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고 있는 파리 16구에 위치한 숙소는 다행히 볼로뉴 숲( Bois De Boulogne)과 멀지 않아 골목길에 비치되어있는 파리 공용자전거(벨리브 velib)를 빌려 타고 볼로뉴 숲을 가기로 했다.
공원까지 가는 길이 걷기엔 멀기도 했거니와 넓은 공원을 돌아보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제일 효율적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도 자전거를 타고 파리의 거리를 누비며 구경하고 싶었고 또 넓고 아름다운 숲을 자전거로 산책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거라는 생각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벨리브(velib)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를 나온 우리 부부는 숙소에서 5분 가량 걸으니 바로 '벨리브(velib)'가 보인다.
'벨리브'는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란 단어들의 합성어인데, 파리에서 누구나 쉽게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는 공용 시설이다.
파리 시민은 물론 우리처럼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기때문에 인기가 좋은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이 편의시설 이용으로 며칠후 나는 퐁네프(pont-neuf)에서 남편과 떨어져 길 못 찾고 길 헤매는 여인네가 되었지만 말이다. ㅎㅎㅎ
이른 시각인데도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들로 붐볐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여유 있게 자전거를 타며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으려니 생각했지만 막상 자전거를 타고 파리 큰 거리로 나오니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라 익숙지 않을뿐더러 안타깝게도 파리에선 자전거 전용 도로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자전거 타는 걸 즐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구나 파리의 골목들은 로마시대의 거리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탓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낯선 곳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몇년 전 방문했던 도시, 코펜하겐에서는 모든 도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자전거 도로가 차도보다 훨씬 더 편리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자전거를 위한 전용 신호등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많은 편의가 제공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파리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시설과 편의 제공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게다가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마음 놓고 자전거로 달리기엔 다소 위험했고 불편했다.
하긴.. 나라마다 도시마다 구조가 많이 다르다 보니 도로를 재정비하는 일이 특히 파리에서는 쉽지 않을 듯도 하다.
파리 정부도 신호와 차선이 복잡한 파리 시내에서의 미숙한 자전거 운행은 파리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면서 각별히 주의를 요구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자전거 전용차선 확보 등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약 10여분 자전거로 이동하니 볼로뉴 숲 입구가 보인다.
파리 동쪽에 위치한 뱅센 숲(여행 마지막 날 방문예정인 공원)보다는 규모가 다소 작은 공원인 볼로뉴 숲은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Haussmann)에게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버금가는 넓은 공원을 만들도록 지시하여 생긴 결과물이라고 한다.
나폴레옹 3 세는 그 당시 빠르게 증가하는 파리 인구를 위해 녹지 공간을 조성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를 위해 그는 가지고 있던 땅을 기증했다.
또한 나폴레옹 3세는 이 공원을 짓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이 메마른 산책로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하이드 파크에서처럼 이곳에도 개울이 있어야 한다."며 호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공원엔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많다.
결국 볼로뉴 숲은 파리의 다른 도시공원의 모범 사례가 되었고 전 세계의 도시공원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공원은 화가 마네를 비롯해 르느아르, 고흐 등이 볼로뉴 숲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공원인 만큼 숲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공원이다.
순서대로-마네의 '롱샴의 경마'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식사, 그리고 고흐의 '볼로뉴 공원'
반전이다.
그 당시 특히 19세기 볼로뉴 숲과 근처에는 매춘부가 유독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와 관련된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는데 특히 마네의 유명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볼로뉴 숲 근처에 이런 윤락가가 많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에밀 졸라의 '자기 앞의 생(生)'에서도 '로자 아줌마'와 '롤라 아줌마'는 볼로뉴 숲에서 몸을 빌어 일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비록 오래전 과거의 사회 현실이었지만 신비하고 아름다운 숲 속 풍경과 다소 이질적이었던 그들의 열악한 삶에 조금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현재도 밤이 되면 이 숲에서 윤락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어 파리 시에서는 이곳에서의 윤락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낙원의 낮과 밤이 이렇게 다를 수가....
파리의 음지와 양지, 이중적인 면을 보는 듯하다.
볼로뉴 숲을 산책하다 보니 이 공원을 조성하도록 했던 그 당시의 지도자 나폴레옹 3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와 오스만이 주도한 1850년대의 파리 도시계획과 아울러 이 볼로뉴 숲이 만들어진 계기와 과정을 알고 나니 나폴레옹 3세의 정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대해 역사를 파괴하는 일이라며 맹렬히 반대를 했지만 말이다.
19세기 중반 많은 사람들이 파리로 모여드는 현상을 감안해 나폴레옹 3세는 도시에 공원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했고 직접 관심을 가지고 살폈으며 심지어는 그가 갖고 있던 부지도 기부를 했다고 하니 시민을 위한 진정한 리더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특히 그는 중간계급과 농민들에게는 '질서'와 '번영'을 그리고 빈곤층에 대해서는 '지원'을 약속했다고 하니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한 또다른 이면이 있었을까?
아침 햇살과 낮게 깔린 옅은 안개,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여러 갈래의 산책길과 오래된 나무들로 가꾸어진 풍성한 볼로뉴 숲 산책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감마저 들게 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시원한 바람 그리고 햇빛에 비치는 잔잔한 호수와 그 위를 유유희 헤엄치는 오리들. 호수에 비치는 나무와 하늘과 구름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자연의 조화가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볼로뉴 숲은 우리에게 낙원에 머물고 있는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천국이 바로 이런 곳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흐와 마네를 비롯해 많은 화가들이 이 볼로뉴 숲을 사랑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프랑스 오픈 롤랑가로스'가 바로 이 볼로뉴 숲에서 열린다고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
아름다운 공원에서 테니스 선수들의 멋진 기량은 물론 5월의 수려한 숲 속 경치를 더불어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지금보다 조금 늦은 5월 말에 왔더라면 혹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지 않았을까?ㅎㅎ
숲 속은 여전히 조용하다. 자연의 소리들만이 조심스럽게 내 귀를 간지럽힌다.
갑자기 나의 감각들이 모두 예민해진다.
이런 순간의 깊은 감동과 벅찬 내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잘 전달이 될지 여전히 글쓰기에 서툰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그저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나의 오감 저장소에 간직하는 수밖에....
행복한 이 순간을 위해, 그리고 이 감동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나의 오감을 모두 활짝 열어놓는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녀보지만 이 큰 공원을 단시간에 돌아보기엔 불가능하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햇살도 강해지고 공원 산책을 하러 오는 시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아침식사가 생각났고 안타깝지만 우리의 다음 여정을 위해 이 공원을 나와야 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볼로뉴 숲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면서....
영화 '볼로뉴 숲의 여인들' 포스터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영화 '볼로뉴 숲의 여인들(Les Dames Du Bois De Boulogne)'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주인공이었던 장(Jean)이 아그네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이유가 아마 그들이 만난 장소가 볼로뉴 숲이라서 더 끌리고 사랑의 마음이 움직였던 건 아닐까?
아름답고 로맨틱한 이 공원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나오는 길,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이 이제는 제법 따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