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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삶

내면의 용기, 나를 찾아가는 여정

  

트라우마는 우리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신체적, 정서적, 또는 정신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때로는 평생 동안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지배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를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충격'으로 정의하며, 이는 개인의 일상적 기능과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도 쉽게 잊히지 않고,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그들의 신념, 대인관계, 자아존중감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큰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내가 두 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셨고, 나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전혀 돌보지 않았으며,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남의 집에 가정부로 가게 되었다. 언니가 떠나던 날, 옷 보따리를 품에 꼭 끌어안은 언니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뒤돌아보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순간은 나에게 너무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밤새 얼마나 울었던지 다음 날 아침 눈이 부어서 떠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사건은 어린 나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였고, 아마도 나 역시 언젠가 언니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무의식 깊이 새겨졌던 것 같다.


트라우마는 이렇게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 뿌리내리고, 삶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학계에서도 트라우마의 장기적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2010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는 성인이 된 후 우울증, 불안 장애, 그리고 대인관계 문제 등 심리적 어려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경험은 자아존중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지각하게 한다.


중학교 3학년. 우연히 친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세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고 중2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남동생을 이제라도 돌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재결합할 거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재회하면서 아버지의 폭력성을 직접 눈으로 목격해야 했다. 새엄마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겪어보지 못 한 아버지의 민낯을. 친어머니와의 재회 후 가정폭력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어머니는 세 명의 이복동생들까지 돌보아야 했으므로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고, 손님과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폭력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방문을 잠그고 숨죽여, 아버지의 폭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버지가 거실에 앉아  구 해 온 몽둥의 껍질을 칼로 벗겨내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나도 저 몽둥이로 맞겠구나. 라는 생각에 온몸이 몸서리쳐졌다.


이 시기 또한 나에게 또 다른 큰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엄마는 그렇게 맞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내게 토로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나는 생존을 위협받는 듯한 두려움 때문에 엄마를 지켜드릴 용기를 내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 시절의 엄마에게 참 미안한 마음뿐이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신과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이 상처가 영원히 나를 지배하게 둘 것인지, 아니면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트라우마 치료 분야의 권위자인 베셀 반 데어 코르크(Bessel van der Kolk)는 그의 저서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에서 트라우마가 신체와 정신에 남긴 깊은 상처를 강조하며, 그 치유 과정에서 개인의 용기와 치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하려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나의 의지였다. 그 의지가 있었기에, 나는 트라우마를 넘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첫걸음은, 그 상처와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나를 무너뜨리는 대신,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트라우마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직시하고 치유하려는 우리의 용기와 의지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상처를 넘어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의 이야기처럼,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삶은 고통스럽고 두려울 수 있지만, 그 너머에는 새로운 성장과 회복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겪은 상처를 다시 재구성하고, 그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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