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타이시를 떠나 트빌리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므츠헤타(Mtskheta)마을 에 들렀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약 20km)에 위치해있는 조그마한 마을 므츠헤타는 기원전 3세기~5세기까지 고대 그루지아의 왕국인 카틀리(Kartli)의 수도였으며 기독교가 조지아의 공식 종교로 선포된 장소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마을이다.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조지아 여행에서 므츠헤타가 마지막 여행지이다.
며칠 전, 우리는 조지아 북쪽 마을인 스테판츠민다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즈바리 수도원'을 방문했지만 므츠헤타 마을에서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성당과 수도원(Svetitskhoveli 대성당과 Samtavro 수도원)이 남아 있어 이 마을에 다시 방문 하기로 했던 것이다.
다행히 즈바리 수도원을 제외하곤 성당과 수도원이 서로 근접해 있었고 더 다행인 것은 므츠헤타는마을 전체를 걸어서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었던 것이다.
스베티츠호벨리성당(Svetitskhoveli)이 보이는 므츠헤타(Mtskheta) 전경
므츠헤타도 어제 방문했던 쿠타이시의 바그라티 대성당과 겔라티 수도원처럼 2009년 세계의 위험한 유산 목록(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2013년에 므츠헤타는 이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유리한자연조건,무역로의교차점에 위치했던 므츠헤타는 여러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자신들의 전통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통합하여 뛰어난 예술적 작품을 창출했다. 그 예가 이 마을에 있는 즈바리(Zvari)수도원을 비롯해 스베티호츠벨리(Svetitskhoveli)성당 및 삼타브로(Samtavro)수도원이다. 이 예술적 유산들은 고대 왕국이 이룬 높은 예술적, 문화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코카서스의중세교회중에서뛰어난 대표 건축물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조지아의 수도가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옮겨졌을 때에도 므츠헤타는 나라의중요한 문화 및 종교적 중심지로 그 역할을 계속 유지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볼 때 므츠헤타가 트빌리시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문화유산지역이라 그런지 다른 마을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다. 조그만 마을에 주민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듯 보인다.
므츠헤타 마을에 도착해서 수도원을 방문하기 전 사람 없는 한적한 골목을 둘러보니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그 자체이다.
가끔가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예쁘게 펼쳐놓은 아담한 가게들이 눈에 띈다. 주인아주머니가 우릴 보더니 커피를 마시고 가라며 들어오라는 손짓 한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만 건넨 채 지나쳐야 했다. '너무 야박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포도 덩굴이 드리워져있고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들은 마치 우리가 편안한 쉼터에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어느 집이든 무작정 방문하더라도 친절한 주인이 여행에 지친 우리를 포근하게 맞아 줄 것만 같다. 이렇게 평화스럽고 조용한 아름다운 마을에서 하루쯤 묵고 가도 좋을 듯하다.
므츠헤타 마을 골목
한적한 골목에 미련을 둔 채 잠시 걸으니 삼타브로 수도원(Samtavro convent)이 보인다.
한적한 골목길과는 달리 수도원 주변에는 방문객들이 많다. 단체 관광객들도 방문한 듯 다른 장소보다 매우 북적인다.
이 수도원은 미리안 왕(King Mirian)에 의해 지어졌는데 이때 지은 수도원은 대부분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현재의 수도원은 19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왕 미리안은 자기와 같은 죄인이 성스러운 스베티츠호밸리 성당에 다닐 수 없다며 작은 성당을 새로 지었는데 그 성당이 바로 삼타브로 수도원이고 그와 왕비는 함께 이곳에 묻혀있다.
삼타브로 수도원
현재 수녀원의 부속 교회로 있는 삼타브로는 지금은 대부분 개조가 된 교회이다.
요새, 니노의 교회, 그리고 북쪽과 남쪽에 몇 개의 크지 않은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19세기 이후에 여성을 위한 종교학교와 수녀원(women's monastry)이 설립되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수도원은 모두 수도사가 거처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은 수녀님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새롭다.
수녀원이 있는 수도원이라 그런지 정원, 홀 그리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도 모두 수녀들만이 보인다.
어제 오후 방문했던 숨소리 조차들리지 않았던 적막한 겔라티 수도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수도원 본래 의미와 이미지가 사라지는 듯한 안타까운 느낌이 스치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내부에는 미리안왕과여왕나나의 석관이 있고 뒤쪽으로 가면 수녀원 건물과 수도사들의 무덤도 보인다.
누가 그랬던가! 삼타브로는 '무덤이 된 교회'라고!
하지만 이 수녀원은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기부로 인해 조지아에서 가장 부유한 교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유해가 묻혀있는 수도원이니 이곳에 대한 기부는 당연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수도원 내부의 많은 성화들이 선명하고 매우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다.
때마침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사의 말에 따라 일제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종종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예배 의식은 성스럽고 경외감마저 든다.
삼타브로 수도원의 내부
성 니노의 교회(성 니노가 작은 오두막을 짓고 지내면서 기도하던 자리에 세워진 기도실 교회)
중세의 금역(禁域)이 되었던 수도원 그리고 세상과 단절하여 홀로 은둔하며 수행하는 수도사들이 속세와 가깝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기억엔 중세 시대에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자 이를 못마땅해하고 교회를 정화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청빈, 정결, 그리고 순종을 중요시하는 수도사는 물론 그 시대의 수도원은 대중들의 삶과 정신적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건 사실이었고 수도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정신적 기둥이요 그들에게 구원의 장소였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 시대의 문화를 지금까지 지탱하며 이어온 주인공 역시 수도원이라고 생각하면 수도원은 살아있는 역사의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수도원에서도 여전히 본래의 의미와 역할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걸까?
