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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 Aug 09. 2021

동굴도시와 코카서스의 진주마을

-우플리치헤와 보르조미를 방문하다.

우리가 여행 중 빼놓지 않고 하는 일정 중 하나는 이른 아침 산책이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도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한다. 인적 없는 조용한 공원이나 산책코스를 찾아 한 두 시간씩 걷고 나면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까지 좋아져 다시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충전이 된다.

원했던 여행이니 어떤 상황이든 좋겠지만 유독 나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정말 좋다.


이 곳 스테판츠민다 마을은 새벽까지 비가 온 후 방금 전 개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를 산책했는데 흙 길이라 웅덩이가 많고 젖어있어 오랜 시간을 걷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침 7시. 거리엔 인적이 전혀 없는, 참으로 조용한 마을이다. 

낡은 외관의 주택들이 여기저기 눈에 자주 띈다. 짓다 만 건지 아니면 오래되고 낡아서 그런건지....

많이 허술해 보이는 건물들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 보니 어느 곳에서건 가족이 잠을 자고 쉴 수 있는 곳이면 만족하는 걸까?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삶인가?


며칠 전 방문했던 트빌리시 거리에서도 낡고 오래된 자동차들이 다니는 걸 자주 보았는데...

그러고 보니 조지아 사람들이 집과 자동차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많이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대해 옳고 그름이 아닌 자기 생활과 분수에 맞는 균형 잡힌 삶이면 족할 듯싶다.


마을 곳곳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터들도 여기저기 많아 마을이 휑해 보이고 집들 사이의 거리도 제법 멀어 한층 더 외롭게 보인다. 한적하고 고요함을 넘어 고독감이 더 짙다.

북적거리지 않고 답답함 없는 이런 곳이 반드시 좋은 곳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산책길에 본 마을 풍경



숙소를 떠나 남쪽으로 향하는 오늘의 첫 방문지는 '동굴마을'이라고 불리는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이다.

하지만 출발 하자마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진눈깨비와 안개까지 더해져 운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로 가는 군사도로


자동차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조심 또 조심하면서 천천히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도로가 위험한 도로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터널(위 사진)을 만들어 눈사태로 도로가 폐쇄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으니 조지아의 북쪽 마을이 눈이 많이 오는 지역임엔 틀림이 없나 보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로 가는 길 내내 한적하다.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하니 다행히 점점 눈과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갠다. 이젠 파란 하늘이 그립기까지 하다.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지 간혹 눈에 보이는 집 앞에 서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학생들과는 다른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적어도 학업과 성적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없는 듯 느껴져 괜스레 안심이 된다.

조지아 북쪽의 한적한 도로

 



약 3시간 반 정도 운전을 했을까!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에 도착했다.

우플리스치헤는 '주님의 요새'라는 뜻을 가진 동굴도시로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 도시이자 무슬림교와 기독교의 건축이 공존한 곳으로 유명하다.

Uplistsikhe 동굴도시 입구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동굴 단지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그런지 관광지답게 유지와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으며 산책길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관람코스도 알기 쉽게 안내되고 있었으며 동굴을 오르고 내리는 길목 또한 안전장치가 잘 갖추어져 어렵지 않게 오르고 내려갈 수 있었다.

관람 시간은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릴 정도다.


 

이 동굴도시는 특히  8~10세기 무슬림이 점령했을 당시 무역도시의 거점도시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무려 700개의 동굴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구가 2만 명이 넘을 정도의 큰 도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몽골인의 침입으로 많은 동굴도시가 파괴되었고 그 이후에는 전쟁 시 임시 대피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의 동굴도시


지금은 약 150개 정도의 동굴이 남아있으며 현재의 규모는 과거의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관광객에게 허락될 수 있는 곳은  남아 있는 것들 중 윗부분만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몹시 안타깝다.

그저 당시의 화려했던 기운은 사라지고 허허벌판에 동굴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태양신 숭배 신전 장소라고 추측하는 곳

이교도의 신전과 태양신을 숭배하던 신전은 물론 약국까지도 있었다고 하는데 흔적이 사라져 알 수가 없다.

동굴의 대부분은 장식이 없었지만, 동굴 중 일부는 통나무를 모방한 돌로 터널식으로 된 것도 있었다.

이 많은 동굴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지,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알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답답했다.

