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그나기를 떠나 조지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마을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Gergeti Tsminda Sameba)' 성당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곳은 '프로메테우스'가 아직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스러운 제우스의 벌을 받고 있는 카즈백 산(Kazbeg Mountain)이 있는 마을이다.
나에게는 경외감과 공포감마저 드는 마을을 향해 우리는 떠나려고 한다.
카즈백산이 보이는 풍경(가장 뒤편 눈 덮인 사이 카즈백산이다.)과 벌을 받고 있는 프로메테우스(by Jacob Jordaens)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침 일찍 준비해 주신 식사를 마치고 일곱 시 즈음 숙소를 떠나려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많이 서운해하신다. 우리는 다시 오겠다(?)는 불확실한 약속을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닌 분으로 가슴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고 싶은 숙소이다.
날씨 좋은 아침 운전길, 오늘도 여전히 양 떼들은 도로 한가운데를 차지한 채 느리게 걷고 있고 목동은 그들을 한쪽으로 모느라 바쁘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은 한가롭고 평화스럽다.
약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우리의 첫 방문지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ry)이 있는 도시 '므츠헤타(Mtskheta)'였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므츠헤타는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방문해야 할 도시라고 생각되어 스테판츠민다에서 돌아올 때 다시 들르기로 하고 오늘은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ry)만 방문하기로 했다.
즈바리(Jvari) 수도원은 므츠헤타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는 6세기 정교회 수도원이다.
오르막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해서 도착한 즈바리 수도원은 즈바리 산의 봉우리 끝에 위치해 있었다.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ry)
수도원 외부에선 이미 많은 외국인 그룹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어 우리도 슬며시 가까이에서 목청 높은 가이드의 설명을 함께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ㅎㅎ
즈바리 수도원은 높은 수준의 기술로 지어진 건축이며 교회 장식이 동서양의 다양한 미적 전통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른 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교회 초기 유형의 모양이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전해오는 유일한 교회이기도 하고 즈바리 형태의 교회가 조지아 전역은 물론 아르매니아에 까지도 전파되었다고 한다.
또한 즈바리 수도원은 건설된 이래 중요한 순례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코카서스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고 하니 즈바리 교회는 므츠헤타의 신성한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도원을 돌아 성벽 위에 오르면 탁 트인 광경에 저 멀리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과 므츠헤타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특히 두 강의 색이 다른 두 강줄기(쿠라Kura강과 아라그비 Aragvi강)가 만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트빌리시에서 보았던 쿠라강은 석회질이 많아 잿빛이며, 아라그비 강은 푸른빛을 띠고 있어 두 강이 만나는 곳은 쉽게 보인다.
문득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가 떠올랐다. 송천과 골지천이 합류되어 한데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고 한다지?
므츠헤타도 아우라지도 모두 한데 어울려 흐르고 있구나....
므츠헤타 시내 전경과 쿠라강과 아라그비 강이 만나는 지점
즈바리 수도원의 내부 벽은 원래 목재로 덮여 있었고 나중에 프레스코화로 도배되었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많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내부는 넓지 않고 아담했다. 내부에서 기둥을 볼 수 없었던 점이 독특했고 벽면은 낡고 투박한 돌벽으로 되어있어 수도원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내부에 걸려진 성화 중 면류관을 쓴 성자의 모습이 슬퍼보여 덩달아 나도 숙연해지고 우울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소박했지만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검은 옷을 두른 사제가 들어와 의식을 시작한다.
절대자를 향한 마음가짐은 장소와 나라를 막론하고 같을 테지만 조지아에서 처음 보는 수도사의 복장과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자세, 그리고 예배 도중 사제들의 움직임 등 조지아 정교회의 종교의식은 나에게 낯설기만 했다.
Jvari 수도원 내부
수도원 내부를 나와 뒤편으로 가보니 언덕 기슭에 가지각색 알록달록한 야생화가 가득 피어있다. 햇빛을 받아 자유롭게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보니 엄숙했던 내 기분이 금세 밝아짐을 느낀다.
역시 조심스럽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넓고 환한 이런 분위기가 좋다.ㅎㅎ
즈바리 수도원 방문을 마치고 스테판츠민다를 향해 가는 길...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아나누리 성채(Ananuri Fortress)'를 잠시 들리기로 했다.