스베티츠호벨리 성당(Sveti-Tskhoveli Cathedral)
삼타브로 수도원 방문을 마치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데 유독 오늘따라 진한 맛이다.
마치 조지아의 커피를 잊지 말라는 듯 강렬한 커피맛으로 내게 다가온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진한 커피의 향이 스친다.
그럴것이다.
이 바람과 함께 다가온 커피의 향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우뚝 솟은 첨탑을 자랑하듯 스베티츠호벨리 성당(Sveti-Tskhoveli Cathedral)이 바로 앞에 있다.
이 성당은 조지아 최초의 교회라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 왕의 대관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현재 트빌리시와 므츠헤타의 대주교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11세기에 지어져 1000년이 넘은 건축물임에도 여전히 규모가 우람하고 압도할 만큼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다.
전설을 따라 이름이 지어진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예수님이 못 박히던 날 예루살렘을 여행하던 어느 유태인이 예수의 수의를 가지고 돌아오자 그의 여동생이 예수님의 옷을 보는 순간 너무나 감격해서 옷을 잡고 놓지 않은 채 죽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옷을 끌어안고 죽은 자리에 삼나무가 자랐고 그 나무를 일곱 등분하여 성당을 지어야 하는데 그 중 나무 하나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성 니노의 간절한 기도로 다시 내려와 이 장소에 성당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살아있는-Tskhoveli' 과 '기둥-Sveti'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불려진 이 성당은 '생명의 기둥'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는 성당을 방문했을 때에도 살아있는 기둥에 대한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리아가 기둥을 주고 간 곳에 성전을 지었다는 필라르 대성당이다.
아마도 나라를 대표하는 성당엔 의미 있고 중요한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나보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독특하게도 전체가 우람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외국의 침입을 대비해 석조와 벽돌로 된 방벽을 건축했고 특히 꼭대기 층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성벽이 쉽게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져 있어 성벽 안에 있는 성당이 한층 더 고고한 위엄을 갖춘 그리고 아무나 마음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그런 경계심이 느껴지는 장소로도 여겨진다.
일반 대중보다는 특권층을 위해 지어진 성당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성벽에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과 건축가 아르수키제의 팔
현재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건축가 아르수키제에 의해 크로스 돔 양식으로 재축조 된 성당이며 그와 관련된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왕이 아르수키제를 시기하던 스승의 꼬임에 넘어가 아르수키제의 오른팔을 잘랐다는 이야기와 왕이 아르수키제의 연인을 짝사랑하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오른팔을 잘랐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모두 슬픈 얘기이다. 그리고 그의 팔을 성당 벽에 숨겨놓았다는데 그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아르수키제는 이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니 더 애석하다.
다만 그의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망치를 든 팔을 새겨놓은 부조가 성당 어딘가에 있다는 안내문을 읽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자세히 보니 성당 벽면 위쪽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라의 인재를 보호하고 육성을 해야 할 왕이 오히려 인재를 시기하고 괴롭혔다니....ㅜㅜ
과거엔 어느 시대에서든 왕보다 뛰어난 인물은 목숨 부지가 어려웠나 보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내부
성당 내부에도 관광객이 많아 차분하고 조용한 성당의 분위기는 사라진 듯하다.
성당 내부의 대부분의 성화들도 금장으로 덮여 있어 무척 화려하다.
간혹 오래된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어 눈에 띈다.
중앙에 걸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는 성화 본래의 가치를 위협할 정도로 유난히 빛이 난다. 오히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햇빛이 오래된 성화의 진가를 한층 더 드러나게 해주고 있다.
성당과 화려한 샹들리에!
이 조합은 나에겐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성당 앞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버스킹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젊은이들이 모여 활기를 띠워주니 덩달아 내 기분도 오랜만에 흥이 난다.
중세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듯한 예스러운 분위기의 성당 주변 골목이 참 아름답다.
성벽을 둘러싼 주변엔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고 와인의 나라답게 와인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하지만 먹어본 맛은 그냥.... 평범한 포도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취할까 걱정했지만 전혀~~..ㅎㅎ
지금껏 다녀본 성당 중에서 관광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을 만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주변 거리
이 성스러운 지역에 전해오는 재밌는 사실은 나뭇가지에 천을 매달면 여성들이 원하는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하는 이 마을의 전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는 길에 천이 매달린 나뭇가지를 본 기억이 난다.
성당을 찾는 대신 나뭇가지를 의지하다니....
설마 포도나무에 매단 건 아니겠지? ㅎㅎ
성당과 수도원이 많은 마을에서도 본인의 간절함을 위해서라면 대상이 무엇이든 절실히 바라고 의지하는 인간들의 마음은 세계 어딜 방문하든지 같다는 생각이다.
강 저편에 고즈넉이 자리한 즈바리 수도원이 보인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므츠헤타!
오늘 방문한 므츠헤타는 조지아의 발원지이자,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 온 조지아 인들의 신앙의 중심지이며 정신적 고향임엔 틀림이 없었다.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려 한다.
조지아 인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 이를 바탕으로 한 그들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들의 고난과 값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여행은 나의 삶과 영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