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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첫 유럽여행의 기억

by 하르딘

해 10월 추석 연휴를 껴서 휴가를 내고 2주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스페인 여행 가기는 작년에 스페인어 독학을 시작한 이후로 2025년 목표 중에 하나였다. 항공권을 결제하고 나서부터는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10월이 오기만을 목 빠져라 기다렸다.


원래는 스페인만 갈 생각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막판에 포르투갈도 4일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유럽여행은 딱 10년 만에 간 거였다. 2015년에 2주 동안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혼자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때도 원래 이탈리아만 가려다가 간 김에 붙어있는 스위스를 4일 곁다리 껴서 갔었다. 스위스도 포르투갈도 그냥 다른 사람들이 "좋다더라"는 말에 껴서 갔다. 붙어있는 나라들이라 버스나 기차로 바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뭔가 10년 전과 상황이 비슷했다.


10년 전 이탈리아 갔을 때도 이번 스페인 갔을 때도 하도 주위에서 소매치기 겁을 줘서 걱정했었는데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소매치기를 목격한 적도 없었다. 아마 운이 좋았던 것이겠지. 그래도 소매치기는 사고처럼 언제 어디서나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하긴 해야 한다.


상황은 어찌 보니 10년 전과 비슷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거의 정확히 딱 10년 전이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이나 지난 만큼 그때와 내 느낌은 다른 점이 많았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장거리 비행의 후유증이다. 10년 전에는 대학원생 막 학기였으므로 돈이 없었다. 싼 항공권을 끊겠다고 그때도 경유 한번 포함해서 총 비행시간이 대략 25시간 내외였던 것 같다. 두 번 다 저가 항공을 이용했으므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도 힘들긴 했었겠으나, 이번은 정말 정말 힘들었다. 이번에는 돈을 벌고 있는 직장인임에도 시간보다 돈을 생각했다. 거지근성은 못 버리는 것인가.. 다음에는 돈을 더 쓰더라도 꼭 직항으로 가겠다 다짐했다.


나는 빵과 디저트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빵과 디저트가 맛있는 스페인에 가면 너무 신날 줄 알았다. 처음에는 좋았다. 추로스도 맛있고, 카페 가서 초코케이크나 치즈케이크, 크루아상도 실컷 먹었다. 매일 아침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침밥으로 먹는 토스트도 매일 먹었다. 그런데 한 4,5일 지나니 그것도 좀 물렸다. 여기까지 와서 한식을 먹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계속 먹긴 했으나 좀 물리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메뉴도 매일 먹으면 이렇게 빨리 물릴 수 있구나 하는 점이 놀라웠다.


유럽 어느 나라를 가든, 유럽여행은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냥 계속 걸어야 하는 것 같다. 유럽여행은 대부분 대도시 관광이니 많이 걷는 건 필수다. 하루에 대략 평균적으로 1만 5천보씩 걸은 것 같다. 10년 전에는 이번보다 훨씬 많이 걸었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이제는 오래 걸으니 종아리와 발이 붓고 좀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인생 샷 남기는데 관심이 없어졌다. 10년 전에는 옷을 종류별로 가져가서 매일 갈아입고 사진을 찍는데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대부분 편한 옷 위주로 가져갔고, 사진 찍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인스타도 안 하고 카톡 프로필 사진도 없는 나에게는 인생 샷은 어디 올릴 데도 없다. 다만, 나중에 '나 그때 스페인 여행 갔었지!'라고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만 조금 찍었다.


여행 중 만난 외국인들은 매번 나에게 '나 한국 (또는 일본)에 항상 가보고 싶었는데!'라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늘 가까운 유럽 나라들로 여행을 가기에 (한국인들이 가까운 동남아를 많이 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은 그들이 여행 가기에 너무 먼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들은 유럽여행 안 가본 사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럽여행을 정말 많이 간다. 그것도 멀리 간 김에 뽕(?)을 뽑겠다고 대부분 유럽 여러 개 국가를 한 번에 돈다. 나는 겨우 두 개 국가 도는 것도 힘들었다.


다시 10년 뒤에 또 이렇게 장거리 유럽여행을 갈 수 있을까. 만약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10년 후에 유럽에 가게 된다면 그땐 이번 여행과 비교해 무엇을 느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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