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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un 25. 2021

크루즈 여행의 매력: (17) 뭄바이의 두 얼굴

뭄바이 여행 이틀째이다.

뭄바이 여행 첫 날은 나에게 약간의 불편과 혼란스러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오늘 뭄바이는 나에게 새롭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하리라.'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먼저 우리가 방문한 곳은 1924년에 완공된 뭄바이의 상징물,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

영국의 조지 5세와 그의 부인, 그리고 메리 여왕이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할 때 영국이 이 문을 통해 철수하게 되면서 이 기념물은 인도 독립의 의미가 더 많이 담겨 졌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장거리 교통 수단이 선박이었고 인도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뭄바이 항을 이용했기 때문에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에 대한 위상은 더 뚜렷하게 커졌을 것이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주변의 많은 사람들


Gateway of India 바로 맞은편에는 인도의 국민기업 타타그룹(Tata Group)이 지은 '타지마할호텔(The Taj Mahal Hotel)'이 있다. 

뿌연 먼지 속의 타지마할 호텔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타지마할 호텔은 식민지 시대에 겪었던 영국인에 대한 분노의 표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당시 인도의 갑부였던 타타는 백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에 들렀다가 그가 비록 돈 많은 갑부였지만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입장을 거절 당했던 일이 있다. 이에 타타는 백인들에게 무시당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영국인들보다 더 화려한 최고급 호텔을 짓게 되는데 그게 바로 '타지마할 호텔'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타지마할 호텔은 인도국민의 자존심이 담긴 의미있는 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2008년, 이 호텔에선 무서운 테러가 있었다. 10여명의 이슬람 무장단체들에 의해 빚어진 참극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영화 '호텔 뭄바이'는 바로 타지마할 호텔의 테러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다행히 타타그룹은 이 호텔을 리모델링하여 재개장했고 그는 "이 호텔은 훨씬 더 안전하고 훌륭한 호텔로 거듭났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치며 인도국민의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주변에 경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Gateway of India 즈변에서는 간단한 소지품 검사도 받아야 했다. 역시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많이 모여있다. 아라비아해를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Gateway of India와 타지마할 호텔은 인도인들의 강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 무렵 우리는 뭄바이의 churchgate 역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인도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실제 눈앞에 보인다. 이 도시의 독특한 문화, 바로 도시락배달부(다바왈라,Dabbawala)였다. 

각 가정에서 조리한 수십개의 도시락을 한 사람이 머리에 이고 끌고 가며 목적지까지 배달해 주는 것이다. 하루에 수십개 수백개의 도시락을 배달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전문적인 배달부이다. 이런 도시락 배달 시스템이 무려 100년이 넘었다니 배달 업무의 정확하고 정교함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무거운 도시락들을 머리에 이고 배달하는 그들의 눈과 표정엔 힘든 삶이 그대로 보이는 듯 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뭄바이의 다바왈라들

우리는 churchgate 역에서 교외로 가는 전철을 타고 인도의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출발했다.

전철 역과 내부의 모습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최악의 작업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비가트"에 도착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 최하위인 수드라 계급에도 못 미치는 가장 낮은 계급 사람들의 생활터인 빨래터!

태어나면서 부터 빨래를 해서 죽을때까지 빨래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비왈라), 인도에서는 차별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대를 이어 이 직업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흙탕물처럼 보이는 물에 다리를 담근 채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약품으로 빨래를 하며 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그 결과 티끌하나 없는 깨끗한 새 옷으로 탄생시키는 그들의 세탁 노하우! 

인도정부에서는 공식 빨래터 외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도비카트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하는 바람에 그 마저도 이들은 직업을 잃을 위기에 있다고 걱정을 한다니 모순이다. 

마음이 편치않다. 

뭄바이의 도비가트

문득 강지원 시인이 쓴 "도비왈라"가 떠오른다.


 "도비왈라"

물살에 베일 수록 생은 더 가벼워져

갠지즈 강 지문 닳아

각질처럼 쌓인 얼룩

두드려 털어 내린다. 

 빗물이 흥건하다.


도비가트를 벗어나 우리는 마지막 방문지 "간디 박물관(Mani Bhavan)"에 방문 했다.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인도인들에게서 추앙받고 있는 간디.  인도의 모든 화폐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고 하니 그의 위상이 절대적임을 느꼈다.

간디 박물관 내의 간디가 읽었던 서적들과 관련된 책들 그리고 간디의 부조


간디의 부조(상단 오른쪽 사진)에 걸려있는 것은 물레에서 뽑은 실이다. 

간디는 물레로 하루에 180m의 실을 뽑으면서 인도인들의 무위도식을 비탄하고 무저항 운동을 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남아공 정부에 비폭력인권회복 운동을 전개하고 인도에 돌아와서는 인도의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왜소한 그의 몸에서 어떻게 큰 힘이 나왔는지 놀랍다. 

박물관 곳곳에는 간디의 동상과 서적들, 그리고 그의 행적들이 담긴 사진들과 사용하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박물관을 방문하고 나니 그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음은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간디의 삶에 대해 많은 새로운 사실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민중을 알게 되었고 민중은 나를 알게 되었다" 라는 명언을 남기고 세상을 향해 비폭력주의를 내세웠던 그가 정작 아내의 병은 방치해서 죽고 말았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사실일까? 씁쓸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럴 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을 하는데....  그는 이런 한자성어를 몰랐을까?


이틀 간의 뭄바이 여행은 인도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많은 걸 알고 느끼게 해주었으며 내 자신의 삶과 방식에 대해서도 되돌아 볼 시간을 갖게 해준 기회였다. 

전통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인도인들의 힘든 여정을 보는 듯 했다.

인간들은 각자 다른 생각를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내가 경험했던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도 우리와 다르지만 그들의 삶 또한 가치있는 삶이며 존중되고 영위할 만한 의미있는 삶일 것이다. 

차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공존해야 함을 느껴본다. 


크루즈에 도착하니 아라비아 해 저 넘어 바다위로 붉은 기운이 보인다. 

아마 해가 지려나보다. 더불어 도시 뭄바이도 내 눈에서 멀어져 간다. 

오늘 저녁 식사엔 인도 요리를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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