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다 보니 어제 뭐 했는지 뭘 먹었는지도 생각이 잘 안 난다. 대부분의 일상은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어도 하던 대로 몸이 움직인다. 반면에 여행을 가면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특히 나처럼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숙소에서 나온다. 여러 장소도 방문해 보고, 사진도 많이 찍고, 밥과 디저트까지 먹고, 아이쇼핑도 실컷 했는데도 아직 대낮인 걸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이번 여행은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여행 중반이 되기도 전부터 '집에 언제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집에 갈 날이 8일이나 남았네, 7일 남았네 하면서 집에 갈 날짜를 세고 있었다. 그러하니 여행 내내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 또 막상 여행이 3~4일 남았을 시점에 '이제 진짜 집 가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라고 느껴지는 순간, 웃기게도 다시 집에 가기 싫어졌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돌아가야 한다고..?'
혼자 다니는 여행객인 나의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들이 뛰어놀았다. 말할 사람도 없고 그저 걸어 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그러다가 문득, 스페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혼자 밥 먹는 사람, 혼자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 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선 대부분 다들 일행과 함께 있다. 카페든 식당이든. 다들 바에 앉아 수다를 엄청 떤다. 여기는 밥 다 먹고도 꽤 오래 앉아서 계속 맥주를 마시며 얘기한다. 아마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정말 금방 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수다 떨 사람이 없으므로 밥 다 먹었으면, 커피 다 머셨으면 그냥 바로 나오곤 했다.
스페인 여행을 오기 전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토크와 수다 떠는데 5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던 기억이 났다. "야, 우리 수다 떠는데 5시간도 모자란다. 아직도 할 얘기 너무 많은데. 뭐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라고 했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일이구나 새삼 다시 느꼈다.
이번 여행 내내 계속 혼자 밥 먹고, 혼자 카페 가고,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야경 구경했다. 여행 떠나오기 바로 전 주에 만났던 친구 생각이 나면서, 열심히 수다 떠는 스페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 없다면, 하루하루의 수많은 시간을 혼자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생길 수많은 시간을 나 혼자 무얼 하며 채워야 할까? 이번 여행처럼 혼자 밥 먹고, 혼자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여행하고 할 수 있지만, 그걸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여행 와서 느낀 시간의 길이가 갑자기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