관람하면서 내내 안타까웠던 점은 관광객들을 위해 자세한 안내서나 가이드가 없어 이 동굴들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점이다.ㅠㅠ


동굴 마을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니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쿠라강이 흐른다.

저 평원에까지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니 그 당시 우플리스치헤는 번창하는 거대 도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는 번창했지만 한 순간임을... 

그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유유히 흐르는 쿠라강은 알고 있었을까?

우플리스치헤 동굴도시 옆을 흐르는 쿠라강

우리의 삶과 인생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걸로 족한 거겠지?

막히고 거칠 것 없는 넓은 장소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가득 들이킨 몸과 마음이 리프레쉬되는 느낌이다.


우플리스치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자! 이제 이곳을 떠나 조지아의 휴양도시, '코카서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보르조미(Borjomi)'로 출발해 볼까?

약 1시간 30분 정도 운전을 하니 Borjomi 방문을 환영한다는 커다란 아치형 입구가 나타난다.                                                      

'보르조미(Borjomi)'라는 명칭은 1810년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지아 중남부에 위치한 리조트 마을로 인구는 약 만 명이 조금 넘는다.

Borjomi 협곡의 북서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은  조지아 수출품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광천수가 유명하다.

따뜻한 기후와 광천수 그리고 울창한 숲이 있어 이곳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여름 휴양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곳이다. 

명품 탄산수라고 알려져 있는 보르조미 광천수는 특히 러시아 황제가 즐겨 마셨을 정도로 구 소련 시대에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여전히 이 도시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는 이 광천수는 독특한 물 맛뿐만 아니라 치료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많이 방문하고 있다.

요즘에도 조지아에서 러시아로 가는 자동차 안에는 보르조미의 광천수가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하니 틀림없이 인기 있는 보물이다.

보르조미에는 광천수 말고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립공원 중 한 곳인 '보르조미 하라가울리 국립공원(Borjomi-Kharagauli National Park)'이 있어 많은 나무들이 산소와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다.

공원이 아니더라도 마을에  나무가 많아 가만히 숨만 쉬다가 가도 좋은 마을이다.

보르조미를 상징하는 마을의 기[旗]도 나무와 사슴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광천 샘과 노천 온천풀이 있는 '보르조미 센트럴파크(Borjomi Central Park)'를 방문하기로 했다.      

보르조미 센트럴 파크 입구


거리 가로등에는 보르조미를 상징하는 장식들이 걸려있어 이 마을의 특색을 알 수 있게 했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잘 정비된 길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광천수 병이 달려있는 가로등

입구에서 몇 분 걸었을까!  광천수의 물맛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눈에 띈다. 바로 광천수가 나오는 샘이다.  

우리도 물을 받아먹었는데.... 맛은.... 글쎄.....??

물의 온도도 미지근하고 한 모금 마시자 퍼져 나오는 쇳가루 맛에 혀가 떨떠름해진다. 미네랄 성분이 많이 섞여 그런지 맛이 특히나 강하다.

치유가 필요해 마시는 물이라면 먹겠지만 나에게는 굳이 즐겨먹고 싶은 물맛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제법 잘 마신다. ㅎㅎㅎ

그러고 보니 샘물을 가득 받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보르조미 센트럴 파크의 광천수가 나오는 샘터   



비가 온 탓인지 공원 내 흐르는 쿠라강물의 양이 꽤 많다.

공원을 걷다 보니 눈에 띄는 동상이 있는데 제우스의 벌을 받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상이다. 이곳에서 왜 저렇게 쓸쓸히 서있는 걸까?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마음을 피력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공원에 흐르는 쿠라 강물과 프로메테우스 상


약 1시간쯤 걸었을까?

한참 동안 찾아 헤매던 온천 풀장이 보인다. 숲 속 가운데 있어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순간 지나칠 뻔했다.

주저 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풍덩~~!!

걷는 내내 쌀쌀한 날씨로 움츠렀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온몸이 저절로 릴랙스 된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숲 속 외진 곳에 있으니 새소리만이 간간히 들릴 정로로 조용했고 깨끗하고 따뜻한 물이 기분좋게 나를 감싸고 있으니 풀에서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풀장 또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에서 온 가족들이 즐기고 있다.

보르조미 센트럴 파크 내의 sulphur swimming pool


얼마나 풀에서 놀았는지 배가 고파온다.

