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소 Aug 25. 2021

유네스코가 경고한 쿠타이시 보물들

바그라티 성당과 갤라티 수도원을 방문하다.

바투미(Batumi)를 출발해 쿠타이시(Kutaisi)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먼 도시를 방문하고 오니 몸은 피곤했지만 대낮처럼 밝은 시간에 숙소에 들어갈 수는 없어 우린 쿠타이시가 자랑하는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곳의 수도원과 교회(성당)를 방문했다.

기독교를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받아들인 나라인 만큼 교회와 수도원이 가장 많은 나라가 조지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조지아 여행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수도원을 찾아다니는 순례가 담긴 여행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수도원의 외관에만 매혹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봉쇄된 공간 안에서 지내는 수도사들의  삶과 고행을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범인 [凡人]들이 찾아가 갈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위안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한층 더 엄숙해지고 숙연해지는 반성과 깨달음 그리고 안락의 공간이 되고 있는 수도원에 대해 많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위의 사진들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성당과 수도원들다.



이틀 전 쿠타이시에 도착해 콜키스 분수 근처를 걷던 중 멀리 도심 언덕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유독 성당 지붕의 오묘한 색이 인상 깊었는데 옥색보다 짙은 터키 블루색으로 칠해진 지붕은 웅장 성당 외관과 어우러져 주변까지 미묘하고 심오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성당은 바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던 '바그라티 성당(Bagrati Catherdral church)'이었다.


바그라티 성당 - 왼쪽에 보이는 재건축 건물과 무리한 지붕 공사로 인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됨  

바그라티 대성당은 11세기 초 바그라트 3세  세워졌 바그라트 3세의 이름을 빌어 '바그라트 성당(Bagrati Cathrdral church)'이라고 불렀다.

안타깝게도 1692년, 오스만 군대의 침공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결국 성당 복원을 위해 1950년부터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현재의 상태로 재건되었다.

2013년 조지아 정부에서는 재건축의 공을 축하하기 위해 복원을 담당했던 건축가 안드레아 브루노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위원회)에서는 바그라티 성당과 겔라티 수도원에서 진행되는 재건축 보존 프로젝트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었다.

세계문화유산 위원회는 바그라티 성당의 복원 프로젝트가 성당 유적지의 진실성과 정통성을 해치고 있다며 즉시 멈추라고 요구했으며 유적지와 프레스코화의 손상을 막기 위한 통합적인 관리 계획을 채택하라고 조지아 당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복원 작업 진행이 계속 이루어져 결국 바그라티 대성당은 2017년 세계유산에서 제외되는 불명예스러운 성당이 되어버렸다. 세계 문화 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본래의 유산이 현존하는 것에 65%가 넘어야 하는데 무리하게 복원하는 바람에 미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중세시대 종교건축의 우수한 사례를 보여주는 바그라티 성당과 겔라티 수도원은 쿠타이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데 바그라티 성당은 사람들에 의한 잘못된 보존과 보수 방식 때문에 2015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리스트에 오르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쿠타이시의 랜드마크로 도시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던 성당이 왜 그런 수모를 겪어야 했을까?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빚어낸 손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그대로 놔두는 것만도 못한 복원이 되었던 것이다.


아~ ! 그러고 보니 그리스 여행 중 크레타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리스 정부는 유네스코에 등재되길 희망했지만 발굴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정통성과 가치를 저해했다며 유네스코에서 거절했다고 했다.

인간들 자행한 실수들이 유적에 대한 가치를 하락시키는 커다란 폐해를 입힌 것이다.




바그라티 성당 내부는 외관에 비해 소박했으며 차분함과 평온함이 느껴다.

조지아 수도원과 성당 내부 벽은 석재의 날것 그대로 둔 곳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성당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엄숙한 평화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모두 고루에게 스며드는 것 같다.


성당 한쪽에서 촛불이 조용히 타고 있다.

촛불왠지 모르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지금 타고 있는 촛불은 용서를 구하고 갈망하는 우리 인간들의 눈물일까?

아니면 인간들을 끌어안고 있는 신의 눈물일까?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이 떠오른다

"평온해지고 싶은가? 조용히 빛의 작업을 수행하는 가벼운 불꽃 앞에서 가만히 숨 쉬어보라”


바그라티 성당(Bagrati Cathrdral church) 외부와 내부

밖으로 나가 성당 주변을 둘러보니 바그라티 성당은 잔디가 덮인 널따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에 앉아 넓게 펼쳐진 쿠타이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뻥 뚫렸다가도 금세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도 든다. 그 이유는 쿠타이시가 조지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스쳤기 때문이다.

쿠타이시는 도시의 좋지 않은 이미지 탈피를 위해 트빌리시에 있던 국회의사당을 이곳으로 이전했다는데 과연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을까?


