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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

프랑스 북서부 여행 5 : 블랑제리와 노트르담 성당, 그리고 퐁네프

by 담소


볼로뉴 숲에서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숙소에서 가까운 블랑제리(boulangerie)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파리에 와서 해보고 싶었던 일 들 중 하나가 레스토랑이나 블랑제리(boulangerie), 그리고 파티셰리에(Patisserie)의 외부 테이블에 앉아서 갓 구운 빵과 커피 그리고 거리의 풍경을 그림 삼아 유유자적하게 아침 식사를 하는 일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행복을 맛보게 되어 많이 설렌다.

바깥 자리를 부탁해 자리에 앉고나니 왜 많은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즐기는지 알 것 같았다.


숙소가 있는 파리 16구의 골목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묵는 숙소가 몇미터 앞에서 보인다. 숙소는 16구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은 고급 주택가와 관공서가 모여 있는 곳이다. 특히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멋진 레스토랑과 고급 의류점과 가구점, 그리고 1850년대 오스만의 지휘 하에 새로 개조된 누런 베이지색(?)의 5~6층의 건물들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좁은 도로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아침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여전히 출근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빠른 걸음걸이와 도로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그리고 간간히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우리나라의 아침 출근시간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어딜 가던 세상의 모습은 별다를 게 없으나 낯선 도시 파리에서 아침 풍경을 우두커니 앉아 보고 있는 지금 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아마도 내가 멍한 채로 있는 걸 워낙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갑자기 빵 굽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 끝에 강하게 전해지자 급속히 배고픔을 느낀다.

'빵의 천국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프랑스에서 진정한 빵으로 인정받고 있는 빵은 무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블랑제리에 늘어서 있는 바게트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빵은 '바게트(baguettes)'가 아닐까 싶다.

껍질이 거칠고 딱딱하고 단맛은 없지만 '평등 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바게트'일 것이다. 또한 이 국민적인 빵 '바게트'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정부에서는 모든 제빵점은 부유층이나 빈곤층 모두에게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런 의미로 '평등 빵'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 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모든 빵집에서 저렴하게 바게트를 팔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게트를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 가지고 다니는 파리지앵(a parisian)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자주 띄는 걸 보면 역시 파리에서 바게트는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밥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난 솔직히 빵(pain, 바게트, 식빵 등)류 보다는 블랑제리(boulangerie)류의 빵을 더 좋아한다. 부드럽고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블랑제리 내부 유리 진열장 안에 펼쳐져 있는 빵의 종류가 날 정신없게 만든다.

모양도 빛깔도 왜 이렇게 다양한지... 그리고 하나같이 왜 그리 맛있어 보이는 건지...

선택 장애를 일으키는 순간이다.

나는 일단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을 골라 먼저 맛을 보기로 했다.

크루아상(croissant), 브리오슈(brioche), 팡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와 더불어 따뜻한 카페 크렘 (Café crème)을 주문했다.

남편이 날 쳐다보며 놀랜다. 아침 식사로 너무 많은 양이 아니냐며...

순간 눈에 맺히는 눈물을 감추느라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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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남편이 조금 야속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선 파리 이곳저곳을 다니며 눈에 띄는 블랑제리마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나를 여전히 이해 못하는 남편의 제지로 프랑스 여행 내내 간신히 참아야 했다.


카페 크렘 한 모금 마시니 몸의 찬기가 사라지고 따뜻하게 데워진다. 게다가 커피 맛은 깊고 부드럽다.

빵은 갓 나왔는지 따뜻했고 아주 부드럽고 고소했다.

한국에서 내가 사는 동네 제과점의 빵 맛도 아주 훌륭하지만 지금 파리에서 먹고 있는 크루아상(croissant), 팡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의 맛은 내가 자주 다니는 동네 제과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삭하고 풍미가 가득하고 그리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행복이 별 거랴.... 맛난 빵에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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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분 정도의 여유와 행복으로 충전을 한 우리 부부는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방문지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다.

파리의 중심 시테 섬에 위치한 이 성당은 파리에 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곳 중의 하나이며 고딕 양식의 걸작이라 불리는 유명한 성당이다.

안타깝게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포도주 창고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그 후 나폴레옹 1세가 다시 성전으로 회복하고 자신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노트르담 성당!

광장에 도착해서 마주한 노트르담 성당의 정면 중앙 출입문에 벌써 나는 압도를 당하고 말았다.

19세기에 복원된 90m 높이의 첨탑이 화려한 장식과 더불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웅장한 성단 건물이 주는 위엄 그리고 곳곳에 배어있는 섬세함프랑스 초기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균형이 잡혀있지만 신비스럽고 화려하다.

인간의 손길을 통해 탄생된 작품이 이렇게 까지 완벽할 수 있을까?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

그런데 성당 외곽을 둘러보는 중 곳곳에 이상하게 생긴 괴물 모양의 조각상이 앉아있다. 성스러운 성당과 어울리지 않는 추물이다.

삐죽 나온 동물 모양의 머리는 '가고일(Gargoyle)'로 배수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성당 주변에 51개의 날개 달린 괴물 모양의 조각상들, 즉 가고일(Gargoyle)의 정체는 기독교가 탄생되기 전에 사람들이 믿던 토착 신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이 토착신들은 성당의 바깥에서 망을 보고 성을 수호하는 역할로 지위가 강등되었고 괴상하고 무섭게 생겨야 악마가 성당 근처에 얼씬도 못할 것이라며 이렇듯 추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성당의 높은 곳에서 파리의 전경을 항상 내려다보고 있는 괴물 가고일이 부럽기도 하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성당 외벽에 있는 이상한 모양의 괴물들을 보며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명작을 탄생시켰다고 하던데....

