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츠민다마을에 가는 이유
5월....
폭설이 쌓인 도로를 운전해서 마침내 '스테판츠민다(Stepan Tsminda)'에 도착했다.
'스테판츠민다'는 '스테판'이라는 조지아 정교회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인데, 스테판 수도사는 군사도로가 된 이 장소에 은둔지를 건설하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가려고 하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Gergeti Tsminda Sameba church), 혹은 성삼위일체교회(Gergeti Trinity Church)라고도 불리는 이 교회는 사진에서 처럼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었다.
일단 Go~~!!
하지만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구글지도를 따라가는 길은 좀처럼 가기 어려운 좁은 길이었으며 산이 아닌 마을 안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가던 길을 갈 수밖에...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자 마을 사람이 우리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이야기를 한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
하지만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좁은 마을 길을 마저 지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이십여분 힘들게 운전을 했을까!
이윽고 큰 도로를 만났다.
아~~! 이럴 수가...
우리가 지나온 마을길은 교회로 가는 옛 도로(구도로)였던 것이다.
이 교회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지자 조지아 정부에서 넓은 도로를 새로 만들었는데 우리는 그 길을 모른 채 좁고 힘든 마을길을 통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마을 사람이 우릴 보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막았던 이유는 새로 난 길로 가라는 몸짓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큰 도로로 나오긴 했지만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비가 우리의 운전을 여전히 힘들게 했다. 녹지 않은 눈으로 한쪽 도로가 차단되어 있는 오르막 길에 낭떠러지가 바로 옆인 도로를 운전해가기란 쉽지 않았다.
선뜻 결정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걱정하던 중 조지아로 출발하기 전 찾아본 글에서 눈이 녹지 않는 이 시기에는 교회 주차장까지 올라가 주차를 할 계획이라면 사륜구동의 차를 이용하라고 일러준 내용이 떠올랐다.
결국 사륜 구동이 아닌 승용차를 운전했던 우리는 마지막 언덕 아래 도로 갓 길에 차를 세워놓고 교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교회까지 걸어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바람막이 없는 산 정상이라 비바람이 몰아쳐서 제대로 걷기에 힘이 들었다. 그 와중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며 서로 행운을 빌어준다.
해발 2,277m 지점에 있는 게르게티 성삼위일체교회(Gergeti Trinity Church)가 이처럼 멀게 느껴질 줄이야...
교회 주차장 근처에 이르니 사륜구동으로 된 커다란 자동차들도 매우 아슬아슬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녹지 않은 얼음이 도로에 쌓여 바퀴가 미끄러지고 바로 옆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만 같은 곡예 운전을 하는 걸 보니 보통 위험한 운전이 아니었다. 차를 갓 길에 세우고 걸어온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웅장한 코카서스 산맥을 배경으로 카즈백 산 아래 서있는 교회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절경이었을 텐데 그 절경을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험난한 날씨를 뚫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약 4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역경을 뚫고 교회에 도착했다. 이런 악천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걸 보니 이 교회는 역시 조지아를 대표하는 상징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14세기에 세워진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Gergeti Stepan Tsminda Sameba church')는 자연의 광대함에 둘러싸인 가파른 산 꼭대기에서 그 모습 자체로도 조지아의 상징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의 한 작가는 성 니노의 십자가를 포함한 귀중한 유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가져왔다고도 썼으니 이 교회가 얼마나 외지고 오기 힘든 장소였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니 인공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치 동굴 내부의 자연스러운 신비롭고 성스러운 장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부의 돌벽에는 크지 않은 낡은 성화들이 걸려 있었고 예배를 보는 제단마저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속세를 벗어난 수도자가 은둔 생활을 하면서 절대자를 섬기는 장소처럼 꾸밈없는 소박한 교회였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가 아닌 순례자들을 위한 성스러운 성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벽 한쪽엔 방문객들이 매달고 간 머리끈(?)처럼 보이는 작은 소품들이 매달려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벽에 매달린 작은 소품들이 놓여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성스러운 곳을 방문하게 되면 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근원적이고 완전한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며 잠시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움이기도 하고 그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제단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지며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교회 밖으로 나와 산 정상에서 둘러보니 과연 장관이다. 눈 덮인 카즈백 산에 둘러싸여 살포시 자리 잡고 있는 스테판츠민다 마을이 한 폭의 그림이다. 참으로 아담한 마을이다.
높이 솟은 건물도, 눈에 띄는 화려한 건물도 없는 그저 소박하고 단출한 마을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신기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오늘 우리가 묵을 곳도 저 마을 어딘가에 있겠지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교회에서 내려올 때는 새로 생긴 큰 도로로 운전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날씨도 덩달아 개인다.
마을에 도착해서 추위에 고생한 몸을 녹이려 교회 맞은편에 있는 'Rooms Hotel'의 Cafe를 먼저 찾았다.
Rooms Hotel은 스테판츠민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대식 건물이다. 이 마을 대부분의 건물과 가옥들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라테가 추위에 고생한 우리의 몸을 금세 데워준다. 기분 좋은 안락함에 눈꺼풀도 내려앉는다.
하지만 야외 데크로 나가면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면서 남편이 나를 데리고 나간다.
카즈백 산과 사메바 교회, 그리고 스테판츠민다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카즈백산을 가까이서 볼 때에는 무섭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이렇게 멀리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마을을 지켜주는 듬직한 산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엔 무언가 있다.
과학이 아닌 신비에 걸맞은 마을처럼 느껴진다.
고대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카즈백 산'과 조지아의 상징이 된 중세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 그리고 200년전 과거의 향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스테판 츠민다 마을', 게다가 지금 내가 있는 현대적 건물 'Rooms Hotel.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시대순으로 늘어선 모습이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까지...
이렇게 자그맣고 아담한 마을이 전 시대에 걸친 사연과 실물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니..!
게다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카페의 야외테이블에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한 편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고 있다니..!
시그나기 마을을 떠나 이곳까지 오면서 겪어야 했던 모든 순간들....
여행 중 처음 마주하는 낯선 경험들 앞에서 두려움도 주저함도 있었지만 그런 위기의 순간들을 이겨내고 우리가 계획한 곳까지 무사히 도착해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관망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하다.
무엇이 우리를 이곳까지 오게 했을까?
....
스테판츠민다로의 여행은 결코 잊지 못할 여정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