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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05. 2023

아빠에 관한 글을 쓰라 해서 써본다.

일단은 가볍게

 

몇 주 전에 브런치스토리에 엄마에 관한 글을 썼다.


그날 아침에 엄마가 차 사고를 내고 많이 우울해하기에 위로의 의미를 담아 쓴 글이었다. 그건 엄마에게 부치는 편지에 가까웠다. 읽어보시라고 카톡창에 링크를 보냈다. 그래도 한동안 답이 없길래 엄마가 아직 경황이 없으신가 했다.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엄마도 아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다. 아빠는 엄마가 내 글을 읽고 운다고 했다. 눈이 퉁퉁 부어서 아빠에게도 읽어보라며 핸드폰을 건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자기가 봐도 꽤 진솔하게 잘 썼다는 말을 덧붙여 나를 겸연쩍게 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아빠에 대한 글도 써. 손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주제로 쓰면 재밌겠다."


네? 뭐요?

엄마는 부탁도 권유도 아닌 명령을 했다. 취미 겸 연습 겸 글을 쓰기 시작한지 이제 3주차에 접어든 딸에게는 다소 무리한 요구였다. 




아빠에 대한 글이라니. 지난 삶에서 우리 부녀간 얼마 안되는 에피소드들을 떠올려보면 아주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젊었던 아빠는 꼰대 느낌 낭낭하던 사람이고 지금의 아빠는 내가 많이 닮은 남자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다. 우리는  괜찮은 사이긴 했다. 물론 아주 편하고 친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의 가슴 속 분명히 나를 향한 부정(情)이 있기는 하지, 그렇다고 내게 대놓고 보여준 적은 한번도 없었던 느낌이랄까.


까짓것 지금까지 쓴 것들도 하나같이 '이런 걸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내용들이지 않은가.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아빠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자.

엄마에게 요구받은 사항은 [아빠의 지극한 손주사랑]이며 장르는 [명랑소설]이다. 그녀의 주문에 맞춰서 써보기로 했다. 이것도 글쓰기 연습의 일환이었다.


아빠의 별명은 강호동입니다. 제가 붙여준 별명입니다. 예전에 방송인 강호동 씨의 실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냥 아빠를 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아빠도 호동씨처럼 씨름을 잘합니다. 젊었을 때는 시민 체육대회에서 시 대표 씨름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만약에 호동씨와 아빠가 실제로 거리에서 마주친다면 서로 '동족'임을 대번에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집 호동씨는 본인의 첫 손주를 아주 예뻐합니다. 아이가 호동씨의 벗겨진 머리가 신기한지 작은 손으로 탁탁탁 그의 이마를 칠 때면, 보고 있던 사위와 딸은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감히, 그 무서운 호동씨의 머리를 치다니. 겁도 없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해서요. 그러나 호동씨는 매번 허허 웃고 맙니다. 그것은 대단한 차별입니다. 호동씨는 오로지 손주에게만 그의 이마를 허락했습니다.  

호동씨는 그전에는 누구에게도 그의 이마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점잖은 모범생이었기에 한번도 남과 싸우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연스레 학교의 짱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우라는 가족들에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가 조금만 으르렁거려도 아들과 딸은 알아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누구라도 그의 자식이 되었다면 절대 엇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호동씨의 딸이 국민학교 1학년 때 본 시험에서 전 과목 올백을 맞을 수 있었는데 딱 한 문제를 틀렸습니다. 그때 틀린 문제는 가족회의에서 의사결정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답은 다수결에 따른다였나, 민주적인 방식을 의미하는 답이었는데요. 그때 딸이 쓴 답은 '아빠의 결정에 따른다'였습니다. 그 당시에 아빠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다른 가족 구성원은 그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원들이었거든요. 그런 세상에서 살던 호동씨의 딸은 당연히 답을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담임 선생님이 답을 보고 꽤 웃겼는지 아이의 엄마에게 말해주었고, 엄마도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이 일을 말하곤 합니다.
 
어느새 60 중반이 된 호동씨는 성인이 된 딸과 아들에게 자꾸 예전에 엄하게 대했던 것을 사과하곤 합니다. 그런 그의 눈과 목소리는 회한에 가득 차있습니다. 뭐, 좋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과의 타이밍이 좀 갑작스럽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다가도, 등산을 하다가도, 고장난 스프링처럼 시도 때도 없이 뜬금없는 사과를 합니다.

한번은 호동씨가 장어구이집에서 장어꼬리를 몰래 신랑에게 몰아주던 딸을 붙잡고 냅다 사과를 해왔습니다. 사위와 딸은 부산하게 장어를 집던 젓가락을 다시 상에 내려놓고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갑작스러운 고해성사는 그후로도 몇번이나 계속됐지요. 그럴 때마다 딸은 어쩐지 울고 싶어져서 황급히 화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아... 분명히 명랑하게 시작했는데 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간다.