아나누리 성채에는 성이 포위당했을 때 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한 '아나'라는 여자를 붙잡아 터널의 위치를 알아내기위해 고문했지만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고 결국 그 성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아나누리'라고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아나누리성채(Ananuri Fortress)- 뒤편에 보이는 호수가 진발리(Zhinvali) 호수이다.
성채 뒤편 망루에 올라보니 댐을 막아 생긴 '진발리(Zhinvali)호수'의 전경이 아름답다.
이 성의 주인이었던 아라그비 백작 가문은 인근의 샨스세 공작 가문과는 원수지간이었는데 샨스세 공작 가문이 이 성에 쳐들어와 아라그비 가문을 몰아내고 성을 차지했다. 하지만 4년 후 샨스세 공작 가문은 이 성에서 쫓겨나게 되고 아라그비 백작 가문과 연관이 있던 테무라즈 2세가 이 성의 새 주인이 된다. 하지만 그마저 또 농민반란으로 화를 당하고 성채만 남아 이렇게 쓸쓸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사연이 많은 성채이다.
성채에서 나오니 주차장에서 석류를 직접 짜낸 음료를 팔고 있다. 한국에선 비싼 석류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1000원도 안 되는 금액을 주니 가득 따라준다. 새콤달콤한 진한 석류맛이 참 좋다.
석류즙을 짜서 파는 가게
우리는 기운을 내서 다시 북쪽 마을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로 향했다.
그런데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맑고 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오후 1시가 채 안되었는데도 주변이 어둑해지는 느낌이었다.
듣던 대로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은가 보다. 아니면 오지 말라고 프로메테우스가 우리를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로 가는길 (눈 쌓인 뒤 산이 카즈백 산)
우리는 아그라비(Agravi)계곡을 따라 조성된 Georgian Military Road(군사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의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폭설, 산사태 등으로 자주 통제되고 있는데 이 길을 계속 달리면 위험한 도로로 이름난 'Zvari pass(즈바리 패스)'를 만나게 된다.
도로가 많이 파이고 폭이 좁은 굽이진 오르막길을 1시간 반쯤 운전을 하고 나니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다우리(Gudauri)'마을이 나타난다.
사실 이곳에서 우리는 패러글라이딩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대부분의 ski 리조트와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했던 곳도 문이 닫혀있어 계획은 무산되었다.
5월의 조지아 북쪽 마을에선 스키도 탈 수 없고 패러글라이딩도 할 수 없고 물놀이도 할 수 없는 애매한 계절이었다. 5월에 마을 전체가 이렇듯 눈으로 덮여있을 줄이야.....
구다우리의 스키장
우리는 썰렁하고 눈 속에 갇힌 구다우리 마을에 더 머물 수 없어 계속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위험하다고 알려진 즈바리 패스(Zvari pass)를 넘어가야 한다.
즈바리 패스는 해발 2.379m의 고도에 있는 높은 산길이며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도로이다. 이 길을 지나는 동안 경치는 웅장하지만 눈사태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 눈사태와 폭설로 인해 도로의 일부 구간이 차단될 수 있으며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로 인해 매우 위험할 수 있는 도로라고 알려져 있었다.
우리는 조금 전 눈 덮인 구다우리를 보며 과연 이 길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 건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 겨울 눈 쌓인 도로였다.
도로 양쪽에 녹지 않고 쌓여있는 눈
눈 속의 Zvari pass와 통행을 기다리는 많은 트럭들
오고 가는 차는 많지 않았지만 도로는 미끄럽고 심지어는 폭설로 인해 한쪽 도로를 폐쇄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길가에 차를 세우고 꼼짝없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앞쪽부터 줄지어 멈추어 있는 트럭은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천만 다행히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가는 길의 승용차를 먼저 보내주고 있는 상황이라 기다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만약 트럭을 보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트럭이 다 지나갈 때까지 도로 한쪽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 우리는 Zvari pass를 무사히 넘었고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마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즈바리 패스(Zvari pass)를 넘어 마을로 들어서니 마음이 놓인다.
낯선 나라에서 5시간을 넘도록 운전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장했던 탓인지 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또는 카즈베기(Kazbegi)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조지아의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카즈베기(Kazbegi)라는 이름은 러시아가 조지아를 통치하고 있었을 때 부르던 마을 이름이며, 2006년부터는 이곳을 카즈베기가 아닌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수도승의 마을)'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 길어 연평균 기온이 4.9도라는데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5월인데 폭설이 아직 녹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목적지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Gergeti Tsminda sameba)'에 점점 다가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