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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 Sep 12. 2021

에필로그

- 조지아는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Georgia on my mind

열흘 전 우리가 출발했던 트빌리시로 다시 돌아오는 길,  

멀리 타워가 보인다.

지나가고 있는 지역의 이름은 '맘코다(Mamcoda)', 그리고 타워 이름은 'Mamcoda tower'였다.

갑자기 타워에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에 차에서 내려 약 20여분 걸어 올라가보니 전망이 꽤 괜찮다.

 

이렇게 외진 곳에 타워가 있는 이유가 뭘까? 

과거엔 아마 적의 침입을 알아채기 위한 망루역할 이었을 듯 싶다. 이 곳에 올라보니 사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꽤 높은 곳이니 그 어떤 움직임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위협이 되는 적이 아니라 나무와 잔디가 초록으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숲을 감상하러 이렇게 올라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낭만적이게 강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사람도 살지 않을 듯한 아주 조용한 산골이다.


지도를 보니 우리가 있는 이 곳은 트빌리시 국립공원(Tbilisi National Park)인데 국립공원의 면적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국립공원의 초입부분에 있는 것이었다.

인적없는 타워 전망대에서 잠시 앉아 숨을 돌리고 명상을 하며 초록이 주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 가기로 했다.

앉아서 눈을감고 집중을 해본다. 

오로지 들리는 거라곤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뿐...

이 순간이 영원히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멈춤'이 있었던 이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싶다.





마침내 트빌리시로 돌아왔다.

차를 빌려 트빌리시를 떠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열흘이 걸렸다.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길은 왜 이렇게도 짧게 느껴졌던지....


공항에 도착해야 할 시간까지는 두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잠시 '트빌리시 시( Tbilisi Sea)'를 들러보기로 했다.  

도시 한가운데 웬 바다? 궁금한 마음에 지도를 보니 고래 모양을 하고 있는 큰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저수지 역할을 한다고도 하는데 정말 바다만큼이나 큰 호수이다.

트빌리시 sea

호수를 보기 위해 높은 곳까지 한참 올라오니 먼저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검고 거대한 기념상들이었다.

조지아의 스톤헨지라고 할까? ㅎㅎ

'조지아 연대기(The chronicle of Georgia)'라는 기념비들이었다.

1985년도에 조지아의 작가가 만든 작품인데 사면체의 돌기둥의 높이는 무려 30m나 된다.

멀리서 본 조지아연대기 기념비

이 기념비들은 Georgia의 역사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 공원은 썰렁하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이 조지아 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외면을 받고 있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한낱 돌덩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조지아 연대기 기념비


오히려 나에겐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장소와 과거 시간들이 이 기념비에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아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 없이 돌에 새겨진 내용들만으로는 조지아의 역사와 인물, 그리고 종교적 의미를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이 기둥에 담긴 인물들과 내용들은 조지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기록들이라고 생각하니 나름 나에겐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우리가 조지아를 여행한 과정에서 만났던 역사의 인물들과 전해 들었던 내용들도 이 기둥에 새겨져 있겠지?




공원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니 넓게 펼쳐진 호수가 보인다. 바로 트빌리시 시( Tbilisi Sea)이다.

트빌리시 사람들은 호수라는 말 대신 '트빌리시 바다'라고 부른다지?

더 넓은 곳으로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서 일까? 아님 바다를 보기가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찾은 말일까?

트빌리시 시(tbilisi sea)와 호수에서 본 트빌리시 전경

호수 언덕에서 내려다본 트빌리시의 전경은 나리칼라 요새에서 보았던 시내의 이미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과거 유적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도로도 곧고 널찍하며 고층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는 탓인가 보다. 과거의 잔재가 사라진 도시 풍경을 보니 삭막함이 몰려온다. 발전과 보존이 조화를 이루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제 우리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본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다양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살다 온 느낌이다.

많은 전쟁을 겪었고 기나긴 식민지 생활도 해야 했으며 그리고 자신들의 의지와 신념으로 혁명도 불사했던 조지아인들..

그랬던 이들이 이젠 불행했던 상황들을 딛고 일어나 자신들의 삶을 위해 힘들고 어려웠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트빌리시와 바투미 곳곳에서는 서방의 자유롭고 개성 있는 예술들이 이미 조지아의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소련의 통치하에 있었던 조지아 인들의 삶의 방식 또한 개방의 물결 속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변화와 개혁속에서도 조지아 인들이 오래도록 변함없이 간직해 왔던 것은 바로 그들의 종교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전쟁과 식민지 생활로 인해 종교가 탄압받았던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그들은 믿음으로 끝까지 지켜냈고 결국 조지아 정교는 오늘날 조지아 인들의 삶과 정신에 큰 지주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위험했던 도로를 운전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걸어 찾아간 츠민다 사베바 수도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푸른 초원과 협곡을 거쳐 도착했던 다비드가레자 수도원,  그리고 마을 곳곳에 자리한 신성하고 위엄 있는 수도원들과 웅장한 성당들, 그곳에서 고행의 길을 걸어가는 사제와 수도사들을 보면서 조지아 정교회의 정통성을 지켜냈다는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조지아의 자연환경은 인간의 손이 아직은 덜 묻은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다듬어지지 않고 가꾸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 보존된 자연, 그 속에 자리한 성채들과 고풍스러운 외관의 수도원과 성당들, 그리고 거대하게 펼쳐진 와인농장의 풍경과 달콤함과 떨떠름함의 완벽한 조화로 항상 날 유혹하던 조지아 와인.

마지막으로

잊지 못할 친절한 사람들....

삼위일체란 이런 걸까? ㅎㅎ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





눈을 뜨니 쿠라강 옆을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쿠라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했던 이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조지아는 





  종교와 삶이 함께 하는 나라.

  와인과 함께 이야기하고 어울려 노래하길 좋아하는 나라.

  불편하지만 불편함 그 자체도 매력이 되었던 나라.

  다정함보다는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윤이 나고 반짝거리진 않지만 날것의 푸석함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나라.

  지폐에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려 넣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

  그리고 여전히

  신화의 중심에 있는 나라.  



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 같다.

영원히!

 Keeps Georgia on my mind!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사실!

우리 부부 약 11일 동안의 조지아 여행경비가 백만 원이 채 안 들었다네요(항공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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