원래는 손주에 대한 그의 사랑을 자세히 쓰려 했다. 그것은 어떤 광기에 근접한 것으로, 연예인과 열혈 팬 혹은 사이비 교단의 교주와 신도에 가까운 행태였다. 180cm를 넘는 당당한 체구의 그가 당돌한 손자에게 쩔쩔 때마다 웃기긴 정말 웃겼다. 그래서 그에 관한 내용을 쭉 써보고자 했다. 그런데 쓰다보니 명랑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여러 묵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어쩐지 그의 딸로 살아오며 느꼈던 부정적인 기억들에 울컥해졌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그래서, 아예 방향을 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주 무겁고 진지하게 써볼까.

혹시라도 엄마나 아빠가 글을 읽는다면 이 부분만큼은 넘겨주시길.

당신의 서투른 고해성사들로는 나의 해묵은 감정들을 결코 지울 수는 없을 거라고. 금쪽같은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오히려 당신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이 더 선명해지곤 했다고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다. 내 말로 인해 당신의 마음이 아파온다면, 그래서 더 많이 미안해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아주 나빠서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은 분명히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아빠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난 아빠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의 아빠라는 말은 절대 아니므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과거에 당신은 딸의 생일이라고 생크림 케이크를 사고 예쁘게 포장한 젝스키스의 다이어리를 선물로 내밀 줄 아는 남자였지만, 10분 후 그 딸이 버릇없게 군다고 생각하면 벌컥 화를 내며 케이크를 엎어버리는 불같은 성격의 남자이기도 했다.

당신은 늘 내게 '씁. 안돼. 하지마. 해. 예의없게 굴지마. 조용히 해. 방에 들어가.'와 같은 말들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싫으면 다른 아빠한테서 태어나지 그랬어.'와 같은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딸 예쁘다. 최고다.' 그런 말은 죽어도 안했다.

당신은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급식판에 담은 밥과 반찬을 억지로 먹이거나 지리산 천왕봉에 끌고 가기도 했다. 사춘기 여아에겐 아주 끔찍한 기억이 됐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안걸면서 꼭 술에 거나하게 취할 때만 호통을 치듯이 한 번 안아보자며 어린 딸에게 다가오던 당신의 모습이 어색하고 싫었다. 그래서 아빠가 내게 간헐적으로 보여주던 소극적인 애정표현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내 침대 머리맡에 미미인형을 놓아두고 돌아서는 그림자.
점퍼 안쪽에 삐죽하게 튀어나온 흰 봉투
바닥에 툭 던지며 먹으라 하던 술취한 말투
열어보면 다 식고 눅눅해진 갈색의 붕어빵들.
13평 좁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피아노를 들여놓고 나의 연주를 흐뭇하게 감상하던 표정  
원인을 알 수 없이 아프던 나를 안고 큰 병원에 가기 위해 바람 부는 길거리를 서성이던 모습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무뚝뚝하게 대하고 싶었다. 안그러면 당신이 어라, 나 정말 좋은 아빠였잖아- 하고 오해할 것 같아서.
 
그때 나를 품은 당신의 가슴팍에서 들려오던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와 따뜻하던 기운은
고열에 자꾸만 희미해지던 어린아이의 의식 속에서도 온전히 느껴졌고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그렇게는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으, 이건 아니다. 지나치게 느끼하고 무겁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망 쏟아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또 바뀌었다. 자꾸 좋았던 기억들만 떠오른다.


안되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시 써보자.




아빠에게.
아빠, 요즘은 친정에 가면 아빠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네요. 저도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한때는 엄하기만 한 당신을 원망하거나 다른 자상한 아빠들과 비교해서 혼자 서러워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쩐지 당신을 이해하는 순간이 많아집니다.
 
한때 아이들을 낳고 나서 아빠가 손주들에게 보여주는 엄청난 사랑을 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 나한테는 저런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하는 서러움과, 아기들을 어르고 달래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애로운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지금은 60대의 아빠가 많이 편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빠의 젊은 여자 버전이 나고, 나의 늙은 남자 버전이 아빠같은 느낌입니다. 큰 키, 넓은 어깨, 근엄한 얼굴 등 주로 남자인 아빠한테만 좋은 것들을 하필 딸인 내게 물려줘서 가끔씩 성질나긴 하지만요, 그래도 아빠는 내게 좋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셨어요. 그래서 감사해요.

좀 부끄럽긴 하지만, 내가 십대 소녀였을 때 젝스키스의 열혈 팬이었던 이유는 바로 아빠가 열네 살의 생일에 사 주었던 젝스키스 다이어리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때 아빠가 준 선물이 너무 좋아서 보고 또 보다가 젝스키스마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요. 너무 느끼해서 할까 말까 망설이던 말이었습니다.
 
아빠, 이제는 더이상 저한테 예전에 미안했노라고 말하실 필요 없어요.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빠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봤는데 이 감정은 분명히 사랑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그래, 이 정도가 좋은 듯하다. 

좀 느끼하지만 적당히 가볍고 무겁다.

난 아빠에게 딱 이 부분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비로소 아빠에 관한 글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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