오후 5시가 넘어 숙소로 향하는 도중 해발 1000m가 되는 공원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보르조미의 마을 풍경은 마치 산속에 파묻혀 숨어있는 비밀스러운 마을처럼 보인다.

공원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보르조미 마을

마을로 내려와서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머물 곳이 아파트인데 주소가 정확하지 않은 것인지 아님 지도가 잘 못 되었는지 한 번에 찾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몇 분을 배회하다가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 주변에 도착하자 거리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릴 보고 매우 좋아한다. 

낯가림 없고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들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가져온 볼펜을 나눠주니 몹시 좋아한다.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숙소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처음 마주하는 엘리베이터 내부 상황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두 명 이상 함께 타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부가 몹시 좁았고 문은 닫혔는데 꼼짝도 않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어찌할 줄 몰라 서성였다. 도대체 어떻게 작동을 해야 올라갈 수 있는지...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의 모습

둘러보니 벽 쪽의 흰 박스 겉면에 쓰인 메모가 눈에 띄는데 동전 5tetri(한화 20원)를 박스 안으로 넣어야 작동된다고 적혀 있다

아~~!!  

돈을 넣어야 작동하는 엘리베이터였던 것이다. 다행히 갖고 있던 동전을 찾아 넣으니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칠게 움직이며 작동을 한다. 혹시나 올라가는 중간에 멈출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ㅎㅎ

아마도 소련의 통치 시절에 지어진 건물인지 꽤 오래된 아파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을 하고 있으니 무척 튼튼히 지어졌나 보다.

우리로선 처음 겪는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만약 동전이 없다면 함께 탈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ㅎㅎㅎ



숙소에 도착하니 우리를 맞는 분은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다.

우리를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왜 이렇게 늦게 도착했냐며 할아버지께선 자동차로 직접 보르조미 마을을 관광시켜주시려고 우리를 기다렸다고 하신다. 공원에 다녀왔다고 하자  많이 서운해하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오히려 우리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환영의 의미로  달콤한 캔디와 커피를 직접 타 주신다며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신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하신 분이신지...

보르조미 숙소의 주인 할아버지

숙소는 할아버지 혼자서 지내시는 오래된 집인데도 아늑하고 포근하다. 옹기종기 어울 있는 예쁜 소품들이 정갈하고 앙증스럽게 놓여 마치 여성이 꾸며 놓은 듯한 집안 분위기 마냥 기분이 편안해진다.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겪었던 두려움과 공포는 어느새 사라지고 따뜻한 숙소 분위기에 금세 마음이 놓인다.


할아버지께서는 영어를 할 줄 모르기때문에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소통을 하신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말을 하면 조지아어로 번역이 된다면서 아주 좋아하신다.

조지아의 역사와 보르조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려고 휴대전화에 대고 남편과 대화하는 모습이 얼마나 열정적이시던지...

혼자 생활하시니 많이 외로우셨나?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미소도 지어진다.

우리는 이 마을 근방에 갈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자 할아버지는 요새가 있는  '아할치헤(Akhaltsikhe) '마을을 꼭 들러보라고 추천을 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 여정은 '쿠타이시Kutaisi'마을 방문인데 아할치헤 마을과 정반대에 있는 마을이다. 한참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들러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께서 소개해주신 레스토랑 'Old Borjomi'를 방문해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마을을 산책했다. 역시 관광객들이 있으니 북적거리는 분위기이다. 가게엔 광천수를 비롯해  꿀과 와인 그리고 인형과 장식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나는 조지아 비스킷과 초콜릿을 잔뜩 사고 나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하다.

숙소에 들어오니 할아버지께서는 기다리셨는지 직접 만든 와인이라며 우리에게 따라주신다.

와인의 맛정말 달콤하고 진다. 이런 와인을 언제 맛 본적이 있던가!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남편은 숙소를 떠날 때 몇 병 정도 사가자고 한다.


내일 아침식사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조지아 가정식 아침을 준비해 주신다며 기대하라고 하신다.  

정말 고맙고 많이 기대된다.

와인 몇 잔 마시니 저절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조지아의 와인이 도수가 높다더니...

맞는 말이다.



오늘 여정은 장거리 운전에 동굴도시와 공원의 방문으로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게다가 물놀이까지 한 탓에 몸이 많이 노곤하다.

와인 탓일까?  여행 중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몰려온다.


내일은 어떤 노곤함이 우리와 하루를 함께 할까?  

내일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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