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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 Aug 20. 2021

악녀 메데이아의 고향에 가다.

바투미를 방문하다.

아침에 눈 뜨니 창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여 마음이 가볍고 기분까지 좋아진다.

다소 감성적인 나는 날씨에 의해 기분이 좌우될 때가 더러 있다. 날이 흐리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주변이 외롭고 쓸쓸해 보여 덩달아 나도 기분이 차분해지고 가라앉지만 오늘처럼 파란 하늘에 해를 볼 수 있는 날이면 마음이 들뜨고 가볍다.

자~~! 이 기분으로 흑해(Black sea)를 향해 출발!


쿠타이시 숙소를 떠나 약 2시간 30분가량 운전하니 흑해가 보이고 신화 속 악녀로 알려진 '메데이아(Medeia)'의 고향, 바투미(Batumi)가 멀리서 모습을 나타낸다.  

아~~ 그림이다.!

흑해(Black sea)

* 위 사진(좌측) 멀리 보이는 도시는 바투미, 그리고 눈 덮인 산은 터키의 설산(Kackar mountain)이다.


흑해 건너 멀리 높은 건물들이 솟아있는 곳은 바투미이다.  

바투미는 1년 내내 자주 비가 내린다.

'메데이아의 눈물이 비가 되어 자주 오는 건 아닐까요?  그녀의 슬픔과 분노가 아직 남아있어서 바투미에 비가 자주 내리나 봐요.'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얘기하자 신화는 신화일 뿐, 주변에 높은 산이 있어 비가 자주 오는 거란다.

재미없어~~ㅜㅜ


사실 난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그리스 신화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신화의 매력은 사랑과 배신, 질투가 주 내용이라 그렇지 않나 싶다. ㅎㅎㅎ


메데이아(Medeia)는 콜키스 왕국(지금의 바투미)의 공주였고 그는 이아손을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의 배신으로 자신의 자식과 사랑했던 이아손을 처절하게 죽복수를 한 무서운 악녀이다. 그녀의 고향이 바투미인 것이다.

실제로 바투미의 유럽 광장에 가니 그녀의 동상이 아래 사진처럼 높다랗게 세워져 있었다.

메데이아(Medeia)의 상

도시 바투미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아름다운 해안마을 '보보크바티(Bobokvati)'마을에 잠시 들렀다.

휴가시즌에는 북적거렸을 이 마을이  시즌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마을이 휑하 쓸쓸하기까지 하다.

마을 호텔과 주택가 뒤 편에는 아름다운 비치가 펼쳐져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에 그대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억눌러야 했다.


그런데 흑해(Black sea)가 내 눈엔 검은색으로 보이질 않는다.. 왜?

남편에게 물으니 흑해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바다이며, 지중해, 에게해와 연결된 바다로 '내해(內海)'라고 한다. 내해인 흑해의 수질은 막혀있는 지형 탓에 순환이 적어 그로 인해 화학작용(검은색의 황화철(FeS))이 생기는데 그 이유로 외해(外海)인 지중해와 비교해서 더 검게 보이는 거라고 한다.

아~~!!

설명을 듣고 보니 검게 보이는 듯도 하고...... ㅎㅎㅎ  


보보크바티(Bobokvati)마을 비치


저 멀리서 바투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약 15분이면 도착, 우리는 서둘러 바투미로 향했다.


조지아 남서부 흑해 연안에 있는 바투미(Batumi)는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인구가 약 15만 명 가까이 되는 휴양도시이다.

과거에는 그리스의 식민지였고 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다가 1878년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는데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은 조지아의 정교회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많은 종교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여러 사원과 교회를 볼 수 있다는 점 연중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투미에 도착 후 해양공원에 주차를 한 후 걸어 다니며 바투미에 대해 알아가기로 했다.

바투미 방문 좋았던 점은 유명 관광지가 근거리에 모여 있어 웬만한 장소는 걸어서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변과 공원, 그리고 주변 명소들이 가까이에 있어 하루 동안 관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시였다.


바투미를 방문한 나의 첫 느낌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시와 많이 달랐다.

세련된 고층 건물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고 현대적 건물로 갓 조성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 순간 중동 두바이의 한 지역에 방문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해양 공원을 벗어나 걷다 보면 이와는 다른 색다른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어 바뀌어진 경관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외양만 보아도 바투미는 새로움과 옛 것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는 흥미로운 도시였다.

바투미의 번화가 풍경

도시의 분위기에서도 차이를 느낀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가 전통을 고수하려는 도시였다면 바투미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현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신세대 취향의 도시라고 할까?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활기도 느껴진다.



우리의 첫 방문 장소는 바로 바다와 함께 있는 바투미 해양공원이었다. 이곳은 예쁜 건축물들과 독특한 조형물들, 그리고 나무가 우거진 길게 뻗산책로도 있는 멋진 공원이다.

바투미 해양공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남 녀 두 동상이 움직이는 조형물이었다.

'알리와 니노(Ali & Nino)'의 조형물은 무슬림 청년 '알리'와 기독교인 공주 '니노'의 종교와 신분의 차이로 인한  어렵고 힘든 사랑을 한 연인들의 동상인데 서로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 움직이는 조형물은 서로 원을 그리며 돌다가 잠깐 만나 스친 후 다시 멀어지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마치 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 벌을 받고 있는 듯 보여  애틋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결국 알리와 니노는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와  함께 살지만 알리는 조국 아제르바이잔을 지키려 군인이 되어 볼셰비키 전쟁에 참전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하게 된다.