잔디 위 우뚝 서있는 십자가는 도시와 하늘의 중간에 걸쳐져 오묘한 느낌을 준다.

마치 쿠타이시를 보호하고 있는 듯... 모든 걸 포용하고 아우르는 듯 편안한 안식처로 다가온다.


갑자기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바그라티 성당을 둘러싼 나무들이 흔들리고 지붕을 덮고 있는 터키 블루색이 햇빛에 빛을 발하며 수줍어한다.

편안해지는 오후다.

.

바그라티 성당에서 내려다본 쿠타이시 전경


바그라티 성당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겔라티 수도원으로 향했다.

쿠타이시를 벗어나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한적한 숲 길을 따라 올라가니 숲 속 한가운데 위치한 아름다운 수도원 겔라티(Gelati)가 있다.

겔라티 수도원 (Gelati Monastry)


1130년 다비트 4세가 수도원 이외에 아카데미를 함께 지어 14세기까지 교육기관의 역할을 한 겔라티 수도원(Gelati Monastry)을 두고 '자연 환경과의 조화가 잘 고려된 수도원'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을에서 떨어진 울창한 숲 속에 묻혀있는 겔라티 수도원은 한 눈에 보아도 예스러운 분위기를 띠는 매우 조용한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의 건물이 무척 아름답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비율과 아치의 외관 장식이 특징인 겔라티는 중세시대의 수도원을 대표할 만큼 고풍스럽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바랜듯한 색감에 수수하지만 기품 있고 옛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수도원이었다.

중세 정교회 수도원 중 가장  수도원  하나였던 겔라티 수도원은 종교의 역할뿐 아니라 과학과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따라서 고대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였다.

갤라티 수도원과 건물의 연결 통로

그 이유로 사람들은 이곳을 '겔라티 수도원 단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겔라티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장기간 방치해 손상된 점을 들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라는 리스트에 올라있다.

보물을 소중히 다루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이다. 다행히 그 이후엔 겔라티 수도원에서 지붕의 보수와 내부의 벽화에 대해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왜 인간들은 곁에 있을 때에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사라질 즈음 그때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내 옆에 항상 있을 거라고 믿는 걸까?  아이러니하다.


수도원 주변을 둘러보니 부속건물이 더러 있다. 몇 개의 성당과 종탑도 따로 있고 아카데미처럼 보이는 건물도 있다,

종탑 한쪽에 놓인 계단을 올라가 보니 종을 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조용한 산속에 울려 퍼지는 수도원의 종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오후였다.




수도원 내부에는 다른 수도원보다 많은 성화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창(窓)이 많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성화를 비추는 순간은 얼마나 감동이던지....

오래전(13~18세기)에 그려진 벽화는 세월의 흐름 탓에 훼손이 심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복원 작업을 해놓은 듯 말끔히 다듬어져 있다. 많은 성화들 중에서 배경이 환해 검게 퇴색된 얼굴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검은 얼굴의 마리아(?)'의 성화가 유독 내 눈길을 끈다.

몇 년 전 방문했던 스페인의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도 검은 얼굴의 마리아 상을 본 적이 있는데....

검은 얼굴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신자들이 켠 촛불에 그을려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 니스가 벗겨져 그렇게 되었다는 설...

겔라티 수도원 내부

마침 수도사 몇 분이 내부에 있는 문을 통해 나오시더니 바로 의식을 시작한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한참 동안 한 곳을 응시하며 서 계시다가 수도원 내부를 잠시 걷기도 한다.

처음 보는 이 광경이 나에겐 낯설었지만 예배를 함께 보던 관광객은 수도사와 함께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예배 의식과는 많이 달랐지만 신을 향한 마음은 모두 한마음이었겠지?



오늘 우리는 쿠타이시를 대표하는 바그라티 성당과 겔라티 수도원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소중한 이 두 곳의 문화 유적들이 인간의 욕심과 무관심으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신을 섬기는 종교적 가치와 믿음은 손상되지 않았기에 조지아 인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여전히 그곳을 방문하여 평안과 위로를 찾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도심 한가운데 웅장하게 자리 잡고 위용을 내세운 성당, 바그라티!

스스로를 고립시켜 홀로 산중 깊은 곳에 쓸쓸히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 겔라티!

막막한 이 공간에 자신을 격리하고

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는 수도사들....



조지아 여행에서 인간의 다양한 흔적들과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수도원의 방문은

여행으로 지쳐가는 우리에게 때때로 육체와 영혼에 안식을 주는 좋은 길목이었다.

 

문득 루슬로의  '또 다른 충고들(Another piece of advice)'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지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말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화나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늘의 여러 별자리 가운데서

제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지 말고 참아라.

별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by Jean Roussel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