하늘은 내가 이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별은 떨어지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별이 총총한 이 밤,
나는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순간과 감동이 내 마음과 기억에서 영원했으면 좋겠다.
다음 날 오전, 숙소 주인 예닉의 딸, 마리앙카(7살)가 숙소 문 앞에 와있다.
우리랑 같이 놀고 싶은 모양이다.
마리앙카와 나는 번역기를 통해 최소한의 대화를 하기에 서로 충분한 대화는 할 수 없지만 함께 웃고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서로 같은 성별이니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마리앙카의 오빠 '쿠빅(9살)'은 남편과 더 잘 어울린다.
쿠빅과 남편, 둘은 배드민턴도 가끔 하는데 때때로 쿠빅은 외출한 남편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ㅎㅎㅎ
마리앙카와 나는 며칠 전엔 공놀이를 함께 했는데 오늘은 그림을 함께 그려보기로 했다.
단순한 동작과 얼굴 표정을 그려보기로 했는데 나를 따라 제법 잘 그린다.
그리고는 그림대로 동작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가....
외국의 시골 마을에서 보내는 요즘, 하루하루가 새롭다.
단조롭고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충만함과 고요, 그리고 순진하고 해맑은 아이들이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그리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순진하고 예쁜 마리앙카, 예의 바르고 활발한 쿠빅, 그리고 자연과 목공을 사랑하는 예닉!
이들과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도 우리 여행의 멋진 페이지로 장식될 것이다.
이 글은 2025년 4~5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머물며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