Ali & Nino의 동상과 영화 포스터


바투미 공원 한쪽에선 이들의 절절한 사랑은 관심 없다는 듯,  뿜어 나오는 분수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리고 유원지답게 대관람차가 돌아가며 공원에 활기를 띠고 있다.

꽤나 넓은 공원이다. 바다 옆으로 난  끝없는 길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걸으니 가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공원을 나와 '바투미 블라바드(Batumi Boulevard)'를 따라 걷기로 했다.

바투미 블라바드는 약 7km에 에르는 거리로 이 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많은 명소를 만나게 된다.

카페, 레스토랑, 현대식 디자인의 벤치, 조각품, 분수 등 젊은 취향 세련된 분위기 그리고 고급스럽고 다양한 건축물들을 만나기 위해선 걸어야 할 길이다.

바투미 블라바드(Batumi Boulevard)

대로를 걷다 보면 바투미 드라마 극장(Batumi drama theater)을 만나게 된다.


포세이돈이 서 있는 바투미 드라마 극장(Batumi drama theater)


건물 정면의 모습이 매우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 극장은 바투미의 명소 중 하나이다.

1930년대 짓기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보류되었다가 한참 후에 완공된 극장으로 최대 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극장 정면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는 포세이돈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모습이 위용스럽다.

왜 하필 포세이돈일까?

바투미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서  다를 잠재워달라는 의미였을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포세이돈을 받들고 있는 네 개의 기둥에 있는 상은 악녀 사이렌이다. 그녀는 사람을 암초에 부딪혀 죽게 하거나 바닷속으로 빠져들게 함으로써 목숨을 앗아가는 마녀였는데 하필 마녀를 세운 걸까?

그리고 생각해보니 메두사는 포세이돈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아테네의 저주를 받고 무서운 악녀로 변했는데....

메데이아, 사이렌, 메두사...

신화의 도시답게 신화의 전설들과 인연을  맺고 있나?

 ㅎㅎ   근데 하필 악녀와?



바투미 드라마 극장을 벗어나 대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날도 화창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어  걷기에 참 좋은 날씨다.

걷다 보니 유명한 '유럽 스퀘어(Europe Square)'에 도착했다.

때마침 허기가 느껴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맥도널드에 방문, 햄버거를 들고 야외테이블로 나왔다.

점심을 먹으며 스퀘어 주변을 살피니 광장 주변이 마치 동화마을 분위기를 띤다.

건물들이 각각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고 특히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건물의 타일 조각들이 연결되어 외벽의 일부분만 마치 파스텔을 칠한 듯 색감을 부드럽게 표현한 건물이었는데 색감 때문인지 동화 속 궁전 같은 느낌마저 든다.

유러피언 스퀘어 광장 주변


점심 식사 후 광장 벤치에서 한참을 쉬었는데 이런 곳에서라면 얼마든지 머물러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건물들만 보고 있어도 다양한 상상과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바투미에서 마지막 방문지인 수영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머물고 있는 도시의 수영장을 자주 찾아가곤 한다. 호텔 내의 수영장이 아닌 도시의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수영장을 방문해서 즐기는 것도 여행 중 꽤 흥미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파리에 머무를 때도 센강에 떠있는 '조세핀 수영장'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천장이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보며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비 오는 날 방문한 탓에 떨어지는 빗방울 모습을 보며 수영을 한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바투미에 있는 수영장은  흑해를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었다.

하지만 수영장 입장이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수영장 내에선 반드시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고 하질 않나. 의사 선생님께 메디컬 체크를 받아야 한다고 하질 않나...

이곳 수영장에 대한 숙지를 못한 탓에 준비가 안되어 당황하자 카운터에 있는 한 분이 우리에게 회용 슬리퍼를 내어주신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그러고 나서 우리를 흰색 가운을 입은 분(의사인지 확실치 않음)에게 안내다.

원래는 남녀가 따로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방문객이 많지 않을 때는 한 분이 하신다고 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지병이 있는지, 피부에 이상은 없는지 특히 무좀은 없는지 등을 검사하고 혈압과 체온을 잰 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우리를 입장시킨다.

한국에서도 이런 수영장이 있었던가?

절차는 번거로울 수 있지만 수영장 관리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다.

의사는 한국말로 된 우리 이름이 신기한지 메모장에 우리 이름을 조지아어로 적어서 내민다.

재밌는 분이시다.

우리 부부의 조지아어 이름과 바투미 실내 수영장

수영장에 들어가니 매우 깨끗하고 넓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다. 마치 우리를 위해 개방한 수영장처럼....ㅎㅎ

한쪽 벽면은 투명창이라 밖을 내다보면 바투미의 도시 전경과 흑해를 볼 수 있었다.

수영장에서 보는 흑해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수영장에서 본 바투미 풍경과 흑해


깨끗하고 조용한 수영장에서 한참을 즐길 수 있어 오랜만에  색다른 행복함을 느꼈다.





여행 중 도시를 방문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그 도시에 대해 좋은 감정이 가득한 채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오늘 방문했던 바투미가 나에게 그런 도시였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에 청명한 날씨까지,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진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조화, 더불어 신(神)들의 사연까지 품고 있는 도시가 바로 바투미였다.


바투미의 어느 곳이든 행복한 마음으로 방황하며

기분좋게 찾아 들어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도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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