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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페인에서 살 수 있을까

by 하르딘

마드리드 도착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느낀 가장 불편한 점은 바로 '편의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편의점을 찾는 이유는 '물' 때문이었다. 원래도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고, 많이 걸어야 하니 물을 더 자주 마시는데, 물을 사려면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 같은데 아니면 큰 마트를 찾아가야 했다. 서울에서는 그냥 고개만 휙휙 돌려도 널린 게 편의점이었기에 이 상황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물이 중요하니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화장실'이다.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서울은 큰 공원이나 관광지는 대중 화장실이 깨끗하게 잘 되어있다. 그리고 공중 화장실을 찾을 수 없으면 가까운 지하철역 화장실에 가면 된다. 반면에 스페인은 공중화장실도 없고 지하철 화장실도 없다. 저 사람들은 밖에서 화장실 급할 때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아직도 안 풀리고 있다. 결국 화장실 가고 싶으면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페나 식당 가면 주문하고 한번, 다 먹고 나오기 전에 한번, 이렇게 화장실을 두 번씩 쓰고 나왔다.


지하철도 버스도 냉난방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는 추웠지만 낮에는 꽤 더웠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으면 꿉꿉하고 답답하고 더웠다. 그리고 너무 좁고 낡은 지하철은 서울의 크고 넓은 지하철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지하철은 대부분 지옥철이지만, 냉방이 빵빵하게 잘 되는 편이라 덥다는 느낌은 잘 받은 적이 없다. 서울의 출퇴근 시간 지옥철을 몇 년간 경험했음에도 훨씬 사람이 없는 스페인 지하철이 더 답답했다.


그리고 서울은 인구가 많은 대도시인 만큼 버스, 지하철이 금방금방 온다. 대중교통만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 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는 그나마 다른 도시에 비해 지하철, 버스가 금방금방 오는 편이긴 했지만. 다른 도시는 도착시간 지금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지만. 지하철은 몇 분 남았는지 뜨긴 하는데. 버스는 버스 정류장에 정보가 안 나온다. 서울에서 버스 정류장에 수십 개의 버스 노선이 실시간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거 보다가, 세비야에서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한참 동안 안 오는 거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불편했던 건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알 텐데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 5끼를 먹는 걸로 유명하다. 점심 저녁을 늦은 시간에 먹고. 오후에 낮잠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보통 오후 4시~7시 정도는 브레이크 타임으로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 나는 점심, 저녁 두 끼 먹는데. 여긴 점심을 2시에 저녁을 8시에 먹는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너무 허기져서 점심시간인 2시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침을 먹고, 점심 2시 저녁 8시에 먹는 것으로 그들의 시간표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좀 자잘자잘한 불편함으로는 식당에 메뉴판 자체가 없는데도 많고, 메뉴판이 있으면 또 메뉴가 너무너무 많아서 메뉴 고르는 데 한참 걸린다. 그리고 서울에서 식당 가면 당연히 제공되는 물이 여긴 제공되지 않는다. 물값도 2배 이상 비싸다.


그리고 이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보다 개인적인 성향 차이인데.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근데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저녁형 인간인 것 같다. 아마 찾아보면 여기도 아침형 인간은 있겠지만. 만약 내가 스페인에서 불편하게 살지 않으려면 저녁형 인간 스타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여기는 다 같이 저녁 늦게까지 맥주와 술을 마신다. 중요한 건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체질이 술을 못 먹는 체질이라 생활 리듬은 바꿀 수 있어도 술 먹는 걸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신기했던 건 가정집도, 호텔도 화장실 안에 환풍기가 없다!!! 창문도 없는 화장실이면 환기는 도대체 어떻게 시키는 거지? 이것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리고 대체로 다 화장실이 엄청 작다. 물론 내가 갔었던 가정집 에어비앤비 숙소와 몇 군데 저렴한 호텔이 그랬던 거기 때문에 다 그런진 모르겠지만. 조금 덩치가 큰 사람이면 샤워실에 들어갔을 때 꽉 차서 샤워하기 힘들 정도. 나는 마른 편인데도 샤워실이 작아 불편했다.




서울에서 너무 당연해서 '편리하다'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스페인에 오고 나서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란, 어학연수나 워홀이나 유학 등 외국의 장기 체류 경험도 없는 나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뼛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산다고 상상했을 때의 불편함이 자꾸 느껴지는 걸 보니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나도 모르게 너무 익숙해져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물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여기서 살다 보면 또 여기 환경에 익숙해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에서 편한 거는 금방 적응해도 편한 거에서 불편한 거는 적응하기 힘들다. 마치 운전을 할 줄 알게 돼서 대중교통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 운전을 다시 안 하는 걸로 돌아가긴 힘든 것처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 타고 숙소 가는 길,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그분을 보고 앉아있던 나포함 3명의 젊은 사람들이 다 같이 무슨 짜기라도 한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걸 보고 서로 다들 눈 마주치며 멋쩍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다음 역에 내린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뭐 이러나저러나, 역시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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