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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체코의 맥주도시 플젠에 다녀오다

by 담소

오늘은 체코 보헤미아 지방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플젠(Plzeň)'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곳은 'Pilsner Urquell'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가 생산되고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어 맥주 양조장을 견학하고 도시 구경도 하러 조금 멀리 나들이를 했다.


약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지만 체코의 보헤미아 시골 마을을 운전하는 것은 그림 속 풍경을 운전하는 느낌이라 전혀 힘들지 않다.

오가는 차 뜸한 도로의 앞 뒤, 양 편 모두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보헤미아 지역은 언덕이 많아 다채로운 시골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다른 지역보다 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로 도로의 높은 곳을 오를 때마다 언덕을 내려가면 과연 어떤 풍경이 날 맞아줄지 운전할 때마다 설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내 눈앞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띄엄띄엄, 끝이 안 보이는 초원, 붉은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만 마을, 마을들 사이에 숨어있는 호수, 길 양쪽 줄지어 서있는 마로니에와 연보라 라일락 나무, 민들레 꽃이 지고 민들레 홀씨들이 가득한 평원과 여전히 노란 유채꽃 대평원, 그리고 붉은 토끼풀이 펼쳐진 평원...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런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없었으리라 싶다.

한 번에 모두 보는 게 아까워 천천히 나타나주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도 있지만 다행히도 이런 보헤미아의 봄 풍경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조금 과장한다면 신이 직접 제작한 '신의 카탈로그'를 우리가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신은 체코의 보헤미아를 제일 좋아하지 않았을까?


플젠에 가는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마을에 들러 예쁜 광장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마을을 잠시 산책하다 보면 그 마을의 분위기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조그마한 마을들이지만 각기 지니고 있는 독특함도 느껴지고 어느 마을을 방문해도 유럽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드디어 플젠(Plzeň)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대도시를 방문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마을이나 도시에 오면 제일 먼저 중앙 광장(Republik Square)으로 향한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Mlýnská strouha(므린스카 스트로하) 공원을 잠시 들렀는데 이곳은 과거의 수로를 복원하여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제공하는 공원으로 재탄생된 공원이었다.

"플젠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공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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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ýnská strouha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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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맑고 깨끗하며 주변 풍경이 아담한 공원으로 현지인들도 이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고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 학생들도 보인다.

매번 느끼지만 도심 한가운데서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쉴 곳을 쉽게 찾아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유럽 도시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십 여분 걷자 플젠의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매번 그렇지만 유럽의 대도시 중앙 광장 안에는 반드시 자리하고 있는 게 있다.

성당을 비롯해 분수, 시청 그리고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파스텔 계열의 아름다운 색상을 띤 우아한 레스토랑과 카페, 페스트를 퇴치한 기념비 '마리아 동상'이다.

플젠 광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광장을 둘러싼 아름다운 건물 색들의 멋진 조화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광장 중앙에는 '성 바르톨로뮤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Bartoloměje)'이 근엄하게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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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 중앙 광장과 성당

성당의 겉모습도 웅장하고 어딘지 모르게 위압감도 느껴지는 성당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고딕 성당은 체코에서 가장 높은 교회 첨탑(102,26m)을 자랑하고 있는 성당이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첨탑을 올려다보려면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혀야 했다.


체코에서 가장 높은 첨탑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을 보고 싶어서 우리는 성당의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낡은 나무 계단을 굽이굽이 돌아 한참 올라가야 했지만 그 대가는 여지없이 발휘를 한다.

정말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딕 양식의 붉은 지붕과 역사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체코 특유의 유럽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이 정갈하게 내 눈앞에 정갈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에는 도시를 감싸는 푸른 초록의 나무들이 보이며 도시 외곽의 풍경까지 이어져 시야가 확 트인 느낌을 준다.

오후에 방문할 플젠 양조장과 공장 지대도 보인다.

수십 킬로미터 너머까지 주변의 체코 시골 풍경과 언덕들까지 시야에 들어오니 마치 플젠의 풍경 엽서를 직접 눈으로 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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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외관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위압감과는 달리 내부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성당이었다.

성경의 내용을 담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교회 내부를 은은히 밝히고 있다.

성당 내부 한쪽에 설치된 작은 예배당에는 오래된 석관과 중앙 제단에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상이 인상적이었는데 현지인들도 이 예배당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광장을 나와 중심가 여기저기를 걷는데 길거리 풍경이 낯이 많이 익다.

생각해 보니 2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한 달 정도 머문 적이 있는데 지금 내가 있는 플젠의 거리가 바로 부다페스트 거리 풍경과 흡사하다.

