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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 여행을 떠나는가

by 하르딘

혼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다 보니, 그리고 여행객들이 많은 관광지에 있다 보니, 나와 같은 여행자들에게 더 많이 눈길이 갔다. 가장 눈에 띄는 여행자는 은퇴하고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노부부들이었다. 수많은 유럽 노부부들을 보며, 나이 들면 여행이 힘드니 젊을 때 많이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체력적으로 젊을 때 가는데 당연히 유리하겠지만, 나이 들어서 좀 더 느긋하게 여행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비행길이 완전히 막혔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여행을 갔었던 것 같다. 아무리 재밌었던 여행이라도 여행이란 평소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지라 다녀오면 늘 피곤했다. 더군다나 별로 재미가 없던 여행이었다면, 즉 힘들고 돈만 쓰고 온 것 같다고 느껴지는 여행이었다면 허탈하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느껴지는 여행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으면 나는 또 다음 여행지를 검색하곤 했다. 다음엔 어디로 여행 갈지 생각하는 내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왜 자꾸만 여행을 떠나는 걸까. 여행지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계속 여행을 떠나는 나 스스로가 신기하다. 먼저, 여행이란 무엇일까.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인증샷 찍는 게 여행일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여행일까?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고,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하는 게 여행일까? 물론 이 모든 게 다 여행의 모습들이겠고, 사람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다 다를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세계여행 책을 읽으며,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여행을 주제로 한 로맨틱 영화 같은 것을 보며, 여행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을 품지 않는다. 여행을 가서 어떤 영화 같은 멋진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여행지의 풍경에 대한 기대도 별로 안 한다. 멋진 카메라로 담은 영화나 영상으로 봤던 것보다 실제가 더 별로인 경우도 많았다. 여행을 다닐수록 점점 더 여행에 대한 기대는 없어진다. 기대 없는 여행을 떠난다는 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어떤 여행이든 시간, 체력, 돈은 무조건 든다. 그걸 감수하면서도 떠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행을 떠나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큰 것 같다. 일상은 매일매일이 구분 안될 정도로 너무 똑같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아무리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 한다고 한들 사는 곳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는 여행이 기대돼서 가는 여행보다, 일상에서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어서 가는 게 내 여행의 이유가 되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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