젊은 나이에 이곳을 찾은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당을 보며 무엇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걸까?


노트르담의 꼽추 영화의 한 장면(콰지모도)

종을 치는 꼽추,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에스메랄다'는 어떻게 이 작품에서 태어나게 되었을까?

작가 빅토르 위고는 온 힘을 다해 종을 치며 절망스러움과 슬픔을 견뎌내야 했던 꼽추 콰지모도의 처절한 고통을 작품속에서 드러내며 우리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간간이 들려오는 종소리가 오랫동안 맴돌며 콰지모도의 절망스러워하는 모습을 자꾸 떠오르게 한다.

이룰 수 없었던 콰지모도의 애절한 사랑은 한낱 먼지가 되어서라도 이루어졌을까?



역시나 위고의 소설을 파리 시민들은 호응했고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더 노트르담 대성당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은 위고가 보는 노트르담 성당의 아름다움을 파리 시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노트르담 성당 외부와 내부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엄중하고 장중한 분위기에 위압감마저 느낀다.

내부의 장식들도 섬세하고 화려한 작품들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지켜지는 절제와 균형은 성당 내부를 돌아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성당이 주는 분위기에 이따금 나도 모르게 숨이 멎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양 옆에 서 있는 육중한 기둥,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진 오묘한 그림들과 신비로운 색상들, 그 틈을 통해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어둠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샹들리에,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파이프오르간... 이 모든 것들이 성당 내부에서 존재 가치를 충실히 드러내고 있다.


결국 나는 '장미의 창'을 올려보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중세 성당의 장식을 대표한다는 '장미의 창'!

아름다움을 넘어선 숭고함, 성스러움, 고귀함....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감동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로지 네 가지 색으로만 담겨 표현된 저 장미의 창에서 어떻게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했을까?

영롱하게 발하고 있는 신비로운 색감과 마치 타오르는 듯한 불꽃 모양, 아니 수많은 장미 꽃봉오리 한꺼번에 화들짝 피는 순간을 표현한 듯 한 자태, 그리고 그 안에는 동정 마리아와 아기 그리스도가 있고, 예언자들과 성인들이 성 모자 주위를 둘러앉아 장미의 창을 더욱 성스럽게 해주고 있다.

난 한참 동안 장미의 창을 보며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한참을 머물러 있는 나에게 남편이 다가 오더니 우리가 며칠 후 방문할 도시 '샤르트르(Chartres)'에도 장미의 창이 있다고 한다.

장미의 창이 파리 노트르담 성당 외에도 프랑스에 우리가 방문할 도시 샤르트르에도 있다니..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의 창은 나에게 어떤 감동을 불러일으킬지 벌써 설렌다.

남편의 말에 간신히 발걸음을 떼어 성당 내부에서 나올 수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외부와 내부 그리고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화려하고 섬세함, 성당으로서의 장엄함과 무게감을 잃지 않는 성당이었다.


노트르담 성당 내부 북쪽의 '장미의 창'




내부에서 나왔지만 우리 부부는 노트르담 성당 주변을 돌며 성당 건물이 아닌 위대한 건축이 주는 섬세한 화려함을 다시 보고 싶었다.

다행히 근처에 벨리브가 있어 우리는 벨리브(공용 자전거)를 이용해 노트르담 성당 주변과 시테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리 도시 전체가 관광지인 탓에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좁은 골목길에서도 차들이 많이 운행하는 탓에 자동차에 부딪히진 않을까, 사람을 다치게 하진 않을까, 넘어지진 않을까 하는 위험들을 감수하며 자전거를 몰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자동차들의 경적소리와 사이렌 소리들이 계속 울려대는 바람에 앞을 보고 달리기만도 벅찼다. 왜 이런 좁고 복잡한 파리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까? 내심 후회도 들었다.

그러다가 남편과 나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결국 남편은 내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다.

한참이나 주변을 헤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필 휴대전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남편과 연락할 방법도 막연하고 낯선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홀로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두려움도 몰려오고 수많은 무서운 생각이 순간 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반납하고 가까운 퐁네프 벤치에 앉아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파리 연인들에게는 퐁네프가 '이별의 다리'로 유명하다던데 혹여나 나에겐 그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며...

대신, 기적처럼 내 마음과 남편의 마음이 통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다리에서 많은 커플들이 멋진 센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내 눈에는 퐁네프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았고 내 모든 신경은 남편이 언제나 나를 찾아올지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는 바람에 날카로와져만 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남편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난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퐁네프에 있었던 그날만큼 남편을 애절하게 기다려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네게 있어 다리 '퐁네프'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에서 그랬듯이 사랑하는 두 남녀의 낭만적인 안식처이자 아름다운 다리로만이 아닌 아찔한 추억이 함께 스며있는 재회의 다리로 남아있다.

퐁네프(pont-neuf)
퐁네프의 특징인 반원형의 벤치

그러고 보니 오늘 나는 파리에서 의도치 않게 눈물을 많이 쏟은 날이 되고 말았다.



*게재된 글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가 있기 전, 2017년 5월의 글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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