부다페스트의 거리 분위기에 반해 꼭 다시 오자고 했었는데 이 도시 플젠도 그 거리만큼이나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분위기, 마주 보고 있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들, 차분한 골목풍경들이 나에게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알록달록한 파사드와 섬세한 조각상들, 그리고 장식적인 벽화들은 그림 같은 풍경을 선물해 주었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탐험하는 재미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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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의 거리


조금 걸으니 역시 벤치들이 많고 수목과 꽃들이 무성한 아름다운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 세 개가 한 줄로 쭉 이어진 공원이었는데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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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에 'Smetana'라는 이름으로 서있는 동상이 있어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 체코 작곡가 'Smetana'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 보니 음악가가 아닌 역사가, 사회운동가 Smetana였다. ㅎㅎㅎ


우리는 오전에 숙소에서 준비해 온 김밥을 꺼내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으로 먹었다.

운이 좋은 걸까?

우리 주변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는 가수들의 버스킹이 이어진다.

가냘픈 바이올린 소리와 어울린 감미로운 노래 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이 공원에 퍼진다.

멋과 낭만이 함께 한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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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산책했다.

여기저기를 걸어보지만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움은 한결같다.

도시 어딜 걸어도 우거진 나무들이 함께 하니 도시 전체가 마치 공원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카페에 들러 잠시 커피를 사 들고 거리를 한참이나 걸었다.

아름다운 거리 풍경이다.

현대적인 요소와 역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플젠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세계적인 맥주 도시로도 유명한 도시에 왔으니, 골목 탐방 후 맥주를 한 잔 곁들이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 될 것 같아 잠시 후 우리는 맥주 공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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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의 거리

맥주 공장으로 가기 전 우리는 플젠은 맥주 이외에 마리오네트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광장 주변에 있는 마리오네트 박물관을 들러 가기로 했다.

플젠을 포함한 체코의 마리오네트 문화는 2016년, UNESCO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는 플젠의 인형극 전통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가치임을 나타내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마리오네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형 캐릭터 Spejbl과 Hurvínek의 고향이기도 하고 플젠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 인형극 페스티벌 'Skupova Plzeň'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박물관은 크지 않았다.

3층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는데 마리오네트의 역사와 변천을 설명하는 동영상들, 시대별로 거쳐온 다양한 마리오네트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실제로 방문객들이 인형을 움직여 연극도 해보는 실험 무대들도 있어 잠시 아이로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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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는 플젠이 자랑하는 맥주 'Pilsner Urquell'의 박물관과 양조장을 방문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의 설명은 하루에 두 번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투어인 오후 2시 45분에 맞춰 가기로 했다.

한국 돈 약 25,000원, 투어는 두 시간가량 진행되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는 투어였다.

투어 인원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예약 없이 갔는데 막상 티켓팅을 하려 하니 단 두 자리만 남아있어 간신히 예약이 가능했고 카운터 직원은 우리가 운이 좋았다며 웃어 보인다.

역시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는데 정식 투어가 아닌 간단한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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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너 우르겔 양조장 입구와 내부

양조장이 워낙 크다 보니 버스를 이용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견학을 해야 했다.


Pilsner는 도시 'Plzen'의 독일어이며 Urquell은 Original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필스너 우르켈은 지금도 전통적인 3단계 방식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는 매우 복잡하고 시간 소모가 많지만, 그 과정들이 깊은 풍미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맥아를 끓여서 일부를 걸러내고 가열한 후 다시 섞는 방식을 세 번 반복하여 풍미를 돋운다고 한다.

7~10도 사이의 저온 방에서 1~2주간 발효 후에는 낮은 온도(0~2도)에서 숙성을 하는데 이때 맥주의 맛이 탄생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Pilsner Urquell'맥주가 체코의 다른 브랜드 맥주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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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음방도 견학하며 이곳에 저장되어 있는 맥주를 시음하기도 했다.

쌉쌀하고도 가볍지 않은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고 했는데 마셔보니 역시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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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방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데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맛이다.

현재 Pilsner Urquell은 일본의 아사히 그룹에 의해 인수되었는데 체코의 다른 맥주 Kozel, Radegast, Gambrinus 등이 모두 Asahi 그룹 체코 법인 소속이라고도 한다.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 투어는 맥주의 양조 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양조장을 견학하며 제조과정과 나름의 자랑도 들어보니 훨씬 제품에 대해 이해와 신뢰가 높아졌다.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기념품 샵에 들러 우리는 맥주 받침을 두 개 샀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맥주 받침을 보며 플젠에서의 멋진 기억들을 떠올리기로 했다.



오후 5시를 넘겨 우리의 플젠 관광은 끝이 끝났다.

단 하루 동안의 도시 탐방은 그 도시를 이해하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나에게 좋은 이미지로 자리 잡은 '플젠' 덕에 나름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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