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프랑스 북서부 여행의 시작점을 파리로 선택했고 파리에서 약 나흘 정도 머물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몽마르트르(Montmartre)는 우리 여행의 첫 방문지이다.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반드시 들러 보는 장소가 바로 몽마르트르(Montmartre)이다.
높이는 130m 밖엔 안되지만 파리에는 산이 없다 보니 이곳이 꽤 높게 보인다. 이곳에서 파리의 전경을 내려다볼 땐 마치 내가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착각마저 드니 말이다.
파리는 1850년을 전후로 오스만에 의한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가 많이 확장되고 재개발되었다.
과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좁은 도로를 폐지하고 넓고 깨끗한 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거대한 파리 도시계획을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운 건물들과 옛 거리, 그리고 많은 유적지들이 일제히 사라져 버리게 되자 파리 시민은 오스만의 계획을 반대했고 심지어는 그를 '잔인한 파괴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된 곳이 있는데 바로 몽마르트르였다.
그 후 이 지역이 파리로 편입되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게 되고 가난한 예술가들도 함께 이곳으로 옮겨와 그들의 생활터전을 형성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즉, 돈 없는 예술가들과 파리에서 살 수 없었던 도시의 빈민들이 모여 슬럼가를 형성했던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몽마르트르를 올라오는 골목들을 보면 예전 그대로의 흔적들을 간간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필 우리는 파리 지하철 역들 중에서 가장 깊다는 Abesse역에서 내려 수많은 계단을 올라온 후 또 몽마르트르의 언덕길을 오르려 하니 기운이 달린다. ㅠㅠ
내가 몽마르트르를 방문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언덕에 위용 있게 자리 잡고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 교회와 비잔틴 양식의 웅장하고 성스러운 사크레쾨르 대성당(Sacre-Coeur)을 방문하는 것도 몽마르트르를 찾는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생 피에르 교회와 사크레쾨르 대성당(Sacre-Coeur), 우측 그림은 1900년대의 사크레쾨르 대성당
하지만 과거 19세기~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정과 재능을 발휘하며 작품을 탄생시키고 애틋한 사랑 그리고 고독과 방황 속에서도 불꽃같은 삶을 태웠던 그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방문하는 이유가 더 크다.
카바레 '라 팽 아질(Au Lapin Agile)'에서 진한 와인을 마시며 에디뜨 피아프의 애절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떠올리고...
에디뜨 피아프(영화포스터)와 라 팽 아질(Lapin Agile)
내가 좋아하는 화가, 고흐와 르누아르가 몽마르트르에서의 힘든 삶 속에서도 명작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독과 싸우며 부단히 붓칠을 하던 광장, 테르트르(Place du Tertre)에서 그들의 체취를 느끼고..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과 1900년대의 테르트르 광장(by Edouard-Leon Cortes)
에릭 사티가 10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지고지순한 사랑과 함께 아름다운 곡들을 탄생시킨 카바레, 르 샤누아(Le chat noir)'에서 멜랑콜리(melancholy)한 분위기의 '짐노페디'를 듣고 싶고...
르 샤누아(Le chat noir) 와 에릭 사티
몽마르트르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과 몽마르트르 와인을 함께 마시며 춤추고 즐겼던 그녀의 집, 라 메종 호즈(Ra Maison Rose)에서 그들의 환락을 느끼고 싶어서..
몽마르트르의 포도밭과 핑크 색의 라 메종 호즈 그리고 수잔 발라동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예술가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스며있는 광장, 달리다(Place Dalida)와 세탁선(La Bateau - Lavoir), 그리고 몽마르트르의 골목들을 거닐며 옛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서..
달리다 광장(Place Dalida) 과 세탁선(La Bateau - Lavoir)
그리고 가난한 서민과 예술가들에게는 힘들고 지친 나날의 연속이지만 일요일 오후 한때, 환한 햇살과 함께 밝은 미소를 지으며 풍차가 있는 정원, 물랭 드 라 갈레트(Au Moulin de la Galette)에서 무도회를 즐기며 오후를 보내는 르누아르의 행복한 미소를 느끼고 싶어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르누아르)-좌측, 물랭 드 라 갈레트(고흐)-우측
이런 여러 이유들이 나를 몽마르트르로 향하게 했다.
예술가들의 열정, 그 이후에 따라오는 처절한 고독과 방황이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슬픔과 고독을 느끼고 찾고싶어서 여전히 이곳을 찾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내가 방문했던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에서는 과거 내가 동경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예술적인 열정과 순수함은 사라지고 어설픈 관광객을 대상으로 싸구려 상술을 부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몽마르트르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파리 시민들의 시민의식과 자존심 그리고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모든 걸 희생했던 그들의 열정에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생 드니의 순교와 많은 기독교인들의 참형이 이루어진 가슴 아픈 장소라는 의미로 ‘순교자의 산(Mont des Martyrs)’이라고 불리게 된 몽마르트르,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 실의에 빠져있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돈을 모으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 성당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이 언덕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볼 때마다 그들은 분명히 파리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파리코뮌(출처:카셀(Cassell)의 『영국사』, 영화 포스터 '코뮌' (출처 : 중앙 문화)
하지만 또한 이곳은 파리 시민의 큰 아픔이 된 곳이기도 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한 후 프랑스의 경제는 최악을 맞았고 정부는 전쟁 피해 보상금 마련을 위해 파리 시민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결국 시민들은 참지 못하고 봉기(파리코뮌)를 일으키는데 그곳이 바로 몽마르트르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소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무참히 희생되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로부터 5년 뒤 참혹한 피비린내가 났던 이곳에 거대한 성당을 짓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사크레 쾨르 대성당을 “순교자의 산에 세워진 파리 코뮌의 성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몽마르트르와 사크레 쾨르 대성당(Sacre-Coeur)은 파리 시민들에게 있어서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장소는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무시한 귀족주의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과 대립될 수밖에 없었고 서민들의 아픔이 스며있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 줄 마음의 안식처로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몽마르트르 골목 모퉁이 카페에 들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문한 크레페와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친다.
현재는 이 장소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그림들과 여기저기 눈에 띄는 독특한 벽화로 생기 있고 화려해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결코 화려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오히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둡고 삭막한 거리였을 것이다.
파리 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애환이 그대로 스며져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단순히 구경거리 관광지로 스쳐 지나갈수 없는 장소라 생각이 든다.
잠시 휴식과 함께 맛본 달착지근한 크레페 맛에 무겁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낀다.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몽마르트르의 골목을 이곳저곳 걸어 다니다 보니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곳도 많다.
"프랑스 인들은 낭만적이다."라고 공표라도 하듯 골목길 한쪽 벽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사랑해'라는 표현을 가득 적어놓은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