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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01. 2023

그래서, 이번 추석은 좀 달랐을까.

그가 벌인 난장판



시댁에서 보낸 2박 3일간의 연휴가 끝났다.

차는 시댁 주차장을 빠져나와 친정으로 향했다. 차 뒷자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내 나와바리로 간다."

그는 제길,이라 말하는 듯 싶다가 다시 점잖게 "콩글레츄레이션." 이라 답했다. 나는 웃었다.




"이번 추석에는 진짜 달라진 모습 보여줄게. 오빠 한번 믿어봐!"


오빠도 아니면서 자꾸 오빠를 믿어보라며 동갑인 남편은 큰 소리를 쳤다. 명절이 다가오면서 아내가 긴장하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그였다.

그랬다. 나는 명절을 앞둘 때마다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미 결혼 10년차에 접어들어서 더 이상 시댁 불편한 건 아니었. 그러나, 명절만 앞두면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됐다. 출정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해졌다. 아무래도 며칠간 '명절 음식 장만'이라지난한 과제가 함께 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었다. 


시모가 아들과 손주를 먹이는 일에 진심이긴 하셨지만 평소에 크게 기분 상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꼭 명절만 되면, 어머님은 당신의 모든 정신을 '먹는 일'에 집중하셨고 그것은 조금 불편했다.

이제껏 명절이면 어머니는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이 갖은 음식을 만들었다. 며느리의 보좌 속에서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각종 전을 부치고 고기와 생선을 맛있게 구워서 아들들과 손주들을 배불리 인 후에야 비로소 흡족해하셨다. 그제서야 "이제 우리도 먹자." 하시며 다들 먹고 떠나 어지러운 밥상 앞에 앉으셨다. 종일 차리고 먹고 치우일은 며칠간 반복됐다.


성대한 음식의 향연은 떠나는 아들 내외의 양손에  보따리의 음식을 들려주어야 끝이 났고, 당신은 그렇게 해야만 명절을 아주 잘 쇠었다고 여기셨다.




그러던 어머님이 이번 명절에는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일절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 사먹자고 하셨다. 정말 손목이 아프기도 하셨겠으나 아무래도 며느리를 생각해서 나온 배려의 말씀이신 듯했다.


(이전 글 참고)

https://brunch.co.kr/@57cc19657fbf40a/15

남편도 이번 명절에는 꼭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선포다. 그렇게 말해준 어머님과 남편이 몹시 고마웠다.


추석 전날 시댁에 도착하자, 정말로 어머님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가서 놀자고 하셨다. 점심을 먹고 음식을 하는 대신에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유명한 사찰이 있는 숲길을 걸었다. 담소를 나누고 커피를 마셨다. 즐거웠다. 이제 좀 연휴 같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은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차 안에서 어머님은 내게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서운하지 않겠냐며 물어보셨다. 전을 하나도 안부쳐도 괜찮겠냐고 자꾸만 말씀하셨다. 혹시 어머님이 서운하신 건 아닐까 싶어 "그럼 매번 하셨던 새우 전이라도 하나 할까요." 하고 답했다.  그러자 대번에 어머님의 얼굴이 확 피었다. 


그럴까 그럼?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를 세우고 어머님은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사오셨다. 너희들이 원하니 그럼 조금만 장만하자고 하셨다. 막상 전을 부치니 한 종류만 하려니 좀 아쉽다며 다른 전도 해보자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호박전, 오징어전, 산적, 새우전을 지지고 고기를 굽고 떡을 찌고 국을 끓였다.



아, 안돼...

아뿔싸, 했다. 그래도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어머님은 음식을 할 때 가장 밝고 활기찼다. 70년을 그렇게 살아오신 당신이신데 내가 며칠만 맞춰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이번 명절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단단히 작심한 듯한 남편이었다. 그는 사랑받는 막내로 40여년을 살아왔다. 매년 명절마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늘어지게 쉬던 그였다. 그런 남편이 지금은 어머니와 나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뭐라도 할라치면 사사삭, 어머니의 뒤를 따라서 수선스럽게 부엌으로 달려들었다. 큰 목소리로 "내가 할게! 저리 가 있어!"를 외쳐댔다. 내가 전을 부치면 앞에 앉아 산적에 계란물을 입히고 잔소리를 했다. 시끄럽게 부엌을 종횡무진했다. 나는 조금 어색했지만 그럭저럭 그런 그를 고맙게 여겼다. 남편은 독한 결심을 한 듯이 이틀간 꽤 열심히 음식을 했다.




시댁에서의 삼 일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았다. 남편은 안타깝게도 눈에 띄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동안 그는 설거지 한 번, 해물 파전 지지기, 전에 계란물 입히기, 새우 손질 했고 평소에 비해서는 푹 쉬지 못했다.

그는 이날 아침에는 무생채를 만들기 위해 무를 썰었다. 나는 갈비를 구웠고 어머님은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그때 아버님은 어항에 물갈이를 하셨고, 아주버님은 아이들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티비를 봤다. 둘째가 심심했는지 간혹 징징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남자들은 다들 뭐해? 왜 놀고만 있어? 애가 울잖아!"


한참을 말없이 무를 사각사각 썰던 남편이 난데없이 고함을  것이다. 아버님과 아주버님은 당황했지만 얼른 둘째를 얼렀고, 아이가 웃자 남편은 다시 잠잠해졌다. 어머님과 나도 놀랐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머님이 쟤 왜 저러냐고 눈으로 물었고 나 역시 저도 모르겠어요, 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전을  데우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계속해서 집안의 다른 남성들을 공격했다. 인상을 쓰고 자꾸만 성질을 냈다.


"아니 진짜 아빠랑 형은 뭐하는 거야! 애도 안봐, 음식도 안해!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고! 어? 지금 다들 뭐하냐고!"


남편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어머니도 기가 불편해졌다.

"얘가 정신없이 자꾸 러냐. 안하던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러?"

남편의 뜬금없는 속사포 랩에 아버님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고 아주버님은 불쾌한 얼굴로 궁시렁거렸다.

"와이프를 도울거면 조용히 도울 것이지 왜 이렇게 생색을 내는거야."


결국은 화를 참지 못한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아휴,  때문에 정신 사나워서 못하겠다. 애미야! 앞으로 여자들만 음식을 하고 남자들은 설거지나 하라고 하자. 네 생각은 어떻냐? 네가 말해봐라."


그러나 내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다시 남편이 외쳤다.

"여자들이 음식을 하자고? 여기에 여자가 누가 있는데. 엄마랑 얘랑 둘 밖에 더 있어? 이 힘든 걸 어떻게 둘이 다 해! 장난해?"


명절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달한 듯한 남편의 우렁찬 포효에 나는 그만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이 인간이 정말...

달라지겠다고 하더니 하긴 전에 못보던 다른 모습이긴 했다. 




두 시간 후, 우리는 시댁을 나왔다.

어머님은 이번에도 며칠 내내 만든 음식들을 가득 싸주셨고 아버님과 아주버님은 어쩐지 말이 없으셨다. 남편은 아직도 조금 씩씩대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이 정도면 무탈했다고 생각하며 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들 무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에 관한 글을 쓰라 해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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