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어려서 자랐던 고향을 찾아가면 옛 정취는 물론이고 내가 살던 집조차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만큼은 내가 찾아가면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날 포근히 품어줄 것만 같은 기대를 하고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희망이었을 뿐 내가 놀던 골목길과 다니던 길들, 살던 집 그리고 주변의 환경마저 너무나도 세련(?)되게 변해버린 탓에 내 고향이라는 흔적은 이정표에 쓰인 지명에서만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은 단지 나의 고향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도시들이 사회, 경제적인 이유들과 과학의 위대함을 앞세워 최첨단과 편리함을 추구하며 많은 발전과 변화로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라는 용어까지 만들어가며 21세기의 도시를 변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에 동참하는 대신 고집과 자존심으로, 변화보다는 고수를 택하며 시대의 일반화를 따르지 않는 나라와 도시가 있다.
내가 방문한 '파리(Paris)'가 그런 도시 중 하나로 생각된다. 즉,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옛 것을 보존하려는 의지와 고집이 있는 나라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파리로 몰려드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아닐까?
옛 것을 보고 느끼며 위대한 예술작품을 통해 마음에 기름칠을 하고 싶을 때 우리는 파리를 향해 떠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변해가는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도시, 과거의 흔적들과 고전적 가치가 보존되어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을 음미하고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도시, 그리고 자존심이 무척 높은 도시.. 파리로 출발했다.
우리는 먼저 일 드 프랑스(Ile-de-France)의 중심인 '파리'에 며칠 동안 머물며 아주 잠시 파리지앵이 되어 보기로 했다.
나는 파리 방문이 두 번째이다.
1997년 여름,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땐 아이들을 신경 쓰고 돌보느라 제대로 파리 다움을 느끼지 못한 채 바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미 훌쩍 다 커버린 자식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기고 있을 테니 이젠 우리 부부가 제대로 파리를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드디어 파리 샤를 드골 공항(Paris Charles de Gaulle Airport)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오던 비는 그쳐있었고 서서히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아침 햇살도 함께 나온다.
환한 햇살에 기분이 가벼워지고 마침내 파리에 들어섰다는 흥분과 설렘이 나를 감쌌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파리의 땅을 밟기 전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심사를 하는 동안 1시간 30분 이상 공항에서 나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들의 성격과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의 공항 서비스는 세계 어딜 가나 으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입국, 출국자의 편의를 우선시하고 일의 진행을 좀 더 편리하고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오늘 내가 경험한 파리 공항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다.
파리로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위한 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도 많지 않았고 심사 과정 또한 매우 더디고 느렸다. 입국자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입국 심사는 유럽인, 그리고 비유럽인 그룹으로 나누어 심사를 하고 있었는데 유럽인들이 속해있는 라인은 수월하게 심사가 진행되는 반면 우리 부부가 속한 비유럽인들이 서있는 라인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더딘 진행 속도에 공항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은 "어쩌라고요(Qu'est-ce que tu veux?)? "라는 식이다.
역시 파리였다!
난 그 상황에서 이슬람교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아시아지역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유럽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파리에 첫 발을 내딛는 마음이 몹시 복잡했다.
테러의 위협이 있는 요즘 시기를 고려하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시아 민족에 대한 도 넘은 차별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몇 년 전 남편이 파리 출장을 갔을 때 놀랐던 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파리 거리의 교통표지판에는 영어가 쓰여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식당에 있는 메뉴판에도 영어가 함께 표기가 안되어 있는 탓에 프랑스어를 모르면 원하는 음식을 먹기도 어려웠다며 마치 프랑스를 방문하려면 프랑스어를 배우고 오라는 의미로 느껴졌다고 했다.
오만이 섞인 그들의 태도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그들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한 예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퐁네프에는 아름답게 새겨진 조각이 다리의 상부뿐만 아니라 다리의 하부 까지도 예술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데 그들이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콧대를 세우는지 이해가 간다고도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다리의 아랫부분까지도 아름답게 조각을 해놓은 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프랑스가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이렇게 어려운 입국심사를 경험하고 여행 중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오길 원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파리의 입성 과정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파리는 우리에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겠구나!'라는 첫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파리를 떠날 때에는 다시 방문하고 싶은 파리로 기억될 수 있도록 모든 순간들이 값지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드디어 입국심사를 마친 후 우린 나비고(Navigo pass)를 등록하기 위해 3 터미널로 향했다.
나비고는 파리 여행을 위해서라면 꼭 구입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교통카드(지하철, 버스, 트램)인 동시에 공용자전거(Veliv)를 빌리는데 필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뮤지엄 패스 또한 여행자들이 구입해야 할 필수 품목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비고와 파리의 박물관 계획은 서로 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파리 박물관들은 휴일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반드시 미리 방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간과 돈 낭비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나비고 등록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몽마르트르(Montmartre)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부피가 크고 불편한 캐리어를 보관해 두고 움직이기 위해 먼저 '북역(Gare du Nord)'으로 가기로 했다.
관광은 시작도 안 했는데 심신이 벌써 지친다.
파리 북역루이 14세 시대부터 도로를 정비하기 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 교통망을 자랑하고 있는 파리.
프랑스 최대의 역이자 유럽 최대의 역이며 유로스타, 테제베와 같은 고속열차의 시, 종착역이기도 한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통에 정신이 없다.
나만의 느낌인가?
엄청나게 규모가 큰 북역의 실내 밝기는 의외로 어둡다. 북역의 외관 모습은 매우 고풍스럽고 화려함까지 풍기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에 사람들만 바쁘게 북적거리며 다소 삭막한 분위기도 풍긴다.
북역의 짐 보관소그래서 그랬는지 북역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긴장이 되었는데 나를 더 긴장시킨 건 여기저기 눈이 띄는 무장을 한 군인들이었다. 무섭고 살벌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역이 워낙 넓다 보니 캐리어를 맡기는 장소를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ㅠㅠ
열심히 안내판을 보고 다녔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다행히 남편이 보관 장소를 찾아냈고 버겁던 짐을 맡겨두니 조금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마음도 훨씬 가뿐해짐을 느낀다.
이제 우린 파리의 몽마르트르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누가 그러던가...
파리는 걷는 시간만큼 파리를 알아갈 수 있다고..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