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사진을 단 하나도 찍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행에서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여행 사진이 없다면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스타를 하지 않아서 예쁜 여행 사진이 필요 없기도 했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눈에 가득 담아 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 막상 여행지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포르투갈에 다녀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다고 하는지도 바로 알게 되었다. 포르투갈의 대표 도시인 리스본과 포르토는 어딜 가나 '포토 스팟'이었다. 웨딩사진 찍는 커플도 종종 보였다. 포르투갈이 여행지로 인기 있는 이유가 '사진 찍기 좋아서'인 것 같다. 거의 여행을 하러 여행을 가는 건지,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어딜 가나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틈에 나도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대충 찍어도 다 예쁜 엽서 같은 풍경이었다.
여행 후 사진첩을 보니 대부분 음식 사진과 풍경 사진뿐이다. 그리고 간간이 셀카 몇 장, 혼자 여행 갔으니 당연했다. 셀카는 다 배경만 바뀌어있고. 내 포즈, 표정은 다 똑같다. 서로 사진 찍어 주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 달라 하기도 좀 그렇다. 보통 혼자 있는 사람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데 혼자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은 3번 정도, 그러하니 사진 건진 건 거의 없다.
여행의 거의 마지막 날, 포르토 도오루 다리에서 혼자 야경을 봤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천천히 걸어서 돌아갈까 하다가 야경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가려고 했다. 역시나 최고 관광지인 그곳은 온갖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남들처럼 야경 사진 몇 장 찍고, 셀카 몇 장 찍고 어쩌면 한강이랑 비슷해 보이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할 게 없었다.
그때 어떤 동양인 남자분 한 분이 혼자 영상을 찍으며 지나간다. 한국인 같았다. 혼자 있고 한국인 같으니 사진 찍어달라고 하기 좋은 사람 레이더망에 걸렸다. 말 걸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두 시간 정도 강변에 앉아 여행수다를 떨었다. 계획 없이 유럽 일주 중이라고 했다. 호스텔에서 외국인들과 영어로만 대화하는데 지쳐 한국말이 그리웠던 그분과, 혼자 다니며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거에 지쳐 심심해하고 있던 나, 서로 대화하기 좋은 상대였다.
여행을 오래 하고 있는데,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 느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영상을 찍고 있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행의 추억이 사라지는 아쉬움'이라는 면에서는 너무 공감이 갔다. 나 또한 이번 여행에서 여행하면서 든 생각들을 글로 쓰려고 노트북을 가져갔지만,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 적은 단 두 번이다. 나름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는데, 여행지에서 노트북 꺼내 글 쓰는 건 정말 보통 의지가 필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전문 여행작가, 기자나 여행 유튜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을 하나도 찍지 않아도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지만, 그 여행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는 없다. 사람의 기억이란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부풀려지거나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니까. 나조차도 예전 여행에서 찍었던 영상들을 간간이 볼 때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것도 사진과 영상에 찍힌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만. 다시 오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느낌과 경험은 아닐 것이다.
사진에 관심 없다던 내가 그래도 사진을 찍은 이유는,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 옛날에 거기 여행 갔었지' 하고 추억할 만한 사진 몇 장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뭔가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특히 사진은 여행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이러한 기록 하나하나가 또다시 지루한 일상을 계속 힘내서 살아갈 힘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