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삼형제를 고아원에 맡기지 않고 손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삶에서 가장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할머니와 함께 보냈던 16년의 시간이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에요.
자기 몸이 다 불타면서도 새끼 까투리들을 날개 아래 지켜 낸 엄마 까투리처럼 요즘 할머니의 냄새가 부쩍 그리워집니다. 50 나이에도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80이 훌쩍 넘으신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고단하셨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할머니를 떠나보낸 지 어느새 28년이 다 되어가네요.
새엄마와의 갈등으로 스무 세살에 집을 나온 뒤 5일 만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어요. 마침내 미라처럼 깡마르고 굳어진 할머니를 껴안는 순간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고 할머니를 살펴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죠. 제가 집을 나간 그 5일 동안 얼마나 저를 찾고 제 이름을 부르셨을지,
그 날 제가 한 선택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몰라요. 조금만 기다리면 제가 돈 벌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딸 같은 손녀가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면서 받았을 할머니의 충격과 상심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평생을 살면서 제가 후회하는 단 하루가 있다면 제가 집을 나오던 바로 그날이에요.
한겨울 맨손으로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도, 한여름 땡볕에 밭일을 도우면서도,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할머니를 리어카에 태우고 배급 쌀을 타러 갈 때도, 할머니와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어요. 남의 집 밭일을 하며 받은 새참인 보름달 빵을 굶주린 손녀에게 기꺼이 내어 주셨고 제사나 잔치에 다녀오시면 한복 속바지 주머니 가득 떡이며 과자를 넣어오셔서 새끼 제비 마냥 할머니만 기다리고 있는 저희에게 꺼내 주셨던 그 사랑을 제가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어느덧 나이가 들어 그 시절을 뒤돌아보니 늘 저를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 사랑에 힘입어서 오늘까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어느새 결혼도 했고 그때의 저보다 더 자란 두 아들도 있어요.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서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할머니와 함께여서 저는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배급 쌀로 간신히 연명하던 시절에 했던 결심처럼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덧 제가 살아온 날보다 할머니를 만나러 갈 날이 더 가까워지고 있어요.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할머니를 마주해도 부끄럽지 않도록, 이 땅에서의 삶이 후회가 없도록 저 더 열심히 살게요. 하늘나라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제가 이 땅에서 못한 효도를 다 할게요. 제 삶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