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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Apr 29. 2021

아테네에서 경험한 천국과 지옥

아테네에 머문지  사흘째되는 날이다.

그리스를 방문한다는 계획에 신화를 많이 읽고 오긴 했지만 막상 신화의 나라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만나보는 신화의 전설들은 지식을 넘어 우리에게 설렘과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한 뒤 너무 심취해 있었던 탓일까? 서로의 흥분된 마음을 대화로 풀어 내는 사이 관광객들에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Greece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테네를 방문한 시기는 비수기였고 관광객들도 많지 않은 이른 아침시간이라 주변엔 사람도 없었거늘 설마 내가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할 리 없다 생각하고 방심한 탓이었나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걸어내려오다 잠시 쉬려고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여는 순간 내 백팩이 열려진걸 알았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기슴이 떨렸는지... 백팩안에 있던 조그만 파우치가 없어지고 아끼던 소중한 스카프가 사라졌다. 파우치 안에는 약간의 그리스 화폐와 달러 그리고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한테서만 그친게 아니라 남편의 백팩도 열려져 있었다. 다행히도 남편은 백팩위에 올려두었던 머플러만 가져가고 다행히 맨 아래 두었던 여권과 카드는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내가 지녔던 신용카드와 돈, 스카프가 사라진건 큰 일이 아닌 듯 남편의 가방안에 있던 중요한 내용물들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했는지 모른다. 이번 경험으로 많은 걸 배웠고 다시는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크로폴리스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거리-아마도 이 골목에서 나쁜 일이 일어났으리라 

어쨌든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우리는 남아있는 스케줄을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고 달콤한 군것질도 당겨 영국 찰스 황태자 부부가 들러 먹었다는 도넛가게 "Lukumades"로 향했다. 번잡한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라 눈에 띄지 않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런 때는 구글지도도 왜 날 도와주지 않는건지... 열심히 지도를 따라 갔건만 도착하는 장소마다 다른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날 당황시켰다. 하지만 기어코 맛을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했을까? 결국 도넛가게를 찾아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도넛 가게는 크지 않았고 가게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도 몇 군데 없다. 다행히 가게 안에 손님이 많지 않아 자리에 앉아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시간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할 것 같다. 

내가 주문한 도넛은 도넛안쪽 공간엔 바닐라 크림이 들어있는 달착지근하고 맛난 도넛이다. 핫초코와 함께 달달한 도넛으로 배를 채우니 온 몸에 당 충전이 된 듯 하다. 잠시 전 겪었던 지옥과 같은 어두운 상황에서 벗어난 천국같은 기분이다. 

역시 나란  사람은 달달한 무언가가 채워져야 좋은가 보다. 

 Lukumades도넛가게 메뉴
Lukumades 도넛매장내부

우리 부부는 간단히  배를 채운후 다시 북적거리는 모나스티라키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주변에 있는 플리마켓은 아테네에서 잘 알려진 플리마켓으로 이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느나라, 어느 장소를 방문하던지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둘러보는 일은 항상 설렌다.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다양한 풍습, 그들만의 문화를 고스란히 접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그냥 구경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느꼈던 모나스티라키의 플리마켓에서는 수제 신발, 비누, 그리고 티셔츠 등 관광객들을 위해 기념품을 주로 팔고 있어 그들만의 특별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재래시장과 크게 다를바 없어 조금은 실망했다. 하지만 사람은 북적거려 오랜만에 활기를 느껴본다. 

모나스트라키 플리마켓

플리마켓을 벗어나 우리는 그리스에서 유명한 전통음식 수블라키를 먹으러 Thanasis 레스토랑에 갔다. 져렴하고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레스토랑 직원은 우리를 매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다. 

수블라키가 맛있다고 소문난 Thanasis

소문대로 맛난 수블라키와 친절한 환대에 훌륭한 점심식사까지 했지만 배불리 먹은 후에도 왜 디저트는 항상 함께 해야하는지... 레스토랑 바로 앞 길거리에서 달콤한 꿀이 발라져 있는 땅콩을 팔고있는 걸 보니 그냥 갈 수 없어 결국 한 봉지 사서 먹어야 했다. 그리스 유명한 간식이라고 한다. 몇년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도시를 걸어다니며 사먹던 그 견과류 맛과 똑같다. 

탈린에서의 저녁 산책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역시 사람은 추